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인물)

폴 존슨의 '창조자들'을 읽고

자작나무의숲 2009. 4. 30. 22:48

폴 존슨의 '창조자들'을 읽었다. 저자는 인간의 행동 영역 전반을 아우르는 역사가로서 1928년 영국에서 태어나 옥스퍼드 대학을 졸업했다. 영국 현대사의 최전선에서 주로 보수 진영의 목소리를 대변하며 마거릿 대처의 고문 겸 연설문 작성자를 지냈다. 이 책은 셰익스피어에서 월트 디즈니까지 위대한 예술가 17인의 창조전략을 다루고 있는데, 예술가들의 알려지지 않은 사생활이 많이 소개되고 있다. 주인공은 위 두 사람을 포함하여 초서, 뒤러, 바흐, 터너, 호쿠사이, 제인 오스틴, 퓨진, 비올레르뒤크, 빅토르 위고, 마크 트웨인, 티퍼니, 엘리엇, 발렌시아가, 디오르, 피카소다.

 

인상 깊게 읽은 구절은 다음과 같다. 

 

창조적인 사람이 실패하는 경우를 보면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점은, 작품을 만들 때 소질도 중요하지만 엄청난 용기도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셰익스피어가 전하는 진리는 언제나 중용을 취했고, 그는 관용을 좋아했다.

 

햄릿은 국가의 질병을 치유하기 위해, 그리고 그의 말을 빌리면, "철저히 개혁하기' 위해 존재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역할을 떠맡게 된 운명을 한탄한다.

 

햄릿은 심오한 도덕적 성찰이 담긴 희곡으로, 도덕 그리고 죄악은 전염성이 있음을 보여

준다.

 

제가 설치한 폭탄에 제가 당한다. 화려하되 야하지 않게. 참새가 떨어지는 데도 특별한 섭리가 있는 법(셰익스피어)

 

1838 ~ 1839년에 해체 직전 마지막 정박지로 예인하는 전함을 그린 터너의 경이적인 작품 '전함 테메레르'는 작은 증기선이 무력해진 거대한 전함을 망각 속으로 이끄는 모습을 표현함으로써 증기선의 승리를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이 그림을 가리켜 미술평론가 존 러스킨은 "인간의 고통을 표현한 그림이 아니면서도 이처럼 애처로운 느낌을 주는 작품은 일찍이 본 적이 없다"고 평가했다.

 

제인 오스틴이 자신을 표현한, 그러니까 행동이 아니라 마음 상태를 표현한 두 단어가 바로 야생과 사악이었다.

 

제인 오스틴처럼 감수성과 상상력이 풍부하고 창조적인 사람에게는 사적 공간이 큰 축복 중 하나이다.

 

트웨인은 어렸을 때 이미 이야기의 본질적 부도덕성을 간파했다. 사람들은 남들 앞에서 이야기 할 때 진실만을 말하겠다고 맹세하지 않는다.

 

독자나 청중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박진감이나 진실성이 아니라 즐거움과 웃음이다......이야기꾼은 공인된 거짓말쟁이다.

 

이 세상에 죽음과 세금을 빼면 확실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벤저민 프랭클린).

 

트웨인은 한 줄 우스개를 책과 강연에서 두루 사용했다.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오직 두려움 그 자체이다(마크 트웨인).

 

유행이란 경박한 첩이면서 포악한 주인이다.

 

시간은 가차 없이, 그리고 영원히 흘러가 버린다는 두려움, 곧 '잃어버린 시간'에 대한 두려움에 엘리엇은 지식을 탐했다.

 

엘리엇은 관념을 인간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황무지'는 이야기가 아니라 분위기를 노래한 시로, 엘리엇의 사생활이 피폐해지고 망가진 데서 비롯된, 그리고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저질러진 문명 파괴에서 비롯된 절망과 황량함이 지배적 정서를 이룬다.

 

황무지에서 엘리엇도 같은 방식을 취한다. 그는 독자에게 분위기를 전달하고 특정한 이야기나 요소를 분명하게 제시하지만, 그 외의 것들은 다소 불분명하다.

 

엘리엇은 예술 역사상 가장 신랄하고 기억에 남을 분위기를 창조했으며 그가 서양 문화에 기여한 공로도 바로 이것이다......옛날 유명한 랍비의 이야기처럼 '그 나머지는 모두 설명일 뿐이다'

 

여성은 옷이 편안하면 자신감이 생기고, 자신감이 생기면 최고의 기분으로 옷도 멋지게 소화한다는 게 발렌시아가의 지론이었다.

 

피카소는 미술을, 다시 말해 10퍼센트의 참신함과 90퍼센트의 기교로 완성되는 회화를 두 비율이 정반대인 유행예술로 바꿔 놓았다

 

피카소가 여성을 비인간화하여 그린 반면 디즈니는 동물에 인격을 부여했고, 바로 이 점이 그의 힘이자 해학의 원천이었다.

 

자연은 인간의 상상력보다 더 풍부한 자원이라는 게 디즈니의 견해였다.

 

디즈니는 자연을 보존하면서 초현실화하고 싶어 했지만, 한편으로는 그것을 공상의 세계와 결합하고자 했다.

 

피카소가 있었기에 워홀은 "예술은 무엇이든 용서가 된다"라는 그럴듯한 말을 지어낼 수 있었다.

 

피카소의 예술의 본질은 자연에서 벗어나 인간의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반면에 디즈니 예술의 본질은 자연을 보강하고 변형하고 거기에 다시 생기를 불어넣은 뒤에 초현실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과학자는 자신에게 지어낸 이야기를 들려주고 실험으로 그 진위를 가린다(아인슈타인).

 

과학적 이야기를 꾸며 내는 과정에서, 그리고 가설을 세우는 과정에서 은유라는 문학 장치가 상당히 많이 쓰인다.

 

체험은 창조의 어머니, 정확히 말하면 창조의 어머니 중 하나다. 다시 말해, 내 경험상 관찰은 감정과 결합할 때 창조의 순간으로 이어진다.

 

창조는 즐겁기보다는 인내해야 하는 괴롭고 혹독한 경험이며, 차라리 창조자가 아니길 바라는 때도 많다는 게 그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이다.

 

빅토르 위고, 피카소에게 혹독한 평을 하고 있는 점이 작가의 성향과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예술가들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를 풍부한 자료를 인용해가며 들려준다.

 

            2009. 4. 30. 부산에서 자작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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