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괄
카를 브루노 레더가 쓴 "세계사형백과"를 읽었다. 저자는 1929년 라이프니츠 근교에서 태어나 1949년 반소 선전의 죄로 25년간 노역형을 선고받았다가 1956년 석방되었다. 베를린자유대학에서 연극학을 전공하였고 자유 작가로 일했다.
저자는 사회 현상은 그 초기 형태를 보면 그것의 발달 메커니즘을 알 수 있음을 전제로 사형 연구도 그 최초의 근원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개인과 사회에 누적된 불안 심리와 억압된 공격심 때문에 사형수들은 속죄양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2. 발췌
국가가 형성됨에 따라 부족 체제가 붕괴해 가는 곳은 어디서나 국가권력은 먼저 피의 복수에 대해 이의를 주장하며 그 다음에는 점차 이를 압박하고 종국에는 이를 폐지한다.
자기의 죄를 스스로 극복하려 하지 않고 다른 것에 전가하려는 심리의 메커니즘은 현대까지도 변함없이 유지되고 있다. 이것이 사형을 요구하는 소리의 주된 원천이다.
그의 소행이 신을 노엽게 한 이상, 그 속죄를 위한 희생으로서 범인을 신에게 바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되었다. 죄가 있는 자가 죽으면 신의 노여움은 진정되리라.
옛날의 프랑크푸르트가 그랬었고 마녀재판이 손으로 헤아릴 수 있을 정도밖에 없었던 바젤도 마찬가지이다. 로텐부르크나 뉘른베르크도 그런 망상에 별로 영향을 받지 않았다. 공화적인 풍조가 강했던 위의 두 제국 직속의 자유 도시에서는 망상보다도 이성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시당국이 있었다는 것이 다행이었다.
베카리아의 기본 사상은(의제로서의) 사회계약을 체결할 때 개인은 국가에 대하여 가급적 적은 권리-국가의 존립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만큼으로 족하다-를 위임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국가는 시민을 사형에 처할 권리가 없다는 것이다.
응보를 원시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개인적인 죄책감을 문제로 삼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행위의 앞뒤 사정이라든가 범인의 인격상이 전혀 고려되지 않고 악행만이 부각되어 그 악행에 대해서 보복하려 한다. 이 점에서 응보를 주장하는 자의 태도는 마치 피의 복수를 행하는 고대 사회의 태도와 동일하다. 이래 가지고는 죄책감을 객관적으로 측정할 여지가 없다.
어떤 사회에 폭력에의 경향이 많은가 적은가는 사형의 존폐가 아니라 그 사회의 지조 여하에 달려 있다. 사형은 위와 같은 경향을 지시하는 데 불과하며 결코 그것을 규제하는 것은 아니다. 시계 바늘은 시각을 보여줄 뿐 시각에 대해 영향을 줄수 없는 것과 같다.
생명이 신성한 것이라면 언제 어떤 상황에서나 신성하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인명은 모든 공리적인 고량의 대상이 된다. 그렇게 되면 국가에 의한 권력의 남용을 저지할 길이 없다.
집행되어야 할 판결은 번복할 수 없다는 점이 사형지지자에게는 이점으로 간주되고 있으나 그때 그들도 오판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인정한다. 그런데 이 번복 불가능은 다른 한편에서는 범인에게 속죄와 개전과 개선의 가능성을 빼앗는 것도 된다. 그런 권리가 누구에게 있는가? 오히려 아무리 심한 악행이라도 자기가 범한 죄를 벌충하고 그 변상을 하도록 기도할 수 있는 것은 불가침의 인권이 아닐까? 철학자 피히테는 어쨌든 명확하게 이 입장을 취했다. 범인을 처형하면 그 개전의 가능성은 완전히 없어지므로 피히테는 칸트와는 반대로 사형은 어떤 사례에 대해서도 허용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본래 그 가장 내면적인 존재 방식으로 보아 사형을 요구하는 목소리와 연결된 통로는 타인에 대한 죄책감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죄책감이며 이 때문에 속죄양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
2024. 4. 12. 서울 자작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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