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추천)

톨스토이의 '부활'을 읽고

자작나무의숲 2007. 10. 18. 18:54

1. 개괄

톨스토이의 '부활'을 읽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귀족 네흘류도프는 어린 시절 고모의 양녀 겸 하인인 카튜샤를 순수한 마음으로 사랑하였다. 그러나 몇 년 뒤 장교로 임관되어 소속 부대로 부임해 임지로 가는 도중 고모집에 들렀을 때는 성욕을 못이겨 카튜샤를 유혹하고 끝내 성교를 하고 오래 계속될 것 같지 않은 관계는 일찌감치 끊어버리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며 카튜샤에게 100루불을 주고 그 곁을 떠난다.

 

카튜샤는 그 일로 임신을 하게 되지만, 네흘류도프가 전장에서 돌아오는 길에 고모 네 집에 들르지 않고 그냥 지나쳐 간 사실을 알고 그를 잊기로 한다. 그녀는 임신으로 그전처럼 일을 잘 할 수 없게 되자 네흘류도프의 고모집에서 쫓겨나고, 태어난 아이는 곧 죽는다. 카튜사는 다른 집 하녀를 전전하다가 유곽에서 창녀생활을 7년간 하게 되었고, 거기에서 단골손님의 돈과 반지를 훔치고 독살하였다는 누명을 쓰고 재판을 받는다. 

 

그 재판에 네흘류도프가 배심원으로 참여하게 되고 배심원들이 토론 끝에 증거불충분으로 평결을 하게 되지만, 답신서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절도죄에 대하여는 '객관적 사실은 인정되나 절취할 의도는 갖지 않았다'고 분명히 기재한 반면, 살인죄에 대하여는 단 살해할 의도는 없었음' 이라는 부분을 빠뜨린다. 재판장은 답신서의 문제점을 발견하고 이를 시정하려고 시도하나, 배석판사 중 1인이 반대하고 자신의 애인과 약속한 시간에 맞추려고 답신서를 그대로 채택하여 캬튜샤에게 살인죄를 인정하고 징역 4년을 선고한다.

 

네흘류도프는 자신의 잘못으로 카튜샤가 창녀생활을 한 것도 모자라 배심원들의 실수로 징역 4년을 선고받게 되자 카튜샤의 구명을 위해 발벗고 나선다. 우선 원로원에 상고를 하고, 황제에게 청원서를 낸다. 그러나 원로원은 상고를 기각하고, 카튜샤는 판결대로 시베리아로 떠난다.

 

네흘류도프는 영지를 농민들에게 분배하거나 싼 값에 빌려주고, 카튜샤를 따라 시베리아로 향한다. 가는 도중에 황제에 대한 청원이 받아들여져 카튜샤는 시베리아 유형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러나 캬튜샤는 감옥에서 만난 정치범들의 도움으로 부활하게 되고 정치범 시몬손으로부터 청혼을 받게 된다. 캬튜샤는 고심 끝에 네흘류도프의 오랜 청혼을 거절하고, 시몬손의 선택을 받아들인다.

 

그녀는 네흘류도프를 사랑하지만 함께 있음으로 해서 그의 인생을 망치게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시몬손과 함께 이곳을 떠나 그를 의무감에서 벗어나게 해주려 했던 것이다. 그 과정에서 네흘류도프는 부활한다.

 

이 책은 죄는 어떻게 생기고 인간이 죄를 처벌하는 근거는 무엇이며 과연 처벌이 의도한 대로 효과가 있는지에 대하여 끝임없이 문제제기를 한다. 사유재산의 폐해에 대하여 적나라한 공격을 하고 네흘류도프가 농민들에게 농지를 분배하는 결단을 하게 한다.

 

특히 동시대의 사상과 이론을 무수히 인용한다. 헨리 조지의 사상, 법철학자 롬브로조의 사상을 비롯한 동시대의 지식과 사상을 흡수한 흔적이 곳곳에 묻어나고, 톨스토이의 사상을 군데군데 밝히고 있다.

  

2. 발췌

인상 깊는 대목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그의 마음속에 잠들어 있던 신이 눈을 뜬 것이다.

 

이 젊은이는 문제시될 만한 흉악범이 아닌, 우리 주변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평범한 인간이다. 그가 지금 그런 인간이 되어버린 것은 환경이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러한 인간들이 생겨나는 환경을 없애기 위해서 아무러한 조치도 취하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이런 인간들을 만들어내는 시설을 장려하고 있는 형편이다. 그런 시설이란 바로 큰 공장, 작업장, 음식점, 술집, 유곽 등이다.

 

그 무서운 밤 이후 그녀는 神도 善도 믿지 않게 되었다.

 

인간이란 흐르는 강물과 같다. 물은 어느 강에서든 흐른다는 데는 변함이 없으나 강 하나만 생각해 보더라도 어느 지점은 좁고 물살이 빠른 반면, 넓고 물살이 느린 곳도 있다.

