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성찰)

침묵의 세계를 다시 읽고

자작나무의숲 2018. 3. 25. 07:55

1. 개괄

막스 피카르트가 쓴 '침묵의 세계'를 다시 읽었다. 저자는 1888년 독일에서 태어났고 개업의로 활동하다가 만년에는 문필활동을 하였으며 1948년경 이 책을 출간하였다. 이 책은 '언어는 성스러운 침묵에 기초한다' 는 maria-culm 사원 제단에 새겨진 글을 소개하면서 시작한다. 키워드는 말, 침묵, 소음, 잡음어다.

 

2. 발췌

인간을 진정한 인간으로 만드는 것은 침묵이 아니라 말이다. 말은 침묵에 대해서 우월권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말은 침묵과의 관련을 잃으면 위축되고 만다. 따라서 오늘날 은폐되어 있는 침묵의 세계는 다시 분명하게 드러내어져야 한다. 침묵을 위해서가 아니라 말을 위해서.

 

현대의 우울은 인간의 말 대부분을 침묵과 분리시킴으로써 말을 고독하게 만들었다는 데에서 기인한다. 이러한 침묵의 제거는 인간의 내부에서 하나의 죄책감으로 존재하고, 그 죄책감이 우울로 나타난다.

 

인간은 자신이 나왔던 침묵의 세계와 들어갈 또 하나의 침묵의 세계-죽음의 세계-사이에서 살고 있다.

 

오늘날 말은 그 침묵의 두 세계와는 거리가 멀다. 말은 소음에서 생겨나서 소음 속에서 사라진다. 오늘날 침묵은 더 이상 하나의 독자적인 세계가 아니다. 침묵은 다만 아직 소음이 뚫고 들어가지 않은 곳일 뿐이다. 그것은 소음의 중지일 뿐이다.

 

인간은 자신의 생애에서 오직 한 번 죽는다. 그리고 죽음의 체험이 없기 때문에 죽음에 실패한다. 죽음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이미 죽음에 임했던 경험 많은 사람들의 지침에 따라서 죽는 법을 배워야만 한다. 금욕은 우리에게 이러한 죽음의 체험을 준다(플로렌스키)

 

오늘날의 언어는 극도로 긴장해 있고 침묵으로부터가 아니라 선행했던 말로부터 나오고 침묵이 아니라 다음 말로 가버린다.

 

침묵하는 실체가 아직 자기 내부에 존재하고 있을 때 인간은 자신의 본성에 반대되는 것, 자신을 소진시키는 것을 더 잘 견딜 수 있다.

 

인간의 본질은 인간의 형상보다는 인간의 말 속에서 더 잘 보인다. 소크라테스는 말했다. '말하라! 내가 그대를 볼 수 있도록!'

 

신에게는 말과 침묵이 하나이다. 말이 인간의 본질이 되듯이, 침묵은 신의 본질이 된다.

 

기도 속에서 말은 저절로 침묵 속으로 되돌아간다. 기도란 애초부터 침묵의 영역 안에 있었다. 기도는 인간으로부터 떨어져나가 신에게 받아들여진다.

 

3. 소감

'침묵은 말이 없어도 존재할 수 있지만, 말은 침묵이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말에게 침묵이라는 배경이 없다면, 말은 아무런 깊이도 가지지 못한다' 7년 전 이 부분을 읽었을 때 각성이 이루어졌다. 이후의 삶은 달라졌다.

 

2018. 3. 25. 부산에서 자작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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