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소설)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를 다시 읽고

자작나무의숲 2018. 11. 10. 20:30

1. 개괄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이 쓴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를 다시 읽었다. 작가는 1945년부터 1956년까지 구 소련에서 수용소 생활을 하였고 1970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지명되었다.

이 작품은 1962년 발표되었고 스탈린 체제에 대한 고발이다. 주인공 이반 데니소비치 슈호프는 지극히 평범하고 단순한 인물인데 십년을 수용소에서 보낸다. 죄목은 반역죄다. 2차 세계대전 중 일부러 조국을 배반하기 위하여 포로가 되었고, 포로가 된 다음 풀려난 것은 독일 첩보대의 앞잡이 노릇을 하기 위해서였다고 그는 자백할 수밖에 없었다.

 

2. 발췌

어느 때처럼 아침 다섯시가 되자, 기상을 알리는 신호 소리가 들려온다.

 

수용소 생활에서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아침 식사 시간 십 분, 점심과 저녁 시간 오 분이 유일한 삶의 목적인 것이다.

 

말이 너무 많이 일을 해서 죽는다는 사실을 모른단 말인가. 하지만, 아무리 진리라고 하더라도 알아먹어야 진리라고 할 수 있지 않은가.

 

기온은 영하 이십칠도였고, 슈호프는 열이 삼십칠 점 이 도였다. 자, 이젠 누가 누구를 이길 것인가?

 

죄수들은 생각조차 자유롭지가 못하다. 그 생각이라는 것이 언제나 제자리에서 뱅뱅 돌게 마련이다.

 

빵은 내일 몫으로 남겨둘 필요가 있다. 인간의 배라는 것이 배은망덕한 것이라서, 이전에 배불렀던 것은 금세 잊어버리고, 내일이면 또 시끄럽게 조를 것이 뻔하니까 말이다.

 

이렇게 슈호프는 그의 형기가 시작되어 끝나는 날까지 무려 십년을, 그러니까 날수로 계산하면 삼천육백오십삼 일을 보냈다. 사흘을 더 수용소에서 보낸 것은 그 사이에 윤년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3. 소감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라고 양분하지만 그 사이에도 여러 단계가 있다. 메부리코와 들창코 사이에도 여러 단계가 있듯이. 스탈린 시대의 사회주의는 평등의 이름으로 자유를 극도로 제약한 사회였다. 시진핑 시대의 사회주의와 다르고, 푸틴 시대의 사회주의와도 다르다. 자본주의도 여러 단계가 있다.

 

자유와 평등이 조화를 이루는 사회, 박애의 정신이 자유와 평등의 기초가 되는 사회를 어떻게 건설할까? 법이 아니라 운용의 묘를 찾는다.

 

2018. 11. 10. 부산에서 자작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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