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인물)

불행한 조국의 임상노트를 읽고

자작나무의숲 2015. 11. 21. 13:20

1. 개괄

1997. 8. 4. 읽었던 한승헌의 <불행한 조국의 임상노트>를 독서일기 형식으로 정리해둔다. 저자는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하여 검사를 거쳐 인권변호사로 활동하였다. 시국사범 변호로 2차례 옥고를 치른 바 있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이 책에 실린 나의 글은 그처럼 언론자유가 온전치 못한 가운데 쓰여졌지만, 압제와 불의에 맞서 민주사회를 실현하기 위한 목소리를 내는 데 나름대로 힘을 기울였다. 불이익과 박해를 무릅쓰고 권력이나 사회를 비판하는 것은 내 나라 내 겨레에 대한 애정 때문이다. 사랑하기 때문에 비판도 하는 것이다'라고 적고 있다. 

 

2. 발췌

문득 연전에 들은 한 석방자의 말이 떠올랐다.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당하는 고난은 있지만, 아무 의미도 없는 고민은 없다" 고난의 의미를 깨닫고 살려나가는 것은 고난을 겪는 그 자체보다도 훨씬 어려운 일이다.

 

'법의 극은 불법의 극'이란 말도 굳이 헤겔이나 동양의 경전에서 찾을 필요까지는 없을 것이다. 영어의 blind란 말이 눈부실 만큼 밝은 상태를 뜻하면서 동시에 빛에서 차단된 맹목의 상태를 의미함은 우연한 사전식의 풀이가 아니다. 이와 같은 양극적 모순을 동시에 유의하는 예지와 더불어 형식적인 절차이행만이 아닌 구체적 정의에의 줄기찬 추구가 없이는 사법은 그 이름에 상응하는 존경을 받기 어려울 것이다. 신념과 용기를 갖춘 법관 앞에서 변호를 하고 싶다. 그것이 너무 벅찬 주문이라면, 고민하는 법관이라도 만나게 되기를 바란다.

 

로마 총독 빌라도가 33세의 청년 예수에게 사형 아닌 무죄나 집행유예 판결을 내렸다면 오늘날과 같은 기독교가 존재할 수 있을까...결국 나는 '이기고도 진' 재판을 '지고도 이긴' 재판으로 바꾸어 생각하며 역사의 진실을 바로 알리는 일에 단역이나마 떠맡고 싶었다.

 

공소장에 기재된 혐의인즉, <어떤 조사>라는 글이 간첩으로 사형당한 김규남을 애도함으로써 반국가단체를 이롭게 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글에는 김규남의 '김'자도 없었고 특정인을 암시하는 내용도 없었다. 그러자 판결은 "국가보안법 철폐를 주장함으로써 반국가단체를 이롭게 하였다"고 공소장에도 없는 사실을 편리하게 갖다붙여 유죄를 선고했다.

 

3. 사족

오래 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꺼내보는 이유는, 세상이 얼마나 달라졌는가? 내가 어디쯤 와 있는가?를 확인해보고 싶어서다.

 

 

                    2015. 11. 21. 부산에서 자작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