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인물)

리영희 대담 임헌영의 '대화' 중에서

자작나무의숲 2007. 8. 14. 23:17

2005. 4. 9. 읽은 리영희(대담 임헌영)의 '대화' 중에서 되새겨볼 만한 구절은 다음과 같다.

 

고학년이 되면 면학의 글귀도 바뀌게 마련이지. 나의 하숙방 벽의 훈계도 바뀌었지. 주희의 유명한 시인 권학문이었어.

 

少年易老學難成

一寸光陰不可輕

未覺池塘春草夢

階前梧葉已秋聲

 

소년은 쉬 늙지만 학문을 이루기는 어렵다

한치의 시간도 허비하지 마라

어린 시절 집뜰에서 놀던 꿈이 깨지지 않았는데

집 앞의 오동나무 잎에서는 벌써 가을소리가 나는구나

 

리영희 선생님의 학교 편력이 루쉰과 너무나 비슷하십니다. 그가 처음으로 신식 학문을 접한 곳이 난징의 강남수사학당인데 바로 해군학교로 기관과에 수업료 없이 입학했지요. 물론 이내 자퇴하곤 과거시험도 보고 방황하다가 광무철로학당을 졸업합니다. 인문계가 아닌 이공계라는 점이 시선을 끕니다.

 

일청전쟁, 일러전쟁에서 중국민족의 한심한 꼴을 뼈저리게 목격한 노신은, '육체가 아무리 건장해도 정신이 썩은 민족은 앞날이 없다'는 확신을 갖게 됩니다. 진정 민족을 살리는 길은 정신을 개조하는 수단과 방법인 글쓰기임을 깨닫고 의학의 길을 포기한 것은 유명한 이야기지.

 

프란츠 파농은 저서 <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에서처럼 자기 동포 알제리인들이 자신들의 비굴한 운명에서 벗어나는 길은, 지배자 백인들이 요구하는 대로의 자기상실적인 흑인이 되거나 아니면 불란서인, 즉 백인에 자신을 동일화하는 것 역시 자기상실적 인간이 되는 것에 불과하다는 철저한 열등의식을 그는 유명한 저서 <검은 피부 흰 가면>에서 폭로했어. 이 폭로는, 자학적인 폭로가 아니라 자신의 정신상태나 정체성을 상실한 동포들에게 바로 그 사실을 신랄하게 지적함으로써 정신적 혁명을 이룩하도록 한 것이었지요. 역시 부정의 부정으로 길을 찾으러 한 거지요.

 

로마제국도 그렇고, 심지어 개인의 경우도 힘에 도취되면 그 주체는 이성을 상실하게 돼요. 폭력의 전능성에 대해서 자기도취가 된 나머지, 미국이 자기비판을 할 이성적 기능을 상실하게 된 거지요.

 

푸에블로호 사건에 즈음하여 '북한이라는 나라는 대 소련의 이빨이 안 들어가는 나라인 것 같다'고 한 미국 존슨대통령의 말과 그 밖의 많은 유사한 사례들을 확인한 뒤에 나는 그 뒤로 북괴라는 관용어를 버리고 북한이라는 용어로 바꾸게 되었어......공자의 논어에 正言편이 있어, 제자가 공자에게 "정치의 요체가 무엇입니까"라고 물은 데 대해, 공자는 "사물의 이름(명칭 또는 명분)을 정확하게 쓰는 것이다"고 답했어요......지식인의 역할은 사물의 이름을 정확하게 쓰는 것.

 

신이 인간을 창조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 자기의 필요 때문에 신을 창조했다고 나는 믿고 있어.

 

톨스토이가 종교와 인간의 문제에 관한 의미심장한 다음과 같은 말을 한 것을 그의 글에서 읽은 기억이 납니다.

 

우리는 사람을 평가함에 있어서, 그 사람이 기독교 신자냐 아니냐를 묻기 전에 그 사람이 도덕적이냐 아니냐를 알 필요가 있다. 그 사람이 도덕적인 사람이라고 한다면, 기독교 신자냐 아니냐 하는 것은 물을 필요가 없다.

 

나는 불완전한 인간들이 모여서 형성하는 인간사회에서 어쩌면 영원히 불가능할 것이라는 분명한 전제를 놓고 말할 때, 가장 이상적인 인간사회는 자유와 평등이 함께 충족되고 유지되는 상태라고 생각합니다.

 

명심보감에 이런 구절이 있어요

路遙知馬力 日久見人心

먼 길을 가야 말의 힘을 알 수 있고, 긴 세월을 지내봐야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있다.

 

나의 글 쓰는 정신이랄까, 마음가짐이랄까 하는 것은 바로 노신의 그것이에요. 글 쓰는 기법, 문장의 아름다움, 속에서 타는 분노를 억누르면서 때로는 정공법으로, 때로는 비유, 은유, 풍자, 해학, 익살로 상대방을 공격하는 세련된 문장작법을 그에게서 많이 배웠지요.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리영희 선생을 빼놓고 온전한 이해가 가능한 게 얼마나 될까? 인생을 참으로 성실하고 만족하면서 사신 분께 관심 있는 분들의 일독을 권한다.

 

             2007. 8. 14. 부산에서 자작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