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인물)

컬린 토머스의 '나는 한국에서 어른이 되었다'를 읽다

자작나무의숲 2008. 6. 19. 19:39

컬린 토머스의 '나는 한국에서 어른이 되었다'를 읽었다. 컬린 토머스는 미국에서 태어나 빙햄튼 대학을 졸업하고 한국에서 영어강사로 근무하던 중 마약의 일종인 해시시를 밀수입한 죄로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받고 서울구치소, 의정부교도소, 대전교도소에서 수형생활을 하였다.  이 책은 1997. 11. 26. 교도소 생활을 마치고 추방된 후 미국으로 돌아가 한국 생활을 회고하는 내용이다. 부제는 미국 청년 토머스의 대한민국 표류기다.

 

저자는 비록 교도소에서 대부분의 생활을 보냈지만 한국에서 보낸 4년이 자신을 어른으로 만들었다고 고백한다. 좋은 조건으로 영어강사로 근무했던 과정, 단시간에  큰 돈을 만들어 보겠다는 생각에 필리핀에서 해시시를 구입해 우편을 이용하여 국내로 들여오다가 체포된 과정, 검찰청에서 조사받고 법원에서 재판받던 과정, 구치소 및 교도소를 옮겨가며 수형생활을 했던 과정, 특히 교도소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의 인생이 진솔하게 서술되어 있다.

 

인상 깊게 읽었던 구절은 다음과 같다.

 

올라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동안에도 서서히 내려왔던 것처럼 인생이란 정말로 그런 것이다. 사람들은 내가 계속해서 올라갔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살아온 모든 시간 동안 내 발밑으로 미끄러져 내렸을 뿐이다(톨스토이의 '이반일리치의 죽음'에서)....이반 일리치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인물로 존경받는 판사이자 부자였지만 언제나 체면과 위신에만 신경 쓰느라 인생의 진정한 의미는 찾지 못한 내면이 무너진 사람이었다.

 

이는 아무리 비교해봐도 다른 풀보다 눈에 띄게 더 푸른 풀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한 인간의 고통은 닫힌 공간에 들어 있는 기체와 같다(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고통을 참아내는 인내야말로 영혼의 고귀함을 나타내는 증거지.

 

그들은 나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몰랐기 때문에 생각없는 사람들처럼 행동했다......내게 도달할 방법을 몰랐기 때문에 그저 내 육신만 처벌하기로 결심한 사람들이었다....따라서 이 정부는 지능이나 윤리 같은 인간의 의식과 맞서려 하지 않고 그저 육신만을 다루었다.....이성이나 정직의 우위가 아니라 그저 육체적인 힘의 우위만 내세우고 있었다(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시민의 불복종'중에서).

 

미국 교도소보다 재소자들이 더 고상하고 인간적으로 지낼 수 있는 한국 교도소의 유교적 전통을 받아들이는 방법은 없을까?

 

놀랍게도 자연의 모든 것이 동전의 양면처럼 두 가지 성질을 가지고 있다는 걸 분명하게 깨달았다. 감옥은 무덤이기도 하지만 성소이기도 했다.

 

감옥에 갇혀보지 않은 사람과 내가 얼마나 다른지에 대해서는 분명히 말할 수 없지만 내가 전보다 더 겸허해졌다는 건 사실이다. 나는 사소한 일로 고민하지 않고 작은 일에서 기쁨을 발견하게 됐다.

 

대전교도소에서 누릴 수 있는 자유가 1,000가지도 넘는다는 걸 알았다....눈가리개를 한 말처럼 내 옆이 아니라 앞에 펼쳐진 삶에 집중하고, 외부가 아닌 대전교도소에 집중하게 되면서 더 이상 자유를 누리지 못한다는 생각으로 괴롭진 않았다. 그런 마음가짐이 바로 자유였다.

 

자유를 얻었다는 증거는 무엇인가? 더 이상 나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것이다(니체). 이제 나는 이 말의 의미를 안다고 생각한다. 그는 자유의 본질은 용서라고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미국인의 눈에 비친 한국과 한국인의 모습 특히 교도소의 모습이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친숙함으로 인하여 인식하지 못했던 자신의 모습을 타인의 시선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일독을 권한다. 

 

               2008. 6. 19. 부산에서 자작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