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이야기

1. 자작나무

자작나무의숲 2009. 10. 21. 15:51

저는 자작나무를 직접 본 적이 없습니다. 근데 별명으로 자작나무를 쓰는 이유는 언젠가 엽서를 사니까 거기에 날으는 자작나무라는 제목이 붙어 있어서 그냥 별명을 삼았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 가야산 등산을 갔다가 해인사에 들렀는데, 그 입구에 주목나무가 서 있던군요. 아마도 몇 백년은 된 듯합니다. 핸드폰에 찍어 왔는데, 핸드폰 사진을 블로그에 올릴 줄을 몰라서 올리지는 못하겠습니다.

근데 중학교 친구가 그 나무를 가리키면서 주목나무 정도는 되어야지 자작나무가 뭐냐고 타박을 하더군요. 확실히 주목나무는 있어 보였습니다. 그러나 주목나무는 제가

별명으로 삼기엔 버거웠습니다. 우선 몇 백년을 자라는 나무, 너무 있어 보이는 외양 등이 제가 별명으로 삼기에는 무리였습니다. 그럼 자작나무는 감당할 수 있다는 말이냐 물으신다면 할 말은 없지만.

 

어쨌거나 또 다른 중학교 친구가 저에게 자작나무 사진을 보내주어서 올립니다.

궁금한 분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덧붙여 친구가 '자작나무를 찾아서'라는 안도현 시인의 시를 보내와서 소개합니다.

안도현 시인은 그의 시집 2권과 동화집 한 권을 섭렵했을 정도로 내가 좋아하는 시인인데 '자작나무를 찾았다'고 하니 묘한 인연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작나무를 찾아서

                           -안도현

따뜻한 남쪽에서 살아온 나는 잘 모른다
자작나무가 어떻게 생겼는지를
대저 시인이라는 자가 그까짓 것도 모르다니 하면서
친구는 나를 호되게 후려치며 놀리기도 했지만
그래서 숲길을 가다가 어느 짖궂은 친구가 멀쑥한 백양나무를 가리키며
이게 자작나무야, 해도 나는 금방 속고 말테지만

높고 추운 곳에서 떼지어 산다는
자작나무가 끝없이 마음에 사무치는 날은
눈 내리는 닥터 지바고 상영관이 없을까를
어떤 날은 도서관에서 식물도감을 뒤적여도 보았고
또 어떤 날은 백석과 예쎄닌과 숄로호프를 다시 펼쳐보았지만
자작나무가 책 속에 있으리라 여긴 것부터 잘못이었다

그래서 식솔도 생계도 조직도 헌법도 잊고
자작나무를 찾아서 훌쩍 찾아서
떠나고 싶다 말했을 때
대기업의 사원 내 친구 하얀 와이셔츠는
나의 사상이 의심 된다고, 저 혼자 뒤돌아 서서
속으로 이제부터 절교다, 하고 선언했을지도 모른다

그때마다 나는 이렇게 말해 주고 싶었다
연애시절을 아프게 통과해 본 사람이                

삶의 바닥을 조금 알게 되는 것처럼
자작나무에 대한 그리움도 그런 거라고
내가 자작나무를 그리워하는 것은 자작나무가 하얗기 때문이고
자작나무가 하얀 것은 지작나무숲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때 묻지 않은 심성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친구여, 따뜻한 남쪽에서 제대로 사는 삶이란
뭐니뭐니해도 자작나무를 찾아가는 일
자작나무숲에 너와 내가 한 그루 자작나무로 서서
더 큰 자작나무숲을 이루는 일이다
그러면 먼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깜짝 놀라겠지
어라, 자작나무들이 꼭 흰 옷 입은 사람 같네. 하면서 
 

2009. 10. 21. 부산에서 자작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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