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인문)

타자의 추방을 읽고

자작나무의숲 2017. 3. 11. 14:19

1. 개괄

한병철 교수의 <타자의 추방>을 읽었다. 저자는 현재 베를린 예술대학 교수로 재직중이다. <피로사회>, <투명사회> 등 저서가

독일에서 커다란 사회적 반향을 일으킨 바 있다. 옮긴이의 후기에 따르면 '같은 것의 감옥으로부터의 구원은 타자로부터 온다는 것이 저자의 인식이다. 타자만이 우리 자신과 세계에 대한 인식과 성찰을 가능하게 해주고, 의미를 복원하며, 우리로 하여금 고립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게 한다'고 한다.


2. 발췌

전면적인 디지털 네트워크와 소통은 타자와의 만남을 쉽게 해주지 않는다. 그것들은 오히려 낯선 자와 타자를 지나쳐 같은 자와 같은 생각을 지닌 사람들을 발견하도록 하고, 우리의 경험 지평이 갈수록 좁아지게 만든다.


타자의 부정성과 변모가 엄밀한 의미에서의 경험을 만들어낸다.


빅데이터는 이렇게 사유를 필요 없는 것으로 만든다. 우리는 아무 생각 없이 '그것은 그렇다'에 만족한다.


자신의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외국인에 대한 적대적 태도로 바뀐다.


한 사회의 문명화 정도를 보여주는 척도는 바로 이 사회의 환대, 나아가 친절함이다. 


모든 부정성의 제거가 오늘날 사회의 특징이다...타자으로 인한 상처의 모든 형태가 회피된다. 그러나 이는 자기상해로 부활한다. 타자의 부정성을 추방하면 자기파괴의 과정이 초래된다는 일반적인 논리의 정당성이 여기서도 확인된다. 알랭 에랭베르에 따르면 우울증이 증가하는 것은 사람들이 갈등 관계를 상실하고 있기 때문이다.


갈등은 파괴적이지 않다. 갈등에는 건설적인 측면이 있다. 갈등을 통해서야 비로소 안정된 관계와 정체성이 성립된다.


과잉소통의 투명한 공간은 비밀도, 낯섦도, 수수께끼도 없는 공간이다.


오늘날의 과잉소통은 침묵과 고독의 자유 공간을 억압한다. 그러나 이 자유 공간 안에서야 비로소 우리는 실로 말한 가치가 있는 것들을 말할 수 있다. 과잉소통은 자신 안에 침묵을 본질적 요소로 지니고 있는 언어를 억압한다. 언어는 정적으로부터 생겨난다. 정적이 없으면 언어는 이미 소음이다.


문학의 위기는 궁극적으로 타자의 추방으로 인한 것이다. 문학과 에술은 타자를 향해 나아가는 도정에 있다.


오늘날의 소통은 극도로 나르시시즘적이다. 이 소통은 너가 전혀 없이, 타자를 전혀 호출하지 않은 채 진행된다. 이에 반해 시에서는 나와 너가 서로를 만들어낸다.


우리는 삶을 다시 타자로부터, 타자에 대한 관계로부터 새롭게 보고, 타자에게 윤리적인 우선권을 인정해주어야 한다. 나아가 타자를 경청하고 타자에게 대답하는 책임의 언어를 다시 배워야 한다.


경청은 수동적 행동이 아니다. 특별한 능동성이 경청의 특징이다. 나는 우선 타자를 환영해야 한다. 다시 말해 타자의 다름을 긍정해야 한다. 그러고 나서 나는 그를 경청한다.


소셜미디어가 반드시 토론문화를 촉진하지는 않는다. 소셜미디어는 흔히 정념에 의해 조종된다.


친근함과 경청이 없으면 공동체도 형성되지 않는다. 공동체는 경청하는 집단이다.


3. 소감

소셜미디어에서 소통할 때 늘 부족함을 느꼈지만 그 이유를 몰랐는데, 이 책을 읽으니 어렴풋이 떠오른다. 타자를 경청할 것. 타자의 다름을 긍정할 것.


           2017. 3. 11. 부산에서 자작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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