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책에대한 책)

공지영 외 9인의 '나의 고전읽기'를 읽고

자작나무의숲 2007. 8. 28. 22:45

공지영 외 9인이 지은 '나의 고전읽기'를 읽었다. 글을 쓴 10인은 공지영, 김두식, 노회찬, 배병삼, 변영주, 신경림, 이주향, 표정훈, 현기영, 홍세화이다. 그들이 꼽은 고전은 톨스토이 부활, 톨스토이 민화집, 조선왕조실록, 맹자, 400번의 구타, 정지용의 시 세계, 반야심경, 장자,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자발적 복종이다.

 

이 책에서 단연 눈에 띈 것은 공지영이 꼽은 '톨스토이 부활', 신경림이 꼽은 '정지용의 시 세계'다.

 

공지영의 글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세상을 향해 낮은 자세로 임했던 성자 톨스토이, 그런 그의 모습은 유언을 통해서도 여실히 알 수 있다. "내 무덤은 최대한 간소하게 하고 내 재산은 러시아 민중들에게 돌려주라"

 

톨스토이라는 예술가의 삶을 요약해보면 귀족가문에서 태어나고 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태생을 스스로 부정하는 삶이었다고 할 수 있다.

 

톨스토이는 부활뿐만 아니라 여러 작품에서 "상류사회의 고아함에 넌더리가 난다"는 말을 되풀이한다.

 

"죽은 사람만이 죽음을 두려워한다. 살아 있는 사람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미 부활을 체험한 것이다"

 

나는 토마스 머튼이라는 수사의 말을 떠올리면서 세상의 낮은 곳, 고통 받는 곳에서의 부활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부활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톨스토이가 평생 동안 절실히 골몰했던 주제는 '삶과 죽음'이었다. 때문에 어떤 인간이 죽고 어떤 인간이 부활하는지에 초점을 두고 부활을 읽으면 대문호의 실존적 고민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도스토예프스키가 인간의 추악한 면을 끝까지 파헤침으로써 우리에게 인간을 다시 생각하게 한 작가였다면, 톨스토이는 당대의 러시아 민중들과 함께 고통받고 함께 부활했던 성자였다.

 

신경림의 글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근대적 개념의 시를 완성한 사람은 정지용이다.

 

정지용의 시는 재치 있고 발랄한 면도 있지만 가장 밑바닥에 깔린 의식은 역시 아버지 어머니 없이 자랐다는 고아의식이 아닌가 한다. 물론 정지용이 고아는 아니었다. 다만 시의 화자가 항상 고아로 나온다. 아버지도 없고 항상 뭔가에 쫓기는 듯 불안한 마음 같은 정서가 기조에 깔려 있다.

 

이미지는 정지용부터 시의 중요한 요소로 대접받게 된다.

 

정지용이 전통적으로 내려오던 이미지에 대한 개념을 자신의 시 안에 구현했다는 사실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문법적으로 다듬어지지 않았던 우리말이 그의 시 안에 정리됨으로써 우리말의 아름다움이 한 단계 더 깊어졌다는 사실이다.

 

그외 인상 깊게 읽었던 구절은 다음과 같다.

 

어떤 이가 마을을 지나는데, 어느 집의 갓난아이가 우물 쪽으로 기어가고 있었다. 이를 보고 아기를 구하지 않을 사람은 없으리라......인간의 마음에 두루 차마 보고 그냥 넘어가지 못하는 착한 본성이 있기 때문이다(맹자).

 

정치 전략가로서 맹자는 당시 가장 큰 정치 사회적 문제가 관계의 해체, 구체적으로 가족의 붕괴라고 보았다......맹자에게 있어 관계(공동체)를 파괴하는 것이야말로 최악의 적이다(배병삼).

 

영화는 가장 보수적이면서도 가장 감동적인 예술이 될 수도 있다. 영화는, 지배 계급이 아니면 가질 수 없는 자본과 시스템화된 노동력을 기반으로 하기에 새로운 담론을 형성하기보다는 기존의 장르를 집대성하는 데 적합하기 때문이다(변영주).

 

나는 발견했다. 학자에게 법을 들으면 단순히 지식이 되지만 깨달은 자에게 법을 들으면 생이 바뀐다는 말의 참뜻을!(이주향)

 

싸리비는 싸리를 철끈으로 묶은 것이지, 싸리비 그 자체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오온히 모두 공했음을 깨달았을 때 괴로움과 액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은 괴롭히는 대상이 없어져서가 아니라 그것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달라졌기 때문이다(이주향)

 

책의 자식이란 사르트르가 자신을 가리켜 일컬은 말이었다. 사생아로 태어난 사르트르는 외할아버지 서재의 책들 속에서 파묻혀 자랐는데, 아버지 대신 책이 자기를 키웠다고 말하곤 했다.....지금 여기에 있으면서 동시에 그때 그 순간으로 돌아가 있기도 한 '나'를 프루스트는 '초시간적 자아'라고 했다(현기영)

 

라보에티는 1인 치하의 폭정은 구체적인 힘에 의해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이 준 권리를 버리고 자발적으로 복종하는 신민들에 의해 유지된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공화국을 뜻하는 영어 단어 'republic'의 라틴어 어원은 공공성을 뜻하는 'res publica'이지만 우리는 과연 공공성의 가치를 공유하고 있는가?

 

국가권력에 의한 교육 과정과 자본에 의한 대중 매체가 한국 사회 구성원들에게 주입하려고 하는 것은 바로 자발적 복종이다(홍세화)

 

고전의 가치는 지식의 보고임과 동시에 창의력의 원천이 된다는 데 있다. 이 책이 고전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고 선택의 고민을 덜어주는데 큰 기여를 하리라 생각한다. 일독을 권한다. 

 

        2007. 8. 28. 부산에서 문형배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