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괄
율곡 이이 선생이 쓴 <답성호원>을 읽었다. 임헌규 교수가 번역한 책이다. 이 책은 이이 선생이 성혼 선생의 '人心과 道心'에 대한 질문에 답하는 서간문을 담고 있으며 끝에 '율곡의 철학적 서신, 답성호원'이라는 역자의 해제가 붙어 있다. 율곡의 생애 중 19세에 금강산에 들어가 불교의 도를 닦았다는 부분이 눈에 띄었다.
2. 발췌
어버이를 위하여 몸을 굽힌 것이지, 감히 가난 때문에 녹을 구하는 것을 공맹의 정맥으로 삼으려 했던 것은 아닙니다.
과거로 말미암아 녹과 벼슬을 얻으려고 한다면 그런대로 괜찮겠지만 도를 행하려고 한다면 아마도 될 수 없을 것입니다.
대체로 도는 높고 멀어서 행하기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다만 일상생활 속에 있을 뿐입니다. 일상생활에서 마땅히 행해야 할 것은 모두가 도입니다.
인심과 도심은 서로 겸할 수 없고, 서로 처음과 끝이 됩니다. 사단은 칠정을 아우를 수 없으나, 칠정은 사단을 아우를 수 있습니다.
대저 (마음이) 아직 발동되지 않는 상태는 본성이고, 이미 발동된 상태는 감정이며, 발동하여 헤아리고 생각하는 것은 의지이니, 마음은 본성과 감정과 의지를 주재하는 것입니다.
인심과 도심은 모두 본성에서 발현하는데, 기운에 가려진 것은 인심이고, 기운에 가려지지 않은 것은 도심입니다.
감응하여 움직인 것은 본래 형기지만, 발동한 것이 인의예지의 바른 이치에서 곧바로 나와서 형기에 가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이치를 위주로 하여 도심이라고 합니다.
인심의 근원은 비록 하늘이 부여한 본성에서 나왔지만, 그 발동은 이목과 사지의 사사로움에서 나왔기 때문에 천리의 본래 그러함이 아니므로, 기운을 위주로 하여 인심이라고 하였습니다.
발동하는 것은 기운이고 발동하게 하는 까닭은 이치이니, 기운이 아니면 능히 발동할 수 없고 이치가 아니면 발동할 것이 없습니다.
불가의 말에 "금가루는 비록 귀중한 것이지만 눈에 들어가면 병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비유하자면, 성현의 말씀은 비록 귀중하지만, 잘못 이해하면 해가 된다는 것과 같으니, 이 말은 매우 좋습니다.
저는 남에게 증오나 혐오를 불러일으킬 일을 별로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벼슬을 하지 않는다는 단 한 가지 일과 행적이 시속과 다를 뿐인데, 자기와 다르다고 하여 곧 원수처럼 미워한다면 세상의 도의가 험악하다고 하겠습니다.
하늘의 이치는 무위이니, 반드시 기운의 기틀에 타야 움직인다. 그러므로 기운이 움직이지 않고 이치가 움직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대저 이치란 기운을 주재하는 것이며, 기운은 이치가 타는 곳이다. 이치가 아니면 기운이 근거할 바가 없고 기운이 아니면 이가 의착할 곳이 없다. 이미 두 물건이 아니며 또한 한 물건도 아니다. 하나의 사물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이면서 둘이며, 두 물건이 아니기 때문에 둘이면서 하나이다.
율곡은 인심과 도심은 모두가 기운의 발동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본연의 이치에 따른 기운은 본연의 기운이 발동하는 것이므로 도심이 되고, 기운이 본연의 기운에서 변한 것이면 이치 또한 변한 기운을 타기 때문에 인심이 되어 지나침과 모자람이 있게 된다.
3. 소감
율곡이 제시하는 교육의 방법은 기질의 개선이라고 하는 수양론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인심과 도심 논쟁은 이런 의미에서 실천적 의의를 갖는다고 말할 수 있다. 퇴계선생이 주리론을 대표하고, 율곡선생이 주기론을 대표하는 등 여러 가지 점에서 두분이 조된다.
2013. 7. 30. 부산에서 자작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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