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법률

조삼모사는 간사한 꾀가 아니다.

자작나무의숲 2008. 8. 2. 19:20

조삼모사라는 말이 있다.  중국 송나라의 고사로, 먹이를 아침에 세 개, 저녁에 네 개씩 주겠다는 말에는 원숭이들이 적다고 화를 내더니 아침에 네 개, 저녁에 세 개씩 주겠다는 말에 좋아하였다는 데서 유래한 말로, 국어사전에는 간사한 꾀로 남을 속여 희롱함을 이른다고 풀이 되어 있다. 그런데 과연 아침에 네 개를 주고 저녁에 세 개를 주겠다는 것과 아침에 세 개를 주고, 저녁에 네 개를 준다는 것이 같을까? 대부분의 분쟁은 저녁이 아니라 아침에 네 개를 차지하겠다는 데세 생기는 것은 아닐까?

 

소송 계속 중 당사자 간의 양보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여 조정절차에 넘겨 진행을 해보면, 조삼모사의 힘을 실감할 때가 많다. 원고는 대개 재판절차를 서둘러 마치는 조건으로 일정한 양보를 하는 대신 양보한 것마저 받지 못할까 걱정한다. 피고는 되도록이면 많은 양보를 받으려고 하고, 성에 안 차면 전부 아니면 전무의 모험을 하려는 경향이 있다.  둘 사이의 간격을 좁혀 보면, 원고는 이른 시기에 네 개를 주면 나머지 세 개는 나중에 받을 수도 있다는 것이고, 피고는 일단 세 개를 주고, 나머지 네 개는 형편되면 주겠다는 식으로 귀결되는 경우가 많다.

 

필자가 2008년 7월 처리한 사건 중에 원고는 1500만 원의 대여금 및 이자를 구하고, 피고는 다 갚았으므로 한 푼도 줄 수도 없는 사건이 있었다. 1심에서는 피고가 부주의로 불출석하는 바람에 원고가 전부 이겼다. 피고가 뒤늦게 판결선고사실을 알고 항소장을 제출했는데, 항소기간을 넘겨 항소가 각하될 가능성이 높은 반면, 1심에서 소멸시효를 주장했더라면 피고가 이길 수도 있는 사건이었다. 2심에서 몇 번의 재판이 진행되었고, 양쪽 변호사들의 협조 속에 조정절차를 진행했다. 원고는 1200만 원의 원금만 받겠다고 1차 협상안을 제시했다. 피고는 500만 원을 갚겠다고 협상안을 제시하였다. 재판장의 설득 끝에 원고는 1000만 원까지는 양보할 수 있다는 협상안을 제시하였으나 피고는 500만 원 이상은 곤란하다고 버텼다. 고심 끝에 필자는 피고의 채무액을 1000만 원으로 정하고, 10개월 안에 700만 원을 갚을 경우 나머지 300만의 채무를 면제한다는 조정안을 제시하였다. 밀고 당기고 실랑이 끝에 원고, 피고가 모두 재판장의 조정안을 받아들여 결국 조정이 성립되었다.

 

우선 원고는 무작정 700만 원에 합의하기 보다는 일단 1000만 원을 정해 놓고 현실적으로 700만 원을 받을 경우에만 300만 원을 포기함으로써 이익을 현실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익이다. 실제로 판결을 받아 높고도 피고 명의로 된 재산이 없어 돈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충분히 이해가 간다. 피고는 1000만 원 아래로 더 이상 내려 오지 않는 상황에서 일정한 조건이 붙기는 했지만, 700만 원으로 채무를 청산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는 점에서 이익이다. 어쨌거나 판결이 선고될 경우 피고가 유리하지 않다는 재판장의 설득도 있고, 피고가 전부 지는 내용의 판결이 선고될 되면 평생 원고의 감시 대상에 들어간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충분히 이해가 간다.

 

조삼모사의 관점에서 분석해보면, 원고는 1000만 원을 가져 오면 나머지를 포기하겠다고 한 점에서 아침에 네 개를 원했던 것이고, 피고는 500만 원에 모든 채무를 청산하고 싶었던 점에서 아침에 세 개를 원했던 것으로 정리할 수 있고, 이를 절충한 조정안이 제시됨으로써 분쟁이 해결되었다.   

 

어쩌면 우리 사회의 개혁이 지지부진한 이유가 개혁을 반대해서라기보다는 과도기에 누가 손실을 감수할 것인가에 대한  합의가 부족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예컨대 의약분업을 보아도 의약분업이 철저하게 지켜지고 제약사의 리베이트 관행이 근절된다고 가정하면, 의약분업이 의사에게도 약사에게도 충분히 득이 되는 제도였는데, 두가지 전제 조건이 충족될 때까지 누가 손실을 감수할 것인가 또는 누가 불로소득을 취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한 의견차이로 도입과정에서 진통이 있었지 않나 싶다.

 

이렇게 볼 때 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과도기의 손실을 부담하겠다고 나서는 집단, 개인이 필요하다. 어쩌면 신영복 교수님이 말한 양심적인 신뢰집단도 그 주체로서 상정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일정한 탈세를 전제로 소득세율이 샹향되어 있다고 진단이 되었을 경우 소득세율을 인하하려면, 세수 확보 기술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키면 되겠지만 그건 쉬운 일이 아니고, 과도기에 성실한 납세자 집단, 계층 이를 부추기는 문화가 있어 준다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소득세율이 인하되기만 한다면 그 혜택은 골고루 돌아감이 분명한데 세율이 인하될때까지 어떻게 세수를 확보할 것인가가 문제다. 주위에 보면 정말 성실하게 소득세를 납부하는 분들이 있는데 이런 분들이 바로 애국자가 아닌가 싶다.

 

여기서 누가 아침에 세개를 받을 것인가가 문제된다. 결론적으로 역사의 진보를 믿는 자가 이를 감수해야 한다고 본다. 역사의 진보를 믿는다는 것은 변화해야 하고 내일 한다고 믿는 사람이므로 오늘 당장 보상받을 필요는 없지 않은가?

 

그러고 보면 조삼모사란 간사한 꾀로 남을 속이는 행위가 아니라, 인간 심리에 기초한 문제해결 방안인지도 모른다.

 

                 2008. 8. 2. 부산에서 자작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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