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인물)

박영희 외 3인의 '길에서 만난 세상'을 읽고

자작나무의숲 2007. 7. 8. 10:00

박영희, 오수연, 전성태님이 쓰고, 김윤섭님이 사진을 찍은 '길에서 만난 세상'을 읽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기획하여 대한민국 인권의 현주소를 찾는다는 명목으로 쓰여진 책이다. 이 책에서는 아직도 이런 삶을 살고 있나 할 정도로 가난하고 소외받고 외로운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차 있다. 나의 삶이 평온해지면서 지난 시절의 가난과 소외를 잊었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 책이다.

 

이 책에 소개된 사람들은 다음과 같다. 근로조건에서 정규직과 차별받고 그마저도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비정규직 노동자, 한쪽 다리 내주고 코리안 드림을 이룬 이주노동자, 비혼 상태에서 아이를 낳고 양육문제에 어쩔줄 몰라하는 어린 엄마들, 제도권 교육에서 밀려나고 제자리를 찾지 못한 10대들, 한국인 남자와 아시안 여자 사이에 태어난 코시안과 그의 엄마들, 한국인 남자와 결혼한 후 버림받은 아시아 여성들, 소외받은 도시의 노인들, 세월의 막장에 갇혀 진폐증으로 고생하는 전직 광부들, 보호관찰법의 늪에 허우적 거리는 국가보안법 위반 전과자들, 김선일 사망 이후 따돌림 받고 있는 무슬림들, 0.3평 정도의 공간에서 하루 종일 일하는 사람들, 새벽 바다로 나가는 어부들, 고충수업, 타율학습에 갖힌 학생들, 갈 데 없는 농촌 청소년들, 여전히 세상의 끝에 있는 섬 소록도 한센병 환자들, 조선인 남자와 결혼하여  한국에 들어온 일본인 처, 창신동에서 봉제공장에 종사하는 사람들

 

인상 깊게 읽었던 대목은 다음과 같다.

후쿠오카 켄세이는 '즐거운 불편'이라는 책에서 정말 시간 여유가 있으면 아이들은 뭔가 하게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덧붙이기를, 생각해 보면 우리 부모 세대도 부추김 속에서 살아왔다고 말한다. 그래서 자신의 존재 가치에 자신감이 없고, 숫자나 성적, 세속적인 평가와 같은 구체적인 형태로 증명해 보이지 못하면 자아가 흔들려 위기의식을 느낀다고.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1990~2004년까지 한국 남자와 결혼한 외국인 여성은 12만 8762명.

 

수많은 노인들은 그저 도회지의 풍경일 뿐이다.

 

君不見, 黃河之水天上來니 奔流到海不復回라(이태백 지음)

將進酒여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황하의 물이 하늘에서 내려 세차게 흘러 바다에 이르면 다시 돌아오지 못한다는 것을!

(그대는 보지 못햇는가? 고대 광실 맑은 거울 속에 비친 슬픈 백발을! 아침에 까만 비단실 같더니 저녁에는 눈처럼 희었구나. 인생은 뜻대로 될 때에 마냥 즐겨야 할지니, 황금 술단지를 달 아래 그냥 두지 마라)

 

인생의 어느 순간도 유예되거나 희생되어서는 안 되지 않겠는가?

 

인권문제에는 선후가 있을 수 없다는 당위성도 새삼 등을 떠밀었다.

 

우리 중 누가 다른 사람들을 위해 더럽고 힘든 일을 할 것인가? 만약 그와 같은 일을 한다면 보수는 얼마나 받을 것인가? 그리고 누가 쾌적하고 깨끗한 일을 할 것인가? 얼마의 보수로? (존 러스킨)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가슴이 묵직해지고 어디에선가 아려온다.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이 든다.

 

                  2007. 7. 8. 부산에서 자작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