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도 민사 2심 사건을 담당할 때 있었던 일이다. 원고는 회사이고 피고는 그 회사에 다녔던 근로자다. 원고는 피고가 원고회사에서 일할 때 실수로 원고회사에 끼친 손해를 배상하라는 청구를 하였고, 그 증거로 피고가 작성한 각서를 제시하였다. 이에 대하여 피고는 각서의 작성을 인정하면서도 원고회사의 요구에 따라 억지로 작성하였다고 주장하고, 받지 못한 임금을 공제해달라는 주장도 하였다.
1심에서는 원고가 모두 이겨왔다. 2심에서 심리를 해본 결과 원고가 양보할 뜻이 있다고 밝히는 점, 피고의 처지가 딱한 점을 고려하여 조정절차에 회부하였다. 3주 뒤로 조정기일을 정하여 1시간 정도 원고, 피고가 공방을 벌이고 판사가 원고, 피고를 상대로 설득한 끝에, 원고는 1심에서 이긴 금액에서 주지 못한 임금을 공제한 다음 다시 1,000,000원을 더 양보하여 3,000,000원을 최종안으로 제시하였다. 피고는 각서를 억지로 작성하였고 손해액수도 그렇게 많지 않다며 2,000,000원을 주겠다고 최종안을 제시하였고, 더 이상 간격이 좁혀지지 아니하였다. 1,000,000원 때문에 1시간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나 걱정을 하고 있던 차에 피고가 '오늘도 비 맞고 재판받으러 왔고 요즘은 일 거리도 없어 참 힘들다'고 하는 말이 들렸다. 창 밖을 바라보니 제법 비가 내리고 있었다.
즉시 판사실 부속실에 전화를 하였다. 내 방에 있는 우산 2개 중 1개를 가져 오라고. 내심 그러면서 우산 2개 중 오래된 것을 가져 왔으면 하는 생각을 하였다. 아니나다를까 부속실 직원은 우산 2개 중 오래된 우산을 가져왔다. 나는 그 우산을 받아 피고에게 돌아갈 때 쓰고 가시라며 우산을 건넸다. 피고는 몇 번 거절하더니 비 맞고 가려니 걱정이 되었던지 우산을 받았다.
나는 한참 뜸을 들인 후 피고에게 2,500,000원으로 이 사건을 끝내면 안 되겠냐고 제안을 했다. 피고가 받아들였고, 그러자 원고도 나의 조정안을 받아들였다. 그리하여 그 사건은 조정으로 끝났다.
집에 돌아왔다. 아내에게 낮에 있었던 무용담을 이야기 하였다. 여차하여 사건을 조정으로 끝냈고, 우산도 오래된 우산을 주었으니 별 손해도 없었다는 말까지. 여직원이 참 눈치가 있더라는 말까지 덧붙이며......그러나 자기 일처럼 기뻐하리라 기대했던 아내의 한마디 "그 우산 내가 제일 아끼는 까스텔바작인데, 그걸 내 허락 없이 남 주면 어쩌냐구"
소송사건은 우산 때문에 조정되었지만, 그 우산 때문에 우리 집은 사건이 하나 생겼다.
2008. 4. 13. 부산에서 문형배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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