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법연구회

고 한기택 부장판사 납골당을 다녀와서

자작나무의숲 2006. 9. 3. 00:14
 

고 한기택 부장님 납골당을 다녀와서

 1. 2005. 10. 24. 한기택 부장님이 안치되어 있는 납골당을 다녀왔습니다. 미리내성지 입구에 있는 有無相通 실버타운 안이었습니다. ‘하늘문’이라는 별도의 건물에 들어서니 261번 납골함에 한기택 크리스토폴의 글자와 사진 한 장이 있어 그 분이 안치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특별히 믿는 종교가 없는지라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 형식으로 저, 아내, 아들이 나란히 서서 1분간 묵념하는 형식을 취했습니다. 아내는 한부장님 사진을 보는 순간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고 저는 용케도 잘 참다가 ‘하늘문’을 열고 나오는 순간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2. 저는 8월 초 한부장님이 운명하였다는 문자메세지를 받고 이런 저런 이유로 문상을 가지 못했습니다. 며칠 전 아침 운동을 하러 가는데 갑자기 한부장님 생각이 나면서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쏟아져 내렸습니다. 그것이 자책의 눈물인지 그리움의 눈물인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습니다. 가을휴가를 이용하여 가족과 함께 납골당에도 다녀왔습니다.

 

3. 한부장님이 떠나신 지 2개월이 지난 지금 우리법연구회에는 몇 가지 변화가 생겼습니다. 우리법연구회의 다수 회원이 지지하는 대법원장이 취임하셨고 우리법연구회 출신 변호사가 대법관에 제청되었으며 이와 관련하여 일부 회원이 탈회하였고 재야 회원도 대거 탈회를 앞두고 있는 상황입니다.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상황에서 문득 한부장님이 살아 계셨더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싶어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가. ‘저는 내가 뭐가 되겠다는 생각을 버리는 순간 남들이 나를 죽었다고  보건 말건, 진정한 판사로서의 나의 삶이 시작될 것으로 믿습니다’

  우리법연구회 논문집(Ⅱ) 434p에 실린 한부장님의 말씀입니다. 상황이 우호적으로 변화된 상황에서는 더욱더 인사와 관련하여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행동을 자제해야 할 것입니다(원래 이 부분에 '우리법연구회는 대법원장을 지지하고, 법원의 중요부분을 구성함으로써, 주류의 일원으로 편입된 이상, 그토록 비판하던 기존 주류들의 잘못된 행태를 되풀이해서는 아니 되겠습니다'는 부분이 들어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법연구회 출신 판사들이 대법원에 진출해 있는 상황에서 회원들에게 엄중한 윤리의식이 필요함을 강조하기 위하여 비유법을 동원하였을 뿐, 판사를 주류와 비주류로 편가르려는 의도로 썼던 것이 아니었으므로, 불필요한 오해를 해소하기 위하여 위와 같이 고칩니다. 양해를 구합니다). 16세기의 퇴계선생 같은 분도 본인뿐만 아니라 가정사람들에 대하여 전근청탁을 엄중히 금했다고 합니다(권오봉, 퇴계선생 일대기, 교육과학사, 2005, 61p).

 

  나. ‘내가 목숨 걸고 악착같이 붙들어야 할 것은 그 무엇이 아니라, 법정에 있고 기록에 있는 다른 무엇이라 생각합니다’

  우리법연구회 논문집(Ⅱ) 434p에 실린 한부장님의 말씀입니다. 한부장님의 좌우명이었다는 ‘목숨걸고 재판하기’인데, 한부장님이 갑자기 우리 곁을 떠나시는 바람에 말이 씨가 되어버렸습니다.

  이제는 국민이 믿을 수 있을 정도로 법원을 바꿔야 하고 그렇지 못할 때는 우리법연구회도 일정한 책임을 피할 수 없게 되었는데, 법원을 바꾸는 방법은 목숨걸고 재판하기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열정과 지혜와 용기를 모아 재판하고, 그 결과에 책임집시다.

 

  다. ‘또 하나의 성공이유를 꼽자면 그들은 주위 사람들로부터 인정받는 사람들이었다’

  위 글은 우리법연구회 기념논문(Ⅱ) 341p에서 김종훈 선배가 제2차 사법파동의 성공원인을 분석한 글입니다. 한부장님이 제2차 사법파동의 중심이었음은 이제는 다 아는 사실이고, 그 분이 주위사람들로부터 인정받는 사람이었음은 예나 지금이나 다 아는 사실입니다.

  조관행 부장님이 주도하여 지법부장 이상을 상대로 한부장님 유족을 위한 모금을 하였는데, 순식간에 1억 원을 모았다는 기사를 보고서 다시 한번 한부장님의 진면목을 보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주위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있는지를 성찰해 볼 대목입니다. 

 

4. 저는 2005년 가족모임에서 마지막으로 한부장님을 뵈었습니다. 그 때 술자리를 같이 하면서 한부장님께 이런 말씀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부장님은 고등부장 승진하겠다고 판사 생활하신 게 아니지 않습니까? 오히려 그 반대로 생활하셨는데 오늘날 고등부장이 되셨습니다. 우리 후배들은 그런 한부장님을 존경하는 것입니다’

  에둘렀지만 생전에 한번이라도 한부장님을 존경한다고 말씀 드린 것이 지금 생각해보면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한부장님의 육신은 사라졌지만 그 정신은 우리들 마음속에 영원히 살아 계실 겁니다. 역사 속의 인물에게 시간은 아무 것도 아닌 것입니다.


2005. 10. 24. 우리법연구회 인터넷게시판에 자작나무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