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인문)

장정일의 '생각'을 읽고

자작나무의숲 2007. 5. 23. 21:22

장정일의 '생각'이라는 책을 읽었다. 장정일의 '공부'라는 책을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있어 서점에서 장정일의 책이라는 이유만으로 주저 없이 '생각'을 골랐다.

 

생각(生覺)은 장정일의 해석에 따르면 살면서 깨닫는 것이라고 한다. 이 책 속에는 '아무 뜻도 없어요'라는 제목의 단상과 전영잡감(電影雜感)이라는 제목의 영화감상문, 삼국지 시사파일이라는 제목으로 삼국지 속의 인물과 뉴스 속의 인물을 대조한 이야기, 나의 삼국지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삼국지를 지은 또는 번역한 것과 관련된 이야기가 들어 있다.

 

인상 깊은 대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즉, 지식인들은 보편적인 인간은 사랑하지만 구체적인 인간은 사랑하지 않는다.

 

창작이 아닌 지혜의 장에서 표절이란 단지 시간상의 선후 문제일까?

 

예의란 뉘앙스로 느끼는 것이 아니라 디테일한 실천의 문제.

 

오직 개인적인 만족과 즐거움만을 위해 주위에 눈을 돌리지 않고 사는 일이, 민족과 국가의 이름을 빌어 개인적인 사욕을 키우는 사람들보다 더 신뢰가 간다.

 

나는 이런 방식으로 시가 읽히는 문화를 "알 듯 말 듯한 것을 즐기는 문화"라고 즐겨 말한다.

 

짐승은 배울 수 있지만 아무래도 깨달을 수 없고, 인간은 어쩌다 깨달을 수는 있지만 결코 배우지는 못한다. 하므로 교육에 관해서는 단 한가지 원칙만 유효하다. 어떻게 하면 "깨닫게 해 줄 것인가"를 고민하는 게 교육이다.

 

100만인 서명 운동은 그것이 어떤 선의에서 행해지든지 간에 우리 사회가 물량과 물리적인 세가 득세하는 사회라는 것을 가르쳐 준다.

 

당신이 무엇을 먹는지 말해 달라. 그러면 당신이 누구인지 말할 수 있다.

 

이때 낮과 밤 사이클이 뒤바뀌게 되는데, 이것은 다분히 비사회적 행동의 표시이며, 낮에는 활동하고 밤에 잠을 자기를 원하는 사회질서에 불복한다는 표시이다.

 

평생 고용주의 노예로 살기로 작정한 사람만이 일찍 일어난다.

 

비밀이 없는 사람은 가난한 사람이라고 말한 사람은 이상(천재시인 이상을 말함)이다.

 

취미가 없는 사람은 가난한 사람이다.

 

군자라면, 사물에다 자기의 뜻을 잠시 붙일 수는 있지만 사물에다 자기의 뜻을 머무르게 해서는 안 된다. 사물에다 뜻을 붙이는 것은 비록 미물이라도 족히 즐거움이 될 수 있고, 보물이라도 병통이 되기엔 부족하지만, 사물에다 뜻을 머무르게 한다면 비록 미물이라도 병통이 되기에 족하고, 보물이라도 즐거움이 되기에 부족하다. 

 

인간은 정직해서만 되는 게 아니라 성실해야 한다. 

 

제도나 법은 속성상 새로운 사회 현상을 선도하고 진단하기보다 추후 승인하는 성격이 큰 반면, 문화는 이미 추인된 사회 현상에 의문을 제시할 뿐 아니라 새로운 현상을 재빨리 진단한다. 

 

르포 혹은 다큐멘터리 사진은 사회에 개입하거나 문제를 제기하기위한 목적을 가진다. 하지만 온갖 단단한 것을 녹여 버리는 상품미학은, 대상을 맥락으로부터 분리한다.  

 

장 주네가 '죄가 크면 은총도 깊다'고 했든 말든, 범죄자들의 세계에서 자신이 저지르지 않은 범죄를 자기가 저지른 양 자랑하고 나서는 것은 흔한 일이다. 

 

나관중이 썼듯이 역사란 "오랜 나누어진 것은 다시 합해지고, 합해진 지 오래면 반드시 다시 나뉘어진다"는 것이다. 

 

장정일은 5년만에 삼국지를 탈고 하였다고 한다.  한편으로는 이문열의 삼국지, 황석영의 삼국지를 극복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중화주의와 춘추필법을 털어 내어 현실적이고 합리적이며 인간의 피가 도는 주인공들을 그려냈다고 한다. 그의 삼국지를 읽고 싶다.

 

                   2007. 5. 23. 부산에서 자작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