우리법연구회

우리법연구회 해체 주장의 논리적 오류 3가지

자작나무의숲 2010. 2. 19. 21:22

  우리법연구회 해체를 주장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를 반박하면 논쟁이 확산되고 논쟁이 확산되면 사법부 구성원에게 부담이 될 것 같아 그동안 애써 참았으나, 해체 주장이 나날이 정도를 더 해가고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이상, 우리법연구회 회원으로서 몇 가지 반론을 하고자 합니다.

  그분들의 주장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3단계 논리구조를 취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튀는 판결을 하는 판사는 우리법연구회 회원이거나 그 영향권 내에 있다' '우리법연구회는 튀는 판결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튀는 판결을 막으려면 우리법연구회는 해체되어야 한다'

  여러 가지 사정상 우리법연구회 해체 주장의 내용상 오류를 지적하는 것은 피하고, 논리적 오류를 지적하는 데 그치기로 하겠습니다.

 

1. 튀는 판결을 하는 판사는 우리법연구회 회원인가?

  최근 사법부 독립 침해 사태의 빌미가 된, 강기갑 의원 사건 무죄 판결, PD수첩 사건 무죄 판결, 전교조 시국선언 사건 무죄 판결, 전교조 통일교육 사건 무죄 판결 어느 것도 우리법연구회 소속 판사가 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의원님은 서울남부지방법원에 우리법연구회 소속 판사가 많으니 강기갑 의원 사건 무죄 판결이 우리법연구회의 영향을 안 받았다고 볼 수 없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습니다. 판사들이 독립적으로 일하고 자존심이 강하다는 것을 모를 리 없는 판사 출신 의원님이 그런 주장을 하시니 뾰족하게 해명할 방법은 없습니다. 그러나 '없었다는 점'을 증명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만큼, 영향이 '있었다는 점'을 주장하는 측에서 입증해주시기 바랍니다.

 

2. 우리법연구회 활동이 튀는 판결에 영향을 미치는가?

  용산참사 사건 2심 재판장이 미공개 수사기록의 열람, 등사를 허용한 결정에 우리법연구회가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합니다.

  우선 2심 재판장은 우리법연구회를 5년 전에 탈퇴하였습니다. 동시에 민사판례연구회도 탈퇴하였습니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5년 전 우리법연구회 활동이 위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고 단정할 수 있습니까? 그럼 용산참사 사건 1심 재판장도 똑같은 결정을 내렸고 그분은 우리법연구회 회원이 아닌데, 이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습니까?

  반면, 화물연대 간부들의 폭력시위 사건에 대하여 대전지방법원 형사부가 중형을 선고했고, 조선일보를 비롯한 거대 신문은 이를 균형잡힌 판결이라고 소개했습니다. 그 판결에 관여한 재판장 o 판사 역시 우리법연구회 회원이었습니다(현재는 탈퇴하였습니다). 민주노동당 당직자가 국회에서 농성한 사건과 관련하여 유죄 판결을 한 서울남부지방법원 ㅈ판사 역시 우리법연구회 회원입니다. 우리법연구회 활동과 판결의 성향은 상관관계가 없습니다.

  최근 한나라당 사법제도개선특위에서 자료집을 통하여 편향된 판결 내지 결정을 하였다고 지적한 판사는 전직, 현직 포함하여 10명 이내입니다(편향되었다는 판결 내지 결정 사례가 판사 1인당 몇 건에 불과한 데 반하여, 그분들이 현재까지 처리한 사건은 대부분 수천 건에 달하니, 몇 가지 사례로 판사들이 편향되었다고 단정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지만, 이 점은 사정상 반론하지 않겠습니다). 그 숫자가 우리법연구회 회원 숫자의 10%에도 미치지 못하는 점으로 볼 때, 절대 다수 회원들의 판결은 편향되었다는 주장조차 못하는 것 아닙니까?

  저만 해도 부산판례연구회, 우리법연구회, 노동법분야 연구회에 가입하고 있고, 그 중 부산판례연구회에서 가장 열심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제가 선고한 판결에 무슨 문제가 있다고 가정할 경우 그것이 우리법연구회 활동 때문이라고 단정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대통령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에게 투표한 적도 있는데, 이런 사람이 회장을 맡은 바 있는 우리법연구회가 좌편향되어 있다는 주장도 어쩐지 자연스럽지 못합니다. 

 

3. 우리법연구회가 해체된다고 해결되는가?

  그분들은 편향된 판결을 지적한 다음 이를 해소하려면 우리법연구회가 해체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십니다. 그러나 권력자가 법원의 판결이 좌편향되었다며 비판하는 사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제1공화국 시절 유병진 판사가 재판장으로 있는 재판부가, 6 25 동란 부역자 중 생존의 위협에 소극적으로 부역한 자의 행위에 대하여 무죄 판결을 선고하였을 때(진보당 당수 조봉암의 간첩행위의 점에 대하여 무죄 판결을 선고하였을 때도), 제3공화국 시절 이범렬 판사가 재판장으로 있는 재판부가 시국사건에 대하여 무죄 판결을 선고하였을 때, 제5공화국 시절 어떤 판사가 시국사건에 대하여 무죄 판결을 선고하였을 때, 해당 판사들이 얼마나 시련과 고초를 겪었는지는 역사를 조금만 공부해보면 알 수 있습니다(한홍구 교수의 한겨레신문 연재 기사 '사법부 - 회한과 오욕의 역사' 참조).

  그러나 그 때는 우리법연구회가 창립되기 전입니다. 향후를 가정하여 우리법연구회가 해체된다고 하더라도, 권력자가 관심을 갖는 사건에 대하여 무죄 판결이 선고될 수 있다는 점은, 대한민국 헌법이 3권 분립의 구조를 취하는 이상, 불가피할 것입니다. 우리법연구회의 부존재가, 튀는 판결을 예전에도 막지 못했고, 앞으로도 막지 못할 것입니다.

 

4. 사족

  사법의 정치화는 경계해야 하고  저 자신도 늘 이 점을 명심하여 왔으며, 앞으로 더욱 경각심을 가지겠습니다. 마찬가지로 정치의 사법화 역시 경계해야 하고 이것이 적절하게 견제되지 않는다면 법치주의의 근간이 훼손될 것입니다.

  좋은 판사가 되려고 우리법연구회에 가입한 저로서는 우리법연구회 해체 주장이 좋은 판사가 되지 말라는 말씀으로 들려 섭섭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우리법연구회 해체 주장이 주장하는 분들의 애국심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을 의심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우리법연구회가 객관적 사실과 다르게 인상과 이미지에 의하여  왜곡 또는 과장되어 있는 만큼, 좀 더 냉정하게 토론을 해보자는 뜻에서 부족한 이 글을 올렸습니다. 배려 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2010. 2. 19. 부산에서 문형배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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