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심리)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를 읽고

자작나무의숲 2013. 6. 9. 17:02

1. 개괄

제임스 힐먼이 쓴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를 읽었다. 저자는 스위스 취리히 융 연구소에서 10년간 소장으로 일하며 모든 생명에 활력을 불어넣는 근본적인 환타지에 집중하는 원형심리학을 개척했고 유전자와 환경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인간의 본질에 관한 이론을 통해 기존의 심리학 이론을 뿌리채 뒤흔들었다. 그는 삶이란 발전해가는 과정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이미지를 현실로 구현하는 것이라는 자신의 말을 그대로 실천하며 살다가 2011년 생을 마감했다. 이 책은 천재 심리학자가 발견한 11가지 삶의 비밀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2. 발췌

피카소는 "나는 진화하지 않는다. 그저 나로 존재한다"라고 말했다. 이것이 바로 이미지, 모든 이미지의 타고난 본질이다. 동시에 모든 것이 존재한다.

 

도토리 이론은 당신과 나 그리고 모든 개인은 하나의 규정된 이미지를 갖고 태어났다는 개념을 제시한다.

 

아들러의 이론에 따르면 어린 시절의 질병과 선천적 결손, 가난 등 여러 가지 불편한 환경은 더 고귀한 목표를 성취하는 데 필요한 자극을 제공한다. 그들은 각자 탁월하고 특별한 방식이 아니라 사람들의 시선을 많이 끌지 않는 방식을 통해 유약함을 강함으로 보완하고, 무능함을 권한 부여와 통제력으로 변형시킨다.

 

우리는 위로 자라는 게 아니라 땅을 짚고 아래로 성장한다. 그러므로 오래 살려면 땅 위에 두 발을 붙인 채 살아가야 한다.

 

매클린톡과 밀레이가 그들의 소명에 맞춰 필요했던 것은 홀로서기였다. 반면에 터너가 자신의 소명을 찾기 위해 꼭 필요했던 것은 버림받기였다. 이런 도토리들은 분명 이 어린 여자아이에게 가장 적합한 환경르 제공할 수 있는 무관심형 엄마를 선택했다.

 

세상은 명사보다 동사적으로 구성된다. 단순히 사물과 대상만으로 구성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쓸모 있고, 재미나고, 호기심을 자극하는 기회로 꽉 차 있다.

 

선구적인 생태학자 이디스 코브가 관찰할 바에 따르면 아동의 상상력은 전적으로 이런 자연환경과의 접촉에 달려 있다. 상상력은 집안에서 홀로 키워지지 않으며, 더구나 부모가 전해주는 상상의 이야기를 통해 길러지는 것도 아니다.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 함께 존재해야 생명을 존속시킬 수 있다....그렇다면 생명을 지속 가능한 상태로 유지시키는 문화가 해야 할 위대한 임무는 보이지 않는 것을 계속 세상에 붙여놓는 일이다.

 

어린 시절 그들의 부모는 자신의 자녀가 무엇을 하게 될지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다시 강조하지만, 도토리에게는 스승이 꼭 필요하다.

 

아일랜드 철학자 조지 버클리는 "존재한다는 것은 인식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인식 때문에 우리는 존재하며, 존재를 부여받는다. 버클리의 말은 신의 전지전능한 인식이 만물을 유지한다는 뜻이다.

 

이런 사랑처럼 갑작스럽게 찾아오거나 격렬하지 않지만 사람이 아닌, 특정 장소나 일에 대해 운명이라고 느끼고 온 마음을 바치는 경우도 있다. 그런 경우 그곳을 떠날 수 없으며, 모든 게 끝날 때까지 계속 머물러야 한다.

 

내 삶을 둘러싸고 있으면서 영향을 끼치는, 어쩌면 공유되지 않고 공유될 수도 없는 유일한 현상은 바로 다이몬의 고유성, 다이몬과 내가 맺는 관계의 개별성이다.

 

이런 (부모의) 임무에서 벗어난 멘토는 딱 한 가지만 하면 된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 당신이 짊어지고 있는 짐을 알아채고, 그 짐에 대한 환타지를 만들기만 하면 된다.

