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추천)

검은 튤립

자작나무의숲 2015. 12. 20. 19:55

1. 개괄

알렉상드르 뒤마가 쓴 <검은 튤립>을 읽었다. 작가는 1802년 프랑스에서 태어나 1850년 이 작품을 발표하였다. 빅토르 위고와 함께 낭만주의 드라마 개혁운동의 기수가 되었다. 제목에서 언급된 검은 튤립은 검은 백조와 같이 현실에서 존재하지 않는 꽃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다음과 같다. 코르넬리우스 판 바에를르는 검은 튤립의 재배자로서 무고에 걸려 옥살이를 한다. 로자는 코르넬리우스가 갇힌 감옥의 간수인 흐리푸스의 딸로서 코르넬리우스를 사랑하고 그와 함께 검은 튤립을 재배하며, 결국 코르넬리우스의 누명을 벗겨준다. 이작 복스텔은 검은 튤립을 훔치기 위하여 코르넬리우스를 밀고하고 끝내 검은 튤립을 훔치지만 윌리암 공작의 심판으로 죄상이 드러난다. 하를럼원예협회는 검은 튤립을 발견하는 사람에게 10만 플로린을 내건다. 코르넬리우스는 검은 튤립 때문에 불행해지지만 검은 튤립 때문에 사랑을 얻고 누명을 벗는다.

 

2. 발췌

결국 강하면 큰 소리로 비밀을 외칠 테고, 약하면 그 비밀을 내어줄 겁니다. 분명한 것은 두 경우 모두 그도 우리도 파멸이라는 사실입니다.

 

여보게, 선의를 베풀어 주어 고맙네. 의도는 행위와 같은 가치를 지닌다네. 자네는 우리를 구할 의도를 갖고 있었으니 하느님의 눈에는 우리를 구한 것이나 진배없네.

 

추신에서 홀란트 스타트하우더 윌리엄은 코르넬리우스 판 바에를르를 종신형에 처했다. 죽기에는 코르넬리우스의 죄가 너무 적었고, 자유의 몸이 되기에는 죄가 너무 많았다.

 

로자는 하찮은 것으로도 의기소침해지는 여자였다. 하지만 최후의 불행에 대항하는 힘을 지니고 있어서 불행을 물리치는 에너지와 불행을 바로잡는 동력을 불행 자체에서 찾아내는 여자이기도 했다.

 

제 말을 좀 들어주세요. 그리하면 설사 정의를 바로 세워 주시지는 못한다 해도 최소한 나중에 하느님 앞에서 악한 일의 공범이 되었다는 자책은 하지 않으셔도 될 거예요.

 

그는 범용한 것을 끔찍이 싫어하여 삶의 모든 좋은 기회들을 놓쳐버리는 그런 사람이었다. 이런 사람들은 범부들의 대도이며 모든 것에 쉽게 이르는 통속적인 길을 결코 택하지 않는다.

 

이성을 잃은 혼란한 시기에 잘못 판결되고 잘못 단죄된 비트 형제는 위대한 시민이었고, 오늘날 홀란트는 그들을 자랑스러워하고 있소.

 

너무나 고통 받은 나머지 나는 이렇게 말하지 않을 권리가 있노라. 나는 너무 행복하다.

 

3. 소감

17세기 네델란드의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행복이라는 주제를 다루었다. 소설에서 코르넬리우스가 피워 내는 검은 튤립은 아름다움과 전복을 상징한다고 한다. 코르넬리우스의 행복은 분리할 수 없는 양면을 지닌 검은 튤립의 개화를 통해 담금질된다고 한다. '근육질의 문체를 통해 빠른 서술과 활기 넘치는 대화를 통해 프랑스인들에게 역사를 가르쳐 주는 작가'임에 틀림없다.

 

                  2015. 12. 20. 부산에서 자작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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