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기타)

매트 리들리의 '이타적 유전자'를 읽고

자작나무의숲 2006. 9. 26. 00:12

매트 리들리의 '이타적 유전자'를 번역본으로 읽었다.

원제는 The Origins of Virtue이다.

이 책은 '어떤 개체의 행동을 결정하는 일관된 기준은 그 소속 집단이나 가족의 이익이 아니며, 그 개체 자신의 이익도 아니라는 것이다. 개체는 오로지 유전자의 이익을 위하여 행동한다'는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개념을 소개하면서 시작한다.

나아가 '인생은 제로섬 게임이 아니다. 상대와의 거래를 통해 이득을 얻어려는 나의 이기적 욕망이 나와의 거래를 통해 이득을 얻어려는 상대편의 이기적 욕망이 거래를 통해 둘다 충족될 수 있다. 인정에 기초해서 이룩된 사회는 친족 편애 때문에 엉망진창이 되고 말 것이다. 낯선 사람들 간의 이기적 욕망을 이합집산하는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이 훨씬 이롭다'는 주장으로 나아간다.

 

'죄수의 딜레마'에 관하여 동일한 상대와 반복적으로 여러 차례의 게임을 할 때에는 적의 아닌 호의가 게임의 규칙이 된다는 트리버스의 실험결과를 들이대면서 다른 결론을 소개한다. 즉, 동물 세계나 인간 사회에서 협동이 무척 자주 일어나고 이기적 개체들이 서로 협동을 하는 것은 호혜성 때문이라는 것이다. 동물이 서로를 돕는 것은 이타주의가 아니고 이기적인 동기에서 비롯된 상호적 호혜성이라고 본다.

호혜주의는 사람들이 서로를 식별해야만 실현될 수 있다. 호혜주의에는 게임이론에서는 고려되지 않는 아주 중요한 요소가 하나 있는데, 그것이 평판이다.

이는 대도시에는 시골마을에 비하여 무례한 사람이 더 많이 들끓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여기서 인간은 30분의 만남으로도 상대방의 신뢰도를 예측할 수 있다는 프랭크의 실험결과도 소개한다.

 

식사의 의미는 모두 평등하게 나눈다는 데 있다고 하면서도, 같이 식사를 하는 행위 속에서도 위험의 분산이라는 계산이 들어 있음을 지적한다. 즉, 고기가 썩어 저장이 불가능한 열대지방으로 갈수록 육류를 나눠 먹는 관습이 더 심화되고 이는 총공급량을 줄이지 않으면서 위험을 낮추는 데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설명한다.

기린을 사냥하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노력이 분명히 필요하지만, 일단 잡히고 나면 고기는 썩기 전에 사냥 캠프의 가장 게으른 사람에게까지 공유되기 위해 거기에 존재한다는 호크스의 실험결과도 소개된다. 여기서 공인된 도둑질이 문제되고, 유능한 사냥꾼에게 돌아오는 보답이 평판인가 ? 실물적 대가인가? 논란이 거론된다.

선물의 의미에 대하여도 선물을 받는 사람을 보답이라는 의무감에 묶어 놓기 위한 것이라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즉, 선물도 무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협동의 장기적인 열매를 따려면 코 앞의 이익에 연연하지 말아야 하지만 그러나 문제는 이것을 남들이 알아주지 않으면 안된다는 프랭크의 이론(헌신성의 문제라 이름 붙였다)을 소개한다. 인간은 신뢰도를 높이는 구속력을 만들어 내기 위해 감정을 활용한다. 즉, 인간의 감정은 합리적 계산에서는 드러나지 않는 미래의 비용을 현재 시점으로 앞당겨 도입함으로써 헌신성 문제의 결과를 바꿔놓는다고 한다.

 

또한 일정 시기와 일정 공간의 국지적인 유행을 따르는 문제에 관하여는 '정보의 순차성'이라는 개념을 동원하여 다른 사람들이 어떤 선택을 했는지가 매우 중요한 정보원인 된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우리는 집단을 위해 우리를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위해 집단을 이용하도록 설계되어 있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집단들 내부의 협동성이 강할수록 집단 간의 투쟁도 폭력적이라는 진화법칙에서 우리 인간도 예외가 아님을 확인하고 있다.

 

'공동소유의 비극'에서 어느 한쪽의 협동이 다른 쪽에게는 기회가 되는 불합리가 발생함을 지적하고 다만, 공동소유의 비극에서 정부는 해결책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비극의 주범일 뿐이다고  경고한다.

  

유전자의 이해관계에 의해서 이타주의적 성향이 형성된다는 저자의 결론은 이타적 행동을 이기적 동기와 엄격히 구분하는 데 익숙한 우리로서는 당혹스러운 이야기지만(저자가 일정한 가치에 지우쳐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아이들에게 선행을 가르칠 때 선행이란 어렵지만 고귀한 것이므로 실천해야 한다고 가르칠 것이 아니라, 선행은 장기적으로 보답이 있으므로 실천하는 것이 좋다고 가르치자는 것이다'라는 대목에서, '인간의 정신은 이기적 유전자에 의하여 만들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정신은 사회성과 협동성과 신뢰성을 지향한다'는 대목에서, '우리는 평등한 개인 간의 사회적, 물질적 거래를 조장해야 한다. 신뢰는 거래를 통해 획득되고, 또한 신뢰는 미덕의 기초가 되기 때문이다'는 대목에서 수긍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의 힘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