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책에대한 책)

이진경 외 18인이 쓴 '고전의 향연'을 읽고

자작나무의숲 2007. 10. 31. 20:45

이진경 외 18인이 쓴 '고전의 향연'을 읽었다. 이진경 서울산업대 교수, 이정우 철학아카데미 공동대표, 심경호 고려대 교수, 배병삼 영산대 교수 등 19인이 고전을 읽고 쓴 일종의 독후감으로 한겨레신문에서 고전 다시 읽기라는 제목으로 연재되었던 글들이다. 독후감을 즐겨 읽는 이유는 무엇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에 대한 대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도 19인의 전문가들이 고른 100권의 책이 소개되어 있으니 무엇을 읽을 것인가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고, 전문가들의 서평과 고전에 따온 문구가 소개되어 있으니 어떻게 읽을 것인가에 대한 답도 구할 수 있다.

 

이 책에 소개되고 있는 책은 서양사상, 동양사상, 한국의 사상과 문화, 정치 역사, 문학, 과학 6가지로 분류되어 있고, 플라톤에서 움베르토 에코까지 작가도 다양하다.

 

이 책에서 인상 깊었던 대목은 다음과 같다.

 

내가 바라는 세계는 집단적 적대감에서 해방된 세계, 만인의 행복은 투쟁이 아니라 협력에서 나올 수 있음을 깨달을 수 있는 세계다......도덕적 분노라고 말해지는 보복 감정은 잔인성에 다름 아니다. 범죄자에 대한 가학행위는 결코 정당회될 수 없다. 섬세한 교육으로도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다면 당연히 그 방법이 우선되어야 한다(버트런드 러셀의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 중에서)

 

러셀이 생각하는 훌륭한 삶이란 '사랑에 의해 고취되고 지식으로 인도되는 삶'이다.

 

저기 따로 미친 놈들이 없다면 자신의 정상성을 대체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을 것인가! 이를 흔히 동일자와 타자라는 말로 표현한다......이성이 광기를 대신해서 광기에 대해 말하고 광인은 그 말을 통해 자신을 이해하는 관계 역시 다양한 영역에서 다른 종류의 역사를, 대행자들에 의해 지워지고 묻혀버린 역사를 새로이 쓰게 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매슬로는 생리적 욕구, 안전, 소속감과 애정, 자존심에 이르는 요구를 결핍욕구라고 부른다......자신을 옭아매던 결핍욕구에서 벗어난 순간, 인간은 비로소 진정한 자신을 실현하려고 하는 욕구에 휩싸인다. 이를 매슬로는 자기 자신이 되려는 욕망 즉 존재욕구라고 부른다. 존재욕구는 채우면 채울수록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더 강해진다......성장을 위해서는 문제에 주목하기보다는 이상에 집중하는 게 더 낫다. 

 

진정 차이를 긍정하는 자라면, 자신과 다른 것과 만나서 그것을 통해 자신이 달라지겠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차이를 진정 긍정하는 것이고 차이를 생성으로 파악하는 것이다.

 

하느님의 성실성을 구성하는 요소가 중용이다. 여기 '중'은 가운데가 아니라 적중함을 뜻한다. 사람마다 때와 처지에 합당하게 행동하는 것이 중이다. 그리고 그 적중한 상태가 일상화되어 몸에 익어버린 상태를 용이라 이른다. 

 

하늘이 일으키는 재해는 그래도 피할 방도가 있을 수 있지만, 스스로 만들어낸 재앙은 벗어나 살 길이 없다(맹자)

 

학문의 발전은 기본적으로 아버지 죽이기를 통해 이뤄진다. 

 

이황은 사화의 원인을 두 가지로 압축한다. 첫째는 제대로 훈련되지 않은 선비들이 높은 지위를 탐한다는 점이다. 둘째는 정치에 나아가는 길만 있지 물러나는 길이 없음, 즉 퇴로가 차단되어 있다는 점이다......퇴계는 그 대책으로 두 가지 길을 제시한다. 하나는 인재의 투명성을 확보하는 일이다. 서원을 준국가기관을 공식화함으로써 인재의 투명성을 확보하고자 한 것이다. 또 하나는 퇴출의 유연성, 즉 퇴로 건설이다. 군주의 호출에 대해 50여 차례에 걸쳐 사직을 하고 물러난다는 뜻을 아예 이름으로 삼기도 하였다......요컨대 그의 꿈은 과거를 통해 조정에 나아갔다가 자리가 없어지면 서원으로 물러 나오고 재교육을 통해 능력을 갖추면 또 조정으로 나아갔다가 다시 물러 나오는, 그런 순환시스템이었다.  

