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인문)

흙속에 저바람속에

자작나무의숲 2021. 12. 20. 20:14
1. 개괄
이어령 교수가 쓴 '흙 속에 저 바람 속에'를 읽었다.

1962년에 일간지에 연재되었던 글에 주해를 달아 실은 것이다. 한국 최초의 한국인론이라고 한다.

2. 발췌
우리가 좋다는 말 대신에 괜찮다는 말을 쓰게된 이유도 거기에 있다. 괜찮다는 '관계하지 않는다'라는 긴 말이 줄어서 된 것이다. 현실에 관계하기만 하면 나라 일에 관계하기만 하면 목숨을 잃었다.

타인에게 구원을 청하는 것이 결코 수치일 수는 없다. 문제는 주체성을 상실한 구원의 개념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보는 것은 로고스적인 것이며 듣는 것은 파토스적인 것이다. 즉, 눈의 문화는 지성적이고 이성적이고 논리적이며 능동적인 것이다. 그러나 귀의 문화는 정적이고 감성적이고 직감적인 것이며 수동적이라고 할 수 있다.

친지의 모럴은 그럴 수 없이 발달해 있지만 공중의 모럴은, 사회 전체를 상대로 한 그 인정은 메말라 있기만 하다.

영국은 하나의 섬으로 이룩된 섬나라가 아니라 가정이라는 수백만의 섬들로 만들어진 군도다.
-앙드레 모로아

2021. 12. 20. 서울 자작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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