 

기존의 것을 남에게 넘겨준다든가 파괴하기는 쉬우나 새로이 창조한다는 건 힘든 일이라는 걸 알아야 한다.

 

토지는 절대 사유할 수 없다. 또한 토지는 물과 공기, 태양과 마찬가지로 매매할 수도 없다. 인간은 토지에 대해서, 그리고 토지가 인간에게 베푸는 온갖 혜택에 대해서 누구나 평등한 권리를 가지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검사나 재판관들을 무조건 새로운 자유주의의 기수로 생각합니다. 물론 그들도 한때는 그랬을지 모르지만 지금 입장은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그들은 이제 20일의 봉급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일개 관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자기가 오늘날까지 생활해 온 사회에 대해 마음속으로부터 혐오하게 되었다. 교묘하게 위장된 수많은 사람들의 고통 위에 소수 특정인들의 만족과 편의가 보장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미국에 노예 제도가 존재하던 무렵 미국 작가 토로가 이 제도가 합법화되고 정당화된 국가에서 선량한 시민들의 유일한 안식처는 오직 감옥뿐이라고 했던 말을 상기했다.

 

우리가 잠시라도 어떤 상황에 처했을 때 인간애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을 절대 깨닫지 못한다면, 사람에 대해서 죄를 지으면서도 결코 그것이 죄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아무런 죄책감도 느끼지 못할 것이다.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중요한 특성, 사랑과 동정을 품을 줄 모르는 인간을 본다는 건 정말 무서운 일이다.

 

물론 물건이라면 사랑 없이도 다룰 수 있다.....그러나 인간을 애정 없이 다룰 수가 있을까?

 

해악 없이 음식을 유익하게 섭취할 수 있는 건 식욕이 있을 때뿐이다. 그렇듯이 해악 없이 유익하게 인간과 사귈 수 있는 건 사랑이 있을 때뿐이다.

 

어떤 인간이든 어느 정도는 자기의 사상으로, 또 어느 정도는 타인의 사상으로 생활하고 행동하게 마련이다.

 

노보드보로프의 지성 -그의 분자- 은 상당한 것이었고, 그의 긍지 -그의 분모- 또한 비할 데 없이 컸으며 그것은 그의 지성을 벌써부터 능가하고 있었다. 반면, 시몬손은 사상의 힘으로 행동을 결정짓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 남성적 타입의 사람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보지 않는 것을 보는 내가 미치광이인가. 아니면 내가 보고 있는 그 같은 짓들은 하는 그들이 미치광이인가?

 

계산할 것이 뭐가 있겠어요. 계산은 하느님이 대신 해주실 거예요.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하늘나라에서는 가장 큰 사람이다.

 

네흘류도프는 많은 사람들이 괴로움을 당하고 있는 악에서 구원받기 위한 유일한 길은, 하느님 앞에서 언제나 자신을 죄인으로 알고 자기가 남을 벌주고 선도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는 데 있음을 분명하게 깨닫게 되었다.

 

그럼에도 사회에 질서가 유지되는 것은 남을 재판하고 처벌하는 법적인 공인을 받고 있는 죄인들 때문이 아니라 이러한 타락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서로에게 연민과 사랑을 품고 있는 사람들 때문임을 네흘류도프는 알게 되었다.

 

다섯 가지 계율을 지켜나갈 수만 있다면 인간 사회는 전혀 새로운 질서를 갖게 되고 네흘류도프를 분노케 하던 온갖 폭행도 자연 사라지며 인류가 획득할 수 있는 최고의 행복, 지상 천국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첫째 계율 : 살인하는 것도 안될 뿐만 아니라 형제에게 성을 내거나 바보라고 욕을 해도 안 된다. 그리고 만약 서로 싸우게 되면 예물을 드리기 전에 즉 기도하기 전에 화해해야 한다.

 

둘째 계율 : 간음하는 것도 안될 뿐만 아니라 여자를 보고 음란한 생각을 품어서도 안 된다. 단 한 여자와 하나가 되면 절대 믿음을 저버려선 안 된다.

 

셋째 계율 : 무슨 일을 하든지 맹세나 헛 약속을 해서는 안 된다.

 

넷째 계율 : 눈에 눈으로 보복하지 말 것이며 오른쪽 뺨을 치거든 왼쪽 뺨도 대야 한다. 모욕을 당해도 용서하고 온화하게 이를 참아야 하며 도움을 구하는 사람이 누구이든 거절해서는 안 된다.

 

다섯째 계율 : 원수를 미워하거나 그들과 싸워서는 안 되며 원수를  사랑하고 도우며 그들에게 봉사해야 한다.

 

3. 소감

이 소설은 톨스토이의 인생경험이 곳곳에 배여 있다는 점에서,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과 대비된다는 점에서 의미와 재미를 갖춘 책이다. 법률가, 사회개혁가를 비롯한 많은 분들께 일독을 권한다. 분량은 많지만 한번 읽고 나면 당신의 인생이 그 전과 같을 수는 없으리라.

 

           2007. 10. 18. 부산에서 자작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