 

수레가 다니게 되면 길은 저절로 만들어진다......대저 상인은 사농공상의 하나에 속할 뿐이지만, 실은 그 하나가 나머지 세 부류를 소통시키기 때문에 그 비중은 훨씬 크다고 해야 한다(박제가 '북학의' 중에서) 

 

유교정치의 성패는 곧 소통에 사활이 걸린다. 퇴계 이황이 지방 수령의 역할을 "임금의 뜻을 아래에 베풀고 백성의 원망을 위로 전달하는 것"으로 정의하고 그 불능을 자책하며 물러나기를 청한 것도 이런 맥락 위에 있다.

 

루소는 "자연 상태의 인간은 선하지만 오직 제도를 통해서만 악해진다"고 말한다.

 

무오류성이야말로 최고의 오류다.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뿐이라면 진보는 없다.

 

밀은 자유를 제한할 수 있는 유일한 기준으로 '타인 위해의 원칙(Harm to Others Principle)'을 내세운다.

 

졸라는 "정의를 위해 싸우는 것이 곧 조국을 위해 싸우는 것"이라고 내내 주장했다.

 

사람은 알아야 할 것보다 원하는 것만을 보려는 경향이 있다.

 

빅터 프랭클은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다"는 니체의 말을 힘주어 강조한다......빅터 프랭클은 죽음의 수용소에서 절대 뺏길 수 없는 인류 최후의 자유를 깨닫는다. 그것은 "주어진 상황에서 자신의 태도를 취할 수 있는 자유"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나는 나의 고통이 의미 없어질 때가 가장 두렵다"고 말했다.

 

쿨라는 트로브리안드 군도에서 행해지는 것으로 선물이 증여자와 답례자 두 항 사이에서 행해지는 것과 달리 섬 전체를 돌며 여러 항 사이에서 행해진다......이처럼 공동체의 삶은 어디든 증여의 양상을 취한다.

 

클로드 레비스트로스는 럼주 한 잔의 미묘한 맛은 거기에 섞여 들어간 불순물 때문임을. 사람들의 삶에서 이질적인 것, 불순물을 제거해버리려는 것은 "사회에서 가장 좋은 향기를 제공하는 것들을 스스로 완전히 파괴해버리려고 하는 것"임을

 

과거란 실재이고 역사란 그것의 현재적 의미라면, 카는 그 의미와 무의미를 나누는 범주, 곧 역사 인식의 패러다임을 진보로 규정했다.

 

"승리자는 역사를 쓰고 패배자는 소설을 쓴다"는 말을 확인시키듯이 현실의 패배자인 돈키호테는 시간과 죽음과 싸우고, 그 전투에서 진정한 승리를 거두면서, 소설의 힘이 어떤 것인지 보여준다.

 

셰익스피어는 "가장 달콤한 것도 행실에 따라 시큼해지기에/썩은 백합은 잡초보다 더 악취를 풍긴다"며 사람이 가야할 변함없는 길을 노래하였다.

 

칼 포퍼는 "내가 잘못이고 네가 옳을 수 있다. 그리고 노력함으로써, 우리는 진리에 가까이 갈 수 있다"는 테제를 통해 지식의 본성과 성장을 설명하였다.....지식, 특히 과학적 지식은 정당화되지 않은 추측, 우리가 직면한 문제에 대한 잠정적 해결, 곧 추측에 의해 성장한다. 이러한 추측은 비판, 곧 엄정한 비판적 테스트를 포함하고 있는 의도적 반박의 통제를 받는다.

 

요약하면 행복이 아니라, 인간의 고통이 합리적인 공공정책의 가장 시급한 문제이다. 행복의 달성은 각자의 사적인 노력에 맡겨야 한다(칼 포퍼의 '추측과 논박'중에서).

 

무엇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에 대한 명쾌한 대답을 주는 책이다. 일독을 권한다.

 

             2007. 10. 31. 부산에서 자작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