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이야기

16. 박태기나무

자작나무의숲 2015. 4. 21. 22:10

 

1. 박태기나무

2015. 4. 18. 중학교 동창들과 경남 하동군 악양면 형제봉을 오르는 길에 친구가 길가에 붉은 꽃을 피운 나무를 가르키며 박태기나무라고 가르쳐주었다.

박태기나무의 꽃은 잎눈 부근에 7~8개, 많을 때는 20~30개씩 모여 피며, 꽃이 많고 꽃자루가 짧아 가지 하나하나가 꽃방망이를 만들고 있는 것 같다. 꽃봉오리가 달려 있는 모양이 마치 밥알, 즉 ‘밥티기’와 닮았다고 하여 박태기나무란 이름이 붙여진 것이라고 한다. 색깔은 꽃자주색인데, 양반들이 먹던 하얀 쌀밥이 아니라 조나 수수의 밥알을 생각하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조상들은 먹는 것과 연관된 이름을 나무에 많이 붙였다. 박태기나무도 그렇고, 이팝나무도 그렇다. 콩목 콩과의 식물이라는 점도 특이하다.

 

2. 가난한 시절

나는 중학교 다닐 때 가난하였다. 그때는 무상교육이 아니었다. 교과서를 살 돈이 없어 친척 형이 쓰던 책을 물려받았고, 참고서는 살 엄두조차 내지 못하였다. 시험이 다가오면 수열이란 친구에게 '완전학습 음악'을 빌려 하루만에 보고 돌려주고, 선홍이란 친구에게 '필승 국사'를 빌려 하루만에 보고 돌려 주는 방법으로 공부하였다. 이러한 가난은 고등학교 1학년 겨울방학 때 김장하 선생님을 만나 장학금을 받으면서 해결되었다.

중학교를 다닐 무렵 나와 비슷하게 공부를 잘 하는 친구가 있었다. 그는 진주고등학교를 진학했지만 가정 형편 때문에 중퇴를 하고 곧바로 취직하였다. 

나는 가난이 얼마나 쉽게 인생을 흔들 수 있는지를 안다. 그래서 나라 형편이 옛날보다 나아졌다면 가난이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력을 극복가능한 수준으로 낮추어 주었으면 하고 바란다. 나머지는 개인의 몫이다. 

 

3. 우정과 박애

1년에 한번씩 중학교 동창들이 만나는데, 이번에는 하동에서 만났다. 그 중에는 꽤 성공한 사람도 있고, 예나 지금이나 힘든 삶을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현재의 커다란 차이에도 불구하고 가난한 과거를 공유하였다는 점에서 우리는 평등하고, 그래서 해마다 만나는지도 모르겠다.

왕멍이 말했다. "우정은 반드시 잔을 부딪칠 필요가 없다. 우정은 반드시 의가 좋을 필요가 없다. 우정은 간단하게 말해서 우리가 서로 영원히 잊지 않는 것이다"라고. 

 

우정은 우리가 서로 영원히 잊지 않는 것이다. 가난했던 과거도 잊지 않는 것이다. 우정이 사회 내로 들어가면 농도는 옅어지겠지만 박애가 되는 게 아닐까? 박애을 바탕으로 이 사회를 재구성하는 방법은 없는걸까? 나는 저 박태기나무를 보면서 생각했다. 나는 이 사회에 의무를 다하고 있는가? 

 

                 2015. 4. 21. 창원에서 자작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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