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책에대한 책)

장정일의 '공부'를 읽고

자작나무의숲 2006. 12. 9. 22:10

장정일의 '공부'를 읽었다. 장정일이 쓴 책이 많았지만 아마도 대중들에게는 '너에게 나를 보낸다', '내게 거짓말을 해봐'가 익숙하지 않을까 싶다. 특히 '내게 거짓말을 해봐'는 논란이 많았고, 그 때문에 음란물 판매죄로 기소되어 법정구속되기도 하였다. 강금실 변호사가 그의 변호인이 되어 '내게 거짓말을 해봐는 장정일이 세계와 소통하는 하나의 길로 기능하는데, 그는 이 소설에서 육체적 성관계의 가장 밑바닥에까지 파고들어가는 극단적인 실험을 하고 있다'는 취지로 변론을 하여 화제가 되었다. 어쨌거나 장정일의 책을 읽는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닌 것만큼은 확실하다.

 

장정일은 '여호와의 증인' 교리에 맞게 학내 군사훈련을 받기 싫어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독학을 하였다고 한다. 장정일의 '공부'는 장정일의 독후감을 묶은 책이다.

 

첫번 째 독후감의 제목은 '잠 못 이룬 그 밤, 잠 못 이룬 사람'이다. 박노자의 '당신들의 대한민국', '좌우는 있어도 위아래는 없다'라는 책을 읽은 소감이 실려 있다.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박노자의 주장을 비중있게 소개한다. '한국 사회의 주류가 된 중산층은 군대라는 억압적인 체제와 정면충돌하기보다는 보통 병역을 대거 기피하는 지도층을 모방하여 부정한 방법으로 자식들의 군 복무에서 특권적인 여건을 따 내려고 한다' '한국의 중산층 가장들은 바로 이런 문제들을 시정하기 위해서라도 양심적 대체 복무자들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하고 그들을우군으로 삼아야 한다. 대체복무 신청은 군을 신성시하는 군대 예외주의에 이의를 제기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장정일의 공부는 계속된다. 그가 읽은 책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좌/우를 횡단한다. 때로는 지지를, 때로는 비판을 하면서 그의 공부는 계속된다.

 

이덕일의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 다치바나 다카시의 '도쿄대생은 바보가 되었는가', 마르크 블로흐의 '역사를 위한 변명', 이종오의 '난세를 평정하는 중국 통치학', 고미숙의 '한국의 근대성, 그 기원을 찾아서 : 민족, 섹슈얼리티, 병리학', 시마자키 도손의 '봄', 타카미 코슌의 '배틀로열', 알로이스 그라이터의 '모차르트', 이주영의 '미국의 좌파와 우파', 엠마뉘엘 토드의 '제국의 몰락', 안인희의 '게르만 신화, 바그너, 히틀러', 데틀레프 포이케르트의 '나치시대의 일상사', 랄프 쇤만의 '잔인한 이스라엘', 주겸지의 '중국이 만든 유럽의 근대', 박태균의 '조봉암 연구', 박찬국의 '하이데거와 나치즘', 서중석의 '조봉암과 1950년대', 월터 C. 랑거의 '히틀러의 정신분석', 촘스키의 '촘스키, 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하는가', 신용구의 '박정희 정신분석, 신화는 없다', 리튼 스트래치의 '엘리자베스와 에섹스', 임지현, 김용우의 '대중독재론'......

 

장정일의 '공부'에서는 조봉암에 대하여 상당 페이지를 할애한다. '조봉암 ; 우리 현대사가 걸어보지 못했던 길', '피해대중과 레드 콤플렉스의 기원' 제목으로 2번에 걸쳐 독후감을 싣는다. 특히 '극우반공 이데올로기의 지주인 레드 콤플렉스로 뿌리내리게 된 결정적인 사건은, 뭐니 뭐니 해도 한국전쟁 직전과 직후에 경험한 학살때문이다고 단정한다. '평화통일론', '피해대중 단결론'과 같은 조봉암의 3대 대통령 선거 공약도 소개한다. 

 

임지현, 김용우가 엮은 '대중독재'라는 책을 읽고 쓴 독후감 '2007년, 아마겟돈'도 눈여겨 볼 만하다. '대중독재가 전제정과 뚜렷하게 구분되는 것은 아래로부터 지지를 필요로 한다'는 임지현의 주장에 장정일은 '로마의 지배계급이 그랬듯이 항상 쓸 수 있게 벼리어 놓은 강제와 폭력은 대중독재의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전체주의 정권이 선전과 헤게모니 공작을 동원해 동의의 조작을 만들어 내는 것과 동시에 암묵적인 위협과 폭력을 통해 강제된 복종 또한 얻어 내고야 만다는 것을 세심하게 고려하지 않았다'고 맞받아 친다.

 

그 외에도 '시민의 권한을 개인 기업에 양도하는 것이 신자유주의'라는 촘스키의 책, '모든 범죄는 완전범죄를 상정해야만 비로소 저질러질 수 있기 때문에, 그 순간에 떠올리는 형법의 억지력은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사회문제나 범죄는 법 이전에, 사회가 함께 관심을 기여여 해결해야지 처벌의 강도를 높인다고 해서 해결될 게 아니다'는 내용의 타카미 코슌의 '배틀로열', 실존주의 철학자로 유명한 하이데거가 프라이부르크 대학 총장으로서 나치에 적극 협력한 이야기를 다룬 박찬국의 '하이데거와 나치즘'에 대한 독후감도 흥미롭다.

 

이 책을 읽음으로써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작가쯤으로 알고 있던 장정일의 깊이와 넓이에 대하여 감탄할 따름이다. 그의 바람대로 인문학이 부활하는 계기를 될 것을 기대한다.

 

             2006. 12. 9. 창원에서 자작나무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