 

게니우스를 애완 거북이와 수집한 돌멩이 수준으로 낮추는 등 인간적인 것으로 바꾸는 편안함을 버려야 한다. 게니우스는 독특한 이미지로 신중하게 고려되어야 한다. 이를 두고 카를 융은 '제2의 인격' 이라고 했으며, 소크라테스는 다이몬이라고 했다.

 

이 세상과 저 세상이 공존할 수 없고, 태반과 아기가 반드시 분리되어야 하듯이 어떤 존재가 유한한 인간이면서 동시에 불멸의 스타는 될 수 없다. 그런데 스타는 인간이자 스타라는 두 가지 인격을 다 반영해야 하기 때문에. 다시 말해 도토리와 그 도토리를 품은 사람 사이에 작동하는 천부적인 중복성 때문에 두 개의 이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운명을 뜻하는 그리스어 모이라의 내면화된 양상인 다이몬도 우리 삶에서 일부분의 몫만 가진다. 다시 말해 다이몬은 우리 삶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불러낼 뿐이다.

 

유머 작가 제임스 서버는 어린 시절 두 눈을 차례대로 멀게 만든 사건을 겪었다. 하지만 그 사건은 그의 인생 경로를 다르게 결정하지 않았으며, 절망에 빠뜨리지도 않았다. 도토리는 그 상황을 받아들이고 목적을 찾아냈다.

 

도토리 이론에 따르면 처칠의 낙상 사고, 서버의 실명사고, 베리 어머니의 애도와 우울함, 샤넬이 사춘기를 보낸 보육원은 그들의 도토리와 적절하게 관련을 맺고 있다....그것은 '필연적인 우연한 사고', 즉 필연성과 우연성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다. 다시 말해 영혼의 소명이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고, 도토리가 자기 형상을 표출하여 자기 삶을 형성하는 데 필요한 수단이 되었다.

 

유머는 거창함에 절대 반대하며, 자기 반성을 장려하고, 자만심과 거리를 둘 수 있도록 해준다. 유머는 우리를 땅의 말뚝까지 끌어내림으로써 현실에 뿌리박고사는 일에 매우 중요한 요소다.

 

만약 사이코패스에 관한 한 가지 단서가 있다면 그것은 자신을 거창한 말로 표현하는 하찮은 정신일 것이다. 그 다음 사고력보다 사실을 강조하고, 비판적 판단보다 애국적 '가치'와 정치적 종교적으로 올바른 '가치'를 강조하는 교육은 사이코패스 고교 졸업자를 키워내는 나라를 만들 것이다.

 

다이몬의 부름에 저항하기는 어렵다.

 

사람은 저마다 뚜렷한 차이가 있다. 즉 우리 각자가 유일한 단수형이다. 그러므로 영혼에게 있어 평범함이란 개념은 무의미하다.

 

탁월함을 결정짓는 요인은 위대함으로 이끄는 운명의 부름이라기보다 성격의 부름이다.

 

소명이란 그 일을 수행하는 것으로 인식해야 한다. 단지 특정 유형의 직업으로 인식해선 안 된다.

 

영혼에 있어 평범함이란 없다. 영혼과 평범함이라는 두 가지 용어는 융합되지 않는다. 두 용어는 서로 다른 영역에서 왔다.

 

성격은 운명이다(헤라클레이토스)

 

헤라클레이토스의 현실 인식은 바로 이것이다. 당신은 바로 당신이 존재하는 방식이다. 이때 방식은 중요한 용어이다. 이 용어는 습관적으로 '행동이 이루어지는' 모습 그대로의 삶을 당신 이미지의 부름으로 연결시킨다.

 

3. 소감

저자의 주장을 정확하게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책 표지에 다음과 같은 명제가 제시되어 있음을  소개하는 것으로 갈음한다. '내 목적은 나 이전에 존재했다. 나는 그것을 이루기 위해 태어났다' '우리는 자신이 진정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야 한다. 또한 각자가 자신의 운명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가장 위대한 혁명은 진정으로 자신을 이해하기 시작했을 때 일어나기 때문이다'

 

         2013. 6. 9. 부산에서 자작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