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인물)

조정래 외 8인의 '젊은 날의 깨달음'을 읽고

자작나무의숲 2007. 4. 1. 21:50

조정래 외 8인이 쓴 '젊은 날의 깨달음'이라는 책을 읽었다. 조정래 외 8인은  태백산맥의 작가 조정래를 비롯하여 정신과 의사 정혜신, '당신들의 대한민국'으로 유명한 박노자, 강준만 교수가 현재 가장 주목해야 할 저널리스트로 지목했던 고종석, 한겨레신문 논설위원 손석춘, 서울대학교 물리학과 교수였던 장회익, 철학과 예술을 넘나드는 르네상스적 지식인으로 평가되는 영남대학교 법학과 교수 박홍규, 1994년 미국 타임에서 차세데 리더 100인으로 선정된 바 있는 도시건축가 김진애, '파리의 택시운전사'로 유명한 홍세화다.

 

이 책에는 9인의 주인공이 현재의 삶을 규정한, 젊은 날의 경험들, 그 속에서 깨달음을 얻은 과정을 진솔하게 드러내는 내용을 담고 있다.  '사람 vs 사람'이라는 책을 쓴 바도 있는 정신과 의사 정혜신은 정신과 레지던트 시절 스스로 환자가 되어 2년간에 걸쳐 정신분석을 받았던 기억을 반추한다. 박노자는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나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학 조선학과를 졸업하고 모스크바 국립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다음 2001년 한국인으로 귀화하여 현재 노르웨이 오슬로 국립대학 부교수로 재직중인데, 1991년 고려대학교에 언어 실습생으로 파견된 이래 한국에 사는 동안, 한국이 러시아와 전혀 다른 체제임에도 전체주의라는 관점에서 동일한 사회였다는 깨달음을 얻게 된 과정을 토로한다. 

 

고종석은 한겨레신문 기자로 일했고, 한국일보 논설위원으로  일한 적이 있으며 '코드훔치기'라는 책을 통하여 21세기 모색에 관한 책을 쓴 적이 있는데, 이 책에서도 '섞인 것이 아름답다'를 차분한 어조로 주장한다. 전쟁의 동력으로 '민족주의'와 '종교' 그리고 '자본의 욕망'을 꼽으면서 섞인 것이 아릅답다는 것이 20세기의 교훈임을 설득한다. 특히 '공산당 선언'의 마지막 부분을 패러디하여 '만국의 개인들이여, 흩어져라! 흩어져서 싸우라! 민족주의의 심장에, 모든 집답주의의 급소에 개인주의의 바이러스를 뿌려라!'라고 외친다.

 

손석춘은 돈이 지배하는 세상을 바꾸겠다는 소년시절의 다짐이 자본의 힘과 언론의 힘에 대한 청년시절의 깨달음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담담하게 풀어내고 있다. 조정래의 젊은 날은 가난으로 점철되어 있다. 가난으로부터 독립하기 위하여 출판사를 경영했던 경험, 어느 정도 자립의 기반을 갖추고 다시 소설을 쓰기 시작한 것이 마흔이었음을, 그 과정에서 터득한 그의 좌우명이 '남보다 5분 먼저 일어나고, 5분 먼저 행동하라', '인생이란 오로지 한번 태어났다 한번 죽는다. 그 인생을 적당히 살 수도 있고 치열하게 살수도 있다'며 모든 잡기를 멀리한 점, '타고난 재능보다는 미련스러운 노력을 믿고자 했던 그의 인생을 고백한다.

 

장회익은 사람이 사물을 이해한다는 것은 두가지 요소가 결합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하면서, 그 한 요소가 이해의 틀이라고 한다면다른 것은 이 틀에 담길 내용이라고 한 다음,  새롭게 구성된 이해의 틀 속에서 다시 정리된 내용이 기왕에 이해했던 내용과 크게 달라질 때 깨달음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라고 정의한다. 특히 깨달음에 이르기 위해서는 우선 물음을 던지는 일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박홍규는 20세기 사회라는 감옥에서 자유로운 영혼을 꿈꾸어 온 과정을 토로한다. 그는 어떤 동창회에도, 교수 사회의 사교모임에도, 혈연 및 지연과 연관된 어떤 모임에도 나가지 않는 이유를 밝힌다. 그 위에 자유, 자치, 자연이라는 가치를 갖는 사상 이른바 삼자주의를 내세운다. 그가 미셀 푸코의 '감시와 처벌',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을 번역하여 한국에 처음 소개했던 점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김진애는 멀티 인간, 실용 인간, 여자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그녀의 삶 속에서 일의 가치를 자리매김한다. '주거단지에서의 사회적 융합'이라는 논문을 통하여 잘 사는 사람과 못 사는 사람을 섞는 이른바 계층 혼합의 정책 필요성을 강조한 일, 임시행정수도 프로젝트를 통하여 '도시'의 개념을 확립한 일, MIT에서 문제해결 능력보다는 문제를 잘 설정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고 현장감각 및 기업가 정신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일을 통하여 일하는 인간이 되었음을 고백한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노동, 작업, 행위다'는 한나 아렌트의 정의를 인용하면서.....홍세화는 자유와 평화, 사랑과 예술도 삶의 필수조건일 뿐 인간에게 있어 충분조건이란 없는 것이다며 끝 없는 긴장하기를 주문한다.

 

이 사회에서 뚜렷한 존재와 역할모델을 제시하고 있는 9인의 젊은 날을 통하여 자신의 삶을 성찰하고 운이 좋다면 깨달음도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관심있는 분들의 일독을 권한다.

 

              2007. 4. 1. 부산에서 자작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