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소설)

순수의 시대를 읽고

자작나무의숲 2017. 5. 14. 11:46

1.개괄

이디스 워튼이 쓴 소설 <순수의 시대>를 읽었다. 작가는 1862년 미국에서 태어났고, 1920년 이 작품을 출간하였으며, 1937년 사망하였다.

주요 등장인물은 뉴랜드 아처, 메이 월렌드, 엘렌 올렌스카다. 뉴랜드 아처는 진보적이고 남들과 다른 척하지만, 실제로는 똑같이 뉴욕의 방식을 따르는 생활을 하면서도, 그 속에 내재한 모순과 균열을 인식하지 못하고, 자기만족에 빠진 삶을 산다. 그의 순진함은 제목의 '순수'에 비추어 역설적인 의미를 갖는데, 그는 메이가 아무것도 모르며 순진무구하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함정에 빠지는 인물은 아처 자신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던 메이는 실제로 아처와 엘렌의 불륜관계를 이미 다 알고 있었으며, 자신이 쓸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엘렌을 공격하고 추방한다. 엘렌은 유럽의 자유로움을 사랑하는 동시에 뉴욕사회가 중시하는 전통과 관습의 힘도 무시하지 않는다. 결국 뉴욕에 정착하지 못하고, 파리로 돌아간다. 메이가 죽고 엘렌은 여전히 혼자 살고 있음에도 아처는 자녀의 권유로 파리에 여행을 갔다가 엘렌의 아파트로 향하던 발길을 돌리는 것으로 소설은 끝난다. 


2. 발췌

지혜로움이 그렇듯 어리석은 행동도 그 결과로 정당화되는 일이 드물지 않은 법이어서, 젊은 보퍼트 부인이 결혼한 지 이년 후에는 누구나 그녀를 뉴욕에서 가장 근사한 집의 주인으로 인정하게 되었다.


다시 한번 결혼은 그가 배워 온 대로 안전한 정박지가 아니라 전인미답의 바다를 헤쳐 나가는 항해라는 사실을 절감했다.


상류층이 사는 곳은 아니죠? / 상류층이라고! 당신네들은 다들 그런 걸 노상 따지고 사나요? 왜 자기 좋을 대로 하면 안되나요?


온갖 추잡한 얘기들이 나올지도 모르는데......,아니 틀림없이 그럴 텐데, 그래봤자 무엇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 하지만 자유는......, 그건 아무것도 아닌가요?


그는 메이의 얼굴도 똑같이 절대 흔들리지 않는 순수로 무장한 중년의 모습으로 두꺼워져 갈 운명일까 자문했다.


그들 중 누구도 남과 다른게 되고 싶지 않은 거라고. 남보다 튀는 걸 천연두만큼이나 무서워해.


당신은 지금 이 순간에는 말하는 것이 가장 쉬우니까 말하고 있을 뿐이에요. 그게 진실이어서가 아니라. 현실적으로는 이미 때가 늦었으니 우리 둘 다 이미 내린 결정에 따르는 수밖에 없어요.


나 이제 외롭지 않을 거에요. 전에는 외로웠어요. 두려웠지요. 하지만 공허함과 어둠은 사라졌지요. 이제 나 자신에게로 돌아오니 한밤중에도 항상 밝게 불이 켜져 있는 방으로 들어가는 어린아이 같은 기분이에요.


삶을 정면으로 직시하는 것, 그것을 위해서라면 다락방에 살아도 좋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일단은 다락방 얻을 돈이라도 벌어야 겠지요.


그는 결혼 생활에서 첫 여섯 달 동안이 제일 힘든 법이라는 흔한 격언을 위안 삼았다. '그 시간만 잘 넘기면 서로의 모난 면들이 닳아서 둥글둥글해지게 될 거야' 그는 이런 생각을 해 보았지만, 무엇보다도 나쁜 것은 메이가 가하는 압력이 그가 가장 날카로움을 잃고 싶지 않은 바로 그 모난 부분들로 향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의 귀에 그녀의 말은 거의 들어오지 않았다. 그녀의 목소리만을 느낄 뿐이었다.


그들은 입을 다물고 있다가 사이사이 폭포처럼 말을 쏟아 놓으면서 천천히 생각에 잠겨 점심을 먹었다. 일단 주문이 풀리자 할 말이 많았지만, 때로는 말보다 침묵이 더 많은 것을 전하기도 했다. 말은 침묵으로 이루어진 긴 대화에 딸린 부속물에 불과한 순간들이 있었다.


당신은 나에게 진짜 삶을 처음으로 엿보게 해 주었으면서 동시에 가짜 삶을 계속 살라고 부탁했소. 그건 인간이 인내할 수 있는 한계를 넘는 거요.


그렇다면 우리를 위한 당신의 계획은 정확히 뭐요? / 우리를 위해서라고? 그런 의미에서의 우리는 없어요! 우리는 서로 멀리 떨어져 있어야만 서로 가까이 있는 거예요. 그때는 우리 자신으로 있을 수 있죠.


십 분이면 그는 자기 집 문 앞 계단을 다 오를 것이다. 거기에는 메이의 습관, 명예, 그와 주변 사람들이 한결같이 믿어온 오래된 예의범절이 전부 다 있다.


질병보다 추문을 더 두려워하고, 용기보다 체면을 중히 여기고, 소동을 일으킨 사람들의 행동을 제외하면, '소동'보다 더 교양 없는 것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방식이었다.


그가 놓친 것이 있다면 인생의 꽃이었다. 


3. 소감

이루어질 수 없는 연애에 관한 소설이나 풍속소설은 아닌 것 같다. '인습에 저항하는 자유로운 영혼의 이야기며, 현실에 묻혀 젊은 시절의 이상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안타까움과 회한'에 대한 이야기에 가깝다.


          2017. 5. 14. 부산에서 자작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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