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괄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1>을 읽었다. 칸트는 인간이 무엇인가와 관련하여 세 가지 질문을 던졌다. 나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 나는 무엇을 행해야만 하는가? 나는 무엇을 희망해도 좋은가? 이에 대한 답변으로 순수이성비판, 실천이상비판, 판단력비판 이 세권을 저술하였다. 서울대학교 철학과 백종현 교수가 번역하였고, 역자의 해제도 붙어 있다.
2. 발췌
자연에서는 "아무것도 무에서 생기지 않고, 아무것도 무로 돌아갈 수 없다. 자연에서의 생성소멸이란 무엇 아니던 것이 무엇인 것으로, 무엇이던 것이 무엇 아닌 것으로 생각되는 현상이다.
칸트는 이론 이성에 대한 "실천 이성의 우위"를 역설하며, 반성적 이성에 비치는 세계의 합목적성에 경탄한다. 이것 또한 그의 이성 비판의 결실이다. 엄밀한 학문은 진위가 판별될 수 있는 지식들의 체계이지만, 인간에게 값진 것은 지식의 세계만이 아니며, 오히려 당위와 희망의 세계라는 것이다.
순수이성비판이란 책들과 체계에 대한 비판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이성 능력 비판을, 이성이 모든 경험으로부터 독립해서 추구함직한 모든 인식과 관련해서 비판함을 뜻한다.
철학의 의무는 오해에서 생긴 환영을 제거하는 일이다.
왜냐하면 언제나 중요한 문제는 지성과 이성이 일체의 경험을 벗어나서 무엇을 얼마만큼 인식할 수 있는가이지, 사고하는 능력 자체가 어떻게 가능한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경험은 의심할 여지없이, 우리 지성이 감성적 감각이라는 원재료를 가공해서 산출해 낸 최초의 산물이다.
경험은 우리에게 무엇이 현존하며 그렇지 않는가를 가르켜 주기는 하지만, 그것이 반드시 그러해야만 하며 다르게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지는 않는다.
내적 필연성을 갖는 그런 보편적인 인식들은 이제, 경험으로부터 독립적으로, 독자적으로 자명하고 확실해야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러한 인식을 선험적 인식이라고 일컫는데 반대로 오로지 경험에서 얻은 것은, 통칭 그러하듯이, 오직 후험적으로 또는 경험적으로 인식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시간상으로는 우리에게 어떠한 인식도 경험에 선행하는 것은 없고, 경험과 함께 모든 인식은 시작된다. 그러나 우리의 모든 인식이 경험과 함께 시작된다 할지라도,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인식 모두가 바로 경험으로부터 생겨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경험 인식조차도 우리가 (감각) 인상들을 통해 수용한 것과 (순전히 이 감각 인상들의 야기로) 우리 자신의 인식 능력이 자기 자신으로부터 산출해 낸 것의 합성이겠으니 말이다.
그로써 인식이 직접적을고 대상들과 관계를 맺는 것은, 그리고 모든 사고가 수단으로 목표하는 것은 직관이다.
우리가 대상에 의해 촉발되는 한에서, 대상이 표상능력에 미치는 결과가 감각이다. 감각에 의해 대상과 관계 맺는 그런 직관은 경험적이라 일컫는다. 경험적 직관의 무규정적 대상을 현상이라 일컫는다. 현상에서 감각에 대응하는 것을 나는 그것의 질료라고 부르며, 그러한 현상의 잡다가 일정한 관계에서 질서지어질수 있도록 만드는 것을 나는 현상의 형식이라 부른다.
감각을 자기 안에 함유하고 있으면 경험적인 것이고, 반면에 그 표상에 아무런 감각도 섞여 있지 않으면, 순수한 것이다.
내용 없는 사상들은 공허하고, 개념들 없는 직관들은 맹목적이다. 따라서 그의 개념들을 감성화하는 일과 그의 직관들을 지성화하는 일은 똑같이 필수적이다. 또한 이 두 능력 내지 역량은 그 기능을 서로 바꿀 수가 없다. 지성은 아무것도 직관할 수 없으며, 감관은 아무것도 사고할 수 없다. 이 양자가 통일됨으로써만, 인식은 생길 수 있다.
모든 사고에 앞서 주어질 수 있는 표상은 직관이라 일컫는다.
인식을 위해서는 요컨대 두 요소가 있어야 하는데, 첫째는 도대체가 그것을 통해 사고되는 개념이고, 둘째는 그것을 통해 대상이 주어지는 직관이다.
우리는 범주들에 의하지 않고서는 어떠한 대상도 사고할 수가 없고, 저 개념들에 대응하는 직관들에 의하지 않고서는 어떠한 사고된 대상도 인식할 수가 없다.
순수지성의 모든 원칙들은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선험적 원리들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며, 모든 선험적 종합명제들도 이와만 관계하고 아니 이것들의 기능성 자체가 전적으로 이 관계에 의존하고 있다.
3. 소감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순수이성비판 2는 당분간 읽기 힘들겠다.
2013. 8. 19. 부산에서 자작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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