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인물)

고은의 '이중섭 평전'을 읽었다.

자작나무의숲 2008. 9. 8. 19:53

고은의 '이중섭 평전'을 읽었다. 이중섭은 여러 가지 점에서 빈센트 반 고흐와 대비되는 사람이다.

 

37세 또는 40세에 요절했던 점, 정신병을 앓았던 점, 천재화가로서 말년에 궁핍한 생활을 했던 점이 공통점이라면, 고흐가 자살한 반면 이중섭이 병사한 점, 고흐는 자화상을 즐겨 그렸던 반면 이중섭이 자화상을 한사코 거부했던 점, 고흐는 추남이었고 사촌 동생 케이에게 구혼했으나 거절당하고 창녀 크리스틴과 동거한 적이 있었을 뿐 결혼한 적이 없었던 반면 이중섭은 미남이었고 여러 사람으로부터  청혼을 받았고 처가의 반대를 무릅쓰고 일본인 처인 야마모토 마사코와 결혼하여 세 명의 자식을 낳았던 점이 차이점이라고 볼 수 있다.

 

10여 년 전 어빙스톤이 쓰고 최승자가 번역한 '빈센트, 빈센트, 빈센트 반 고호'를  읽고서 고흐에 푹 빠졌던 때가 있었다. 고흐 그림의 복사본을 찾아 부산 시내를 돌아다니다가 저녁에 노천까페에서 차를 마시는 모습을 그린 그림을 사고 액자를 만든 다음 사무실에 걸어 놓고 흐뭇했던 기억이 난다. 마침 독일 유학을 갖다 온 동료 판사로부터 고흐 달력을 선물받고 애지중지했던 기억도 난다.

 

이중섭 평전에서 인상 깊게 읽은 구절은 다음과 같다.

 

말하자면 그는 오산중학교의 전인교육에 따라서 많은 가능성이 드러난 것이다.

 

楚人安楚다. 조선사람은 조선이 제일 좋고 조선 땅에서 일해야 한다(오산중학교 미술 선생 임용련이 이중섭에게).

 

어머니는 그에게 용기를 주고 또는 다른 용기를 버리게 했다.

 

송도원 부근의 농부들이 날마다 나타나서 하루 해가 저물도록 소를 보고 있던 중섭을 처음에는 소 도둑인 줄 알고 고발한 일도 있었대요.

 

아마도 그는 어머니와 아내 이외의 모든 사람들에게는 청교도적으로 대했던 것 같다.

 

첫 아들이 죽은 뒤 그는 고아원의 어린 것들을 더 사랑했다.

 

작가라는 건 늘 작가가 살고 있는 곳과 익숙해져야 그곳에서 뭔가를 얻을 수 있어. 뭣이고 오래오래 함께 살아야 해.

 

저 갈매기를 한 번 그려보지 그래요?

하루이틀 본 것으로 그릴 수 없지요.

 

美는 꽃이나 명승지에 있지 않다

그의 독백은 사람들의 괴로움과 슬픔이 만들어내는 끝없는 미를 굳게 지지하고 있었다.

 

그는 서귀포읍에 와서 처음으로 그의 예술을 통해서 도저히 간과할 수 없는 소재로 게를 발견한 일이 그의 제주 생활에서의 큰 수확이다.

 

예술은 부유한 자가 할 수 없으나 가난한 자는 더욱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중섭의 미는 선과 구별되지 않고 진과 대립되지 않는다. 그 미는 선과 진을 일치시킴으로써 발화한 정태 및 유희의 신성이며 곧 중섭의 당위인 것이다.

 

그에게 미에 대한 논리가 극도로 결핍된 사실도 이런 선천적인 자만심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의 예술은 미술사를 초월한 것이라고 확신했고 그러므로 미술사 안에서의 자기 자신을 논리적으로 확인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는 미술을 말할 때 타자를 인용하는 법이 없었다.

 

그는 소를 그리지만 절대로 암소를 그리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그는 논리적 단계를 밟지 않고 미술에서 철두철미 반복의 강점을 가지거나 단편 양식으로서의 파토스 또는 사물의 원형질적 인상에 대한 직관에 의해서 그 자신의 천재에 도달한다.

 

그가 그리는 대상이 자기 자신이거나 그의 아내거나 또는 소나 개, 닭이라 하더라도 그것들을 먼저 사랑함으로써 그릴 수 있었다.

 

자연은 예술의 적이다. 그러나 이 사실을 깊이 깨달은 자에게는 자연은 곧 예술이 될 때가 있다.

 

구상은 중섭을 원산 시대의 운명적인 친구로서 뿐만 아니라 그를 천재라는 것으로 동반하게 하는 허영도 있었다.

 

그는 달과 함께 술을 마시면서 이백의 한 구절 "지금 사람은 옛 달을 못 보았으되 지금 달은 옛사람을 비춰왔도다"를 중얼거리는 여유도 보였다.

 

중섭의 경우 몇 가지의 필생의 주제, 이를테면 소, 닭, 동자 그리고 너무나 문예적인 게 따위를 제외하면 일반적으로 1950년대의 피난민이나 전쟁에 시달리는 서민의 가족적 동정을 바탕으로 한 그림들이 압도적이다.

 

그는 고흐의 轉身인 것 같다.

 

내가 그린 소는 그런, 싸우는 소가 아니고 착하고 고생하는 소, 소 중에서도 한국의 소란 말이우다.

 

고흐는 고갱의 오만한 에고이즘에 시달려서 고갱을 죽이려는 뜻으로, 버림 받은 창녀에 대한 원한으로 제 귀를 칼로 잘라버렸다. 중섭은 타자를 끝까지 제 품에 안고 괴로워한 것이다.

 

이중섭 평전을 읽고 나니 가슴 저 밑에서 올라오는 안타까움, 진한 슬픔으로 견디가 힘들었다. 마치 내가 잘못하여 그가 죽은 것처럼......고은의 글쓰기는 얼마나 또 치열한지.....

 

                 2008. 9. 8. 부산에서 자작나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