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정치사회)

열린사회와 그 적들 1을 다시 읽고

자작나무의숲 2018. 3. 20. 22:54

1. 개괄

칼 포퍼가 쓴 '열린사회와 그 적들 1'을 다시 읽었다. 7년 전에 1편을 읽었으니 2편을 읽어야 하지만 1편이 제대로 이해가 되지 않아 다시 읽었다.

그가 말하는 열린사회란 전체주의에 대립되는 개인주의의 사회이며, 사회 전체의 급진적인 개혁보다는 점진적이고 부분적인 개혁을 시도하는 점진주의의 사회이다. 반면 닫힌사회는 불변적인 금기와 마술 속에 살아가는 원시적인 부족사회이다. 포퍼는 인류 역사를 닫힌사회와 열린사회의 투쟁으로 보고 그 시작은 고대 아테네의 민주주의에서 찾는다.

열린사회를 파괴하고 그 발전을 저해하는 최대의 적은 역사주의라 불리는 신탁의 철학이라고 포퍼는 주장한다. 그 대표적인 학자로 플라톤과 마르크스를 들고 그 주장을 비판하는 것이 이 책의 주요내용이다.

 

2. 발췌

그 법칙에 의하면 지배계급의 분열과 경제적 이익의 독점이 모든 사회변화의 발단이 된다. 그러므로 플라톤의 최선국가는 할 수 있는 한은 철저히 분열과 쇠망의 모든 배아와 요소들을 제거할 수 있는 방법으로 재구성되어야 했다.

 

자연적 법칙과 규범적 법칙의 구별은 사회과학의 탐구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정신적 자연주의는 앞의 두 관점을 결합한 것으로, 인간의 진정한 자연적 본성으로부터 규범들을 도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반면 비판적 이원론은 결단이나 규범을 사실에 귀속시킨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프로타고라스는 자연은 규범을 알지 못하며, 규범의 도입은 인간에 의한 것일 뿐 아니라 인간의 가장 중대한 성취라고 생각했다.

 

플라톤의 정치강령은 (1) 모든 정치적 변화를 억제하라는 이상주의적 이론이고, (2)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자연주의적 이론이다.

 

플라톤이 이기주의와 개인주의를 동일시한 것은 그가 개인주의를 공격하는 데뿐만 아니라, 집단주의를 방어하는 데서도 강력한 무기가 되었다.

 

자유주의와 국가간섭은 서로 상반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어떤 종류의 자유도 국가가 보장해 주지 않으면 분명 불가능하다.

 

우리가 필요로 하고 또 우리가 원하는 것은 정치를 도덕화하는 것이지, 도덕을 정치화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플라톤이 정치의 근본적인 문제를 '누가 국가를 통치할 것인가' 하는 물음에 있는 것으로 보았다는 것을 아주 명백하게 알 수 있다...정치적 문제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을 초래한다. 그것은 '누가 통치해야 하는가' 라는 질문 대신에 '우리는 사악하거나 무능한 지배자들이 너무 심한 해악을 끼치지 않도록 어떻게 정치제도를 조직할 수 있는가' 라는 새로운 질문을 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물론 최선의 통치자를 얻기 위해 노력해야겠지만, 그와 동시에 정치에 있어서 최악의 통치자에 대비한 원칙을 채택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된다.

 

제도는 요새와 같다. 요새는 잘 설계되어야 하고, 그리고 사람에 의해 잘 지켜져야 한다.

 

정치적 문제의 영역에는 인격과 제도 사이의 구별에 대응하는 또 하나의 구별이 있다. 그것은 오늘날의 문제와 미래의 문제 사이의 구별이다. 오늘날의 문제가 대체로 인격적인 반면, 미래를 설계하는 문제는 필연적으로 제도적인 것이 틀림없다.

 

플라톤이 말하는 철학자는 진실로 지혜를 추구하는 자가 아니라, 거만한 진리의 소유자라는 것을 보아왔다...플라톤이 요구하는 것은 학식의 지배, 즉 만약 그렇게 부를 수 있다면, 현자지배인 것이다.

 

왕이 철학자가 되어야 한다거나, 철학자가 왕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있음 직하지도 않으며, 바람직하지도 않다. 왜냐하면 권력의 소유는 이성의 자유로운 판단을 반드시 저하시키기 때문이다. 그러나 왕이나 왕과 같이 자기 스스로 지배하는 사람들은 철학자를 억압해서는 안 되며 그들에게 공개적인 발표의 권리를 반드시 주어야만 한다(칸트).

 

비록 소수의 사람만이 정책을 발의할 수 있다 햐도, 우리 모두는 그것을 비판할 수 있다(페리클레스).

 

3. 소감

칼 포퍼는 '합리주의란 비판적인 태도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태도요, 경험으로부터 배우고자 하는 태도이다' 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열린사회와 닫힌사회의 대립은 합리주의와 비합리주의의 대립으로 표현할 수도 있다고 한다.

 

2018. 3.20. 부산에서 자작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