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톨스토이
톨스토이가 쓴 <인생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읽었다. 8년만이다.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매일 좋은 글을 읽을 수 있게 구성되어 있다. 매일 주제가 다르고, 자신의 단상에서 시작해 다른 출처의 인용문을 붙이고 자신의 생각으로 마무리하는 형식을 주로 취했다. 톨스토이가 엄청난 책을 읽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책은 톨스토이가 남긴 마지막 대저작이다.
2. 인생이란 무엇인가
-논쟁과 설득
논쟁에는 귀를 기울이되 거기에 끼어들지 말라. 아무것도 아닌 사소한 말에도 격앙과 흥분을 경계하라. 노여움은 어떠한 경우에도 바람직하지 않지만, 옳은 일을 하는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왜냐하면 노여움이 그 옳은 일을 흐려 놓기 때문이다(고골리).
진리가 상대방의 귀에 들리도록 하려면 그것을 선의를 가지고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아무리 이치에 맞는 옳은 말이라도 화를 내면서 말하면 상대방에게 전달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을 설득할 때는, 그 사람이 지닌 사상에 의하지 않고는 절대로 불가능하다. 즉 그 사람 안에 건전한 사려와 분별심이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만일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는 것은 꿈도 꾸지 말라(칸트).
-죽음
우리는 죽음에 대한 준비를 해야 한다. 그 죽음에 대한 준비는 오직 한 가지, 선한 생할이 있을 뿐이다. 생활이 선하면 선한 만큼 죽음의 공포는 줄어들고 가벼워진다. 따라서 성자에게는 죽음은 존재하지 않는다.
삶은 죽음을 향한 끊임없는 접근이다. 따라서 삶은 죽음이 더 이상 악으로 생각되지 않을 때 비로소 행복한 것이 될 수 있다.
만약 삶이 행복이라면 삶의 필연적 조건인 죽음도 역시 행복이라고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삶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삶의 길이가 아니라 깊이이다. 문제는 삶을 지속시키는 것이 아니라, 모든 고귀한 영혼의 행위처럼 영혼으로 하여금 시간을 초월하게 하는 것이다. 우리가 최선을 다해 삶을 살고 있을 때 시간 같은 것은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는다(에머슨).
-선과 악
악마는 악마를 쫓아낼 수 없고, 악은 악에 의해 극복되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악은 더욱 더 쌓여가서 갈수록 그 힘이 강력해질 것이다. 악은 오로지 악과 반대되는 정신, 정의와 선을 통해서만 극복될 수 있다. 그러므로 악은 선을 통해서, 선과 인내와 고뇌를 통해 뿌리 뽑아야만 한다.
참으로 유익한 것, 참으로 선한 것, 따라서 참으로 위대한 것은 언제나 단순하다.
러시아어로 '벌을 준다(나카지와치)' 라는 말은 가르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가르치는 것은 솔선수범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악을 악으로 갚는 것은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타락시키는 것이다.
-사상과 변화
무릇 참다운 사상, 살아 있는 사상은, 기르는 힘과 변화하는 힘을 갖고 있다는 특징이 있다. 그러나 그 변화는 서서히 나무처럼 변하는 것이지 구름처럼 쉽게 변하는 것이 아니다(존 러스킨).
자신은 성공했다는 생각만큼 도덕적 완성에 해로운 것은 없다.
-소크라테스의 변명
나는 죽기 위해 가고, 당신들은 살기 위해 가고, 우리 중 누가 더 행복한지는 신만이 아실 것이오.
-공정
과녁을 명중시키려면 그 과녁보다 위를 겨냥해야 하듯이 공정하려면 자기를 희생해야 한다. 즉 자기 자신에게는 오히려 불공정해야 하는 것이다. 오로지 공정하려고만 하면 결국 자신에게 관대해져서 다른 사람들에게는 불공정하게 되어 버린다.
-구원
싸움의 원인은 우리 자신이 불완전하다는 데 있다. 그런데 바로 그 싸움 자체 속에 우리의 구원이 있는 것이다. 만약 신이 우리에게서 그것을 빼앗아간다면, 가엾게도 우리는 영원히 죄악에 사로잡혀 살게 되기 때문이다(파스칼).
-미망
무지는 절대로 악을 낳지 않는다. 가장 무서운 것은 미망이다. 사람들이 미망에 빠지는 것은 무지 탓이 아니라 자신을 유식한 자로 과대평가하기 때문이다(루소).
-진실
진실은 그 자체가 선은 아니지만 모든 선에 있어 없어서는 안 될 필수조건이다.
-국민
우리는 무엇보다 먼저 인간이 되어야 하며, 그 다음에 국민이 되어야 한다. 선을 대하듯 법륭에 대해 존경심을 품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법률은 결코 사람들을 더 정의롭게 만들지 않으며, 오히려 그것을 중시한 결과 선량한 사람들이 부정을 저지르게 되는 것이다(소로).
3. 대작
톨스토이는 읽고 생각하고 실천했다. 그래서 대작이 탄생하였다. 톨스토이는 토지의 사유가 만악의 근원이라는 헨리조지의 책을 읽었고, 그 주장에 공감하였으며, 농노제도 개선에 앞장섰다.
2016. 11. 13. 부산에서 자작나무
'독서일기(인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탁월한 사유의 시선을 읽고 (0) | 2017.03.16 |
---|---|
타자의 추방을 읽고 (0) | 2017.03.11 |
사회정의론을 다시 읽고 (0) | 2016.09.18 |
행복론 인간론 (0) | 2016.06.26 |
생각의 힘을 읽고 (0) | 2015.11.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