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추천)

안나 카레니나를 읽고

자작나무의숲 2014. 1. 7. 19:58

1. 개괄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를 읽었다. 저자가 1873~1877년 집필하였다.

주인공은 안나 카레니나와 콘스탄친 드미트리치 레빈이다. 안나 카레니나는 20년 연상인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 카레닌과 사랑 없이 결혼하여 습관적으로 살아가던 중 알렉세이 키릴로비치 브론스키 백작과 사랑에 빠져 집을 나간다. 콘스타친 드미트리치 레빈은 카체리나(키티) 알렉산드로브나에게 청혼을 하고 거절당하였다가 몇년 후 둘은 결혼한다. 알렉세이 키릴로비치 브론스키는 카체리나 알렉산드로브나와 사귀다가 안나 카레니나를 보는 순간 그녀를 사랑하게 된다. 스테판(스티바) 오블론스키는 안나 카레니나의 오빠이고 콘스탄친 드미트리치 레빈의 친구다.

이 소설은 총 8부로 구성되어 있고 7부에서 안나 카레니나가 달리는 기차에 뛰어들어 죽는데, 8부에서 콘스탄친 드미트리치 레빈이 신의 존재를 깨달는 과정을 그린다. 그래서 연재되던 잡지 편집자와 의견충돌이 있어 8부는 연재되지 못하고 톨스토이가 자비로 따로 출간하였다.

 

2. 발췌

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각각의 불행을 안고 있다.

 

준마는 낙인으로 알고 사랑에 빠진 젊은이는 눈빛으로 알지.

 

눈물은 두 자매의 소통을 연결하는 기계를 작동시키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윤활유와도 같았다.

 

난 더 이상 자신을 속일 수 없다는 걸 깨달았어. 난 살아 있는 여자야. 내게는 죄가 없어. 하느님은 날 사랑하며 살아야 하는 그런 여자로 만드셨어.

 

난 내가 죽어서 나 자신과 당신에게서 벗어날 거라고 생각하면 무척 기뻐요.

 

나를 미워하는 사람을 사랑할 수는 있지만, 내가 미워하는 사람을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 당신을 실망시켜서 죄송합니다. 저마다 나름의 충분한 슬픔이 있는 법이죠.

 

문제는 내가 분명 오징어를 사랑한다는 겁니다 / 하지만 오징어는 당신이 아내를 사랑하는 것을 방해하지 않을 것입니다 / 오징어야 방해하지 않겠지만, 아내는 방해할 걸요.

 

그는 죽음이 존재한다 할지라도 살고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사랑이 그를 절망으로부터구원했다는 것, 그 사랑이 절망의 위협 아래서 더욱 강해지고 순수해졌다는 것을 느꼈다.

 

그에게는 인맥이라 부를 만한 것은 많았지만 친구라고 할 만한 관계는 없었다.

 

난 때때로 나 자신을 책망해. 인간은 망각을 통해 죽는구나 하고. 아, 얼마나 무섭고도 매력적인 사람이었는지......

 

당신은 누군가를 사랑할 때, 당신이 그에게 바라는 모습이 아니라 그의 모습 그대로 그를 온전히 사랑하죠.

 

그녀는 날 제외한 모든 사람이 쉬쉬 숨기면서 하는 것을 했을 뿐이에요. 그녀는 속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당당하게 한 거죠. 

 

존중은 말이죠. 사람들이 사랑이 있어야 할 텅 빈 자리를 감추기 위해 궁리해낸 거예요. 만약 당신이 날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렇다고 말하는 게 훨씬 더 좋아요.

 

만일 선이 이유를 갖고 있다면, 그것은 이미 선이 아니야. 만일 그것이 결과물, 즉 보상을 갖는다면, 그것 역시 선이 아니야. 따라서 선은 원인과 결과의 사슬을 초월해 있어.

 

그것은 삶을 살 만한 것으로 만드는 유일한 것, 우리가 가치 있게 여기는 유일한 것, 즉 영혼이 삶을 영위할 수 있게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에게 일어날 수 있는 그 모든 일에 상관없이, 이제 나의 삶은, 나의 모든 삶은, 삶의 매 순간은 이전처럼 무의미하지 않을 뿐 아니라 선의 명백한 의미를 지니고 있어. 나에게는 그것을 삶의 매 순간 속에 불어넣을 힘이 있어!

 

3. 소감

레빈과 키티의 가정은 행복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안나와 카레닌의 가정이나 안나와 브론스키의 가정은 불행하다고 볼 수 있다. 스티바와 돌리의 가정도 행복하다고 볼 수는 없다. 행복한 가정엔 결혼, 사랑, 믿음, 적당한 질투, 행운, 적당한 재산이 있었다. 불행한 가정엔 그 중 적어도 한 가지가 없었다.

안나는 왜 자살을 택했을까? 남편으로부터는 자유롭지 못하고 브론스키 백작의 사랑은 갈수록 묽어지는 것을 보면서 자포자기 한 것일까? 아니면 브론스키가 영원히 안나 자신에 대한 기억으로 괴로워하게 만듦으로써 브론스키를 심판하려고 한 것일까? 안나는 일관된 행동을 취하지 않는다. 남편이 이혼을 해주겠다고 제안했을 때는 거절하고 외국으로 떠났다가 몇년 후 돌아와서는 남편에게 이혼해달라고 요구한다.

레빈은 톨스토이의 모습이 곳곳에 투영되어 있는 인물로서 농노해방 이후 농민과 어떤 관게를 맺어야 할 것인가? 생산력을 어떻게 높일 것인가를 고민하고 실천한다. 무신론자인 레빈이 결국 형의 죽음, 농민들과 대화, 키티의 사랑을 통해 신의 존재를 긍정하게 된다.

청나라 선비 고염무는 讀萬券書 行萬里路를 꿈꾸웠다. 나도 고염무와 같은 꿈을 꾸고 있다. 현재 달성률은 20%다.

 

                     2014. 1. 7. 부산에서 자작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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