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추천)

담론을 읽고

자작나무의숲 2015. 5. 6. 08:30

1. 개괄

신영복 교수가 쓴 <담론>을 읽었다. 저자가 성공회대학교 석좌교수로서 마지막으로 한 강의를 책으로 펴냈다. 지금껏 저자가 쓴 책이 교재로 활용되었다.

 

2. 발췌

사람의 생각은 자기가 살아온 삶의 결론입니다.

 

친구가 될 수 없는 자는 스승이 될 수 없고 스승이 될 수 없는 자는 친구가 될 수 없다고 합니다.

 

공부는 우리를 가두고 있는 완고한 인식틀을 망치로 깨뜨리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는 여행이 공부의 시작입니다...또 하나의 멀고 먼 여정을 남겨두고 있었습니다. 바로 가슴에서 발까지의 여행입니다. 가슴이 공감과 애정이라면 발은 변화입니다. 삶의 현장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와 창조는 중심부가 아닌 변방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할 것입니다. 중심부는 기존의 가치를 지키는 보루일 뿐 창조 공간이 못 됩니다. 인류 문명의 중심은 항상 변방으로 이동했습니다...그러나 변방이 창조 공간이 되기 위해서는 결정적인 전제가 있습니다. 중심부에 대한 콤플렉스가 없어야 합니다.

 

귀곡자는 "병법은 병사의 배치이고, 시는 언어의 배치이다"라고 했습니다....귀곡자의 주장은 設이 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말을 듣는 상대가 기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기 능력이 100이면 70의 역량을 요구하는 것에 가는 게 득위입니다. 반대로 70의 능력자가 100의 역량을 요구하는 자리에 가면 실위가 됩니다...30의 여유, 대단히 중요합니다. 이 여유가 창조성으로, 예술성으로 나타납니다.

 

以羊易之 벌벌 떠면서 죄 없이 사지로 끌려가는 소가 불쌍해서 바꾸라고했다는 것입니다. 그럼 양은 불쌍하지 않습니까?...맹자는 선왕 자신도 모르고 있는 이유를 이야기 해줍니다...소를 양으로 바꾼 이유는 양은 보지 못했고 소는 보았기 때문이라는 것이 맹자의 해석이었습니다.

 

하늘이 내린 재앙은 피할 수 있어도 자기가 불러들인 재앙은 결코 피하지 못하는 법이다(서경)

 

활을 쏘아서 과녁에 적중시키지 못했을 때는 자기를 이긴 사람을 원망하지 말고 不中, 적중하지 못한 원인을 자기한테서 찾아야 합니다. 유명한 반구저기 反求諸己 입니다.

 

대직약굴 大直若屈은 최고의 곧음은 마치 굽은 것과 같다는 뜻입니다...때로는 약굴, 마치 소신을 굽히는 것 같지만 근본적인 원칙을 지키는 사람은 사소한 것에 구애받지 않습니다.

 

모든 텍스트는 새롭게 읽혀야 합니다. 필자는 죽고 독자는 꾸준히 탄생합니다.

 

衆責은 不罰이라고 합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책임이 있는 것은 벌할 수 없습니다. 모든 사람들을 다 처벌해야 하는 법은 법이 아닙니다. 모든 통행 차량이 위반할 수밖에 없는 도로는 잘못된 도로입니다. 그곳을 지키며 딱지를 끊을 것이 아니라 도로를 고쳐야 합니다. 다수가 정의라는 사실이 바로 민주주의입니다.

 

톨레랑스는 은폐된 패권 논리입니다. 관용과 톨레랑스는 결국 타자를 바깥에 세워 두는 것입니다. 강자의 여유이기는 하지만 자기 변화로 이어지는 탈주와 노마디즘은 아닙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잘 알기 위해서느 결정적인 전제가 있습니다. 바로 그 사람이 나를 잘 알고 있어야 합니다...잘 안다는 것은 서로 관계가 있어야 합니다...관계가 있어야 할 뿐 아니라 애정이 있어야 합니다.

 

보르헤스는 촛불을 끄라고 합니다. "촛불을 꺼라! 촛불은 어둠을 조금 밀어낼 수 있을 뿐 그 대신 별을 보지 못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논어에 번지가 지에 관해서 질문합니다. 공자의 대답은 놀랍게도 知人입니다. 사람을 아는 것이 지라는 답변입니다.

 

우리가 의지하는 이론이 현실과 모순된다는 것을 느낄 때, 우리는 대체로 두 가지의 대응방식을 취하게 됩니다. (1) 실사구시의 대응방식입니다. 현실중심의 해결책을 찾는 것이 실사구시입니다(물리 방식의 대응). (2) 보다 근본적인 개념을 재구성하는 것이 진리방식의 대응입니다.

 

카를 야스퍼스의 <대학의 이념>에 의하면 대학의 생명은 독립입니다...가장 중요한 것은 강화학에서 확인하는 '오늘로부터의 독립'입니다.

 

<자기 앞의 생>에서 모모가 하밀 할아버지에게 물었습니다. "할아버지, 사람이 사랑 없이도 살 수 있나요?" "살 수 있지. 슬프지만" 하밀 할아버지의 대답은 정답이 못 됩니다. 살 수 있다면 결코 슬프지 않습니다. 생각하면 우리가 생명을 저버리지 않고 살아가고 있는 한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랑한다는 것은 기쁨만이 아닙니다. 슬픔도 사랑의 일부입니다. 마치 우리의 삶이 그런 것처럼.

 

자기의 이유를 가지고 있는 한 아무리 멀고 힘든 여정이라 하더라도 결코 좌절하지 않습니다. 自己의 理由를 줄이면 自由가 되기 때문입니다.

 

3. 소감

신영복의 마지막 강의란 부제가 붙어 있다. 이제 누가 가르치나?

 

                     2015. 5. 6. 부산에서 자작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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