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정치사회)

쇼에게 세상을 묻다를 읽고

자작나무의숲 2013. 1. 15. 08:00

1. 개괄

G. 버나드 쇼 <쇼에게 세상을 묻다>를 읽었다. 저자는 아일랜드 태생 극작가이자 사상가로서 노벨 문학상, 오스카 상을 모두 수상한 유일한 사람이라고 한다. 그는 버트랜드 러셀 등과 함께 온건한 사회주의자들의 모임인 페이비언협회에서 활동하였다. 페이비언협회는 영국 노동당에 사상적 토대를 제공했고, 인도 네루 총리와 싱가포르 리콴유 총리 등 제3세계 지도자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이 책은 44개의 소주제로 나누어 정치, 경제, 교육, 종교에 관한 저자의 생각을 담고 있다.

 

2. 발췌

현명함은 경험에 비례하는 것이 아니라 경험을 받아들이는 능력에 비례한다.

 

의지와 지식이 있는 한 사람이 의지와 지식도 없는 열 사람을 항상 이긴다.

 

우리 사회는 낙관론자와 비관론자를 모두 필요로 한다. 낙관론자가 비행기를 발명하면 비관론자는 낙하산을 발명한다.

 

자본주의 지지자들은 악한 의도로 선을 행하는 메피스토펠레스라기보다는 가장 선한 의도로 악을 행하는 몽상가이자 환상주의자들이다.

 

숫자는 수를 알려줄 뿐 무엇의 수치인지를 알려주지 않는다. 입법부의 존재 이유를 생각하면 만장일치는 무의미한 숫자에 불과하다.

 

선동가나 청원자가 입법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일반인들이 자동차를 갖고 싶어할 수는 있어도 자동차의 설계도를 만드는 것은 엔지니어이다. 그러니까 법은 군중이 아닌 적임자가 만들어야 한다.....제대로 된 적임자를 찾으려면 권력을 세습하는 전통을 없애야 한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부모나 친척이 누구든 관계없이 모두가 같은 선에서 출발해야 한다.....미국인들은 대통력직을 세습하자고 하면 깜짝 놀랄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가 아들에게 회사 경영권을 물려 주는 것은 당연하게 여긴다.

 

다수결의 원칙은 부자연스러운 제도라는 것을 깨닫는다. 자연의 섭리에 따라 세상에는 정치적 자질을 타고난 사람들이 언제나 충분하기 마련인데, 정치판을 보면 유능한 정치인은 항상 소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국가권력을 적극적으로 행사하는 법을 추진하려는 징후가 조금이라도 보이면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몰려가 반대표를 던진다. 따라서 보통사람들을 통제하려면 그들을 내버려두는 척하면서 적당히 속이는 수밖에 없다.

 

볼테르는 "개인보다는 다수가 더 현명하다"고 했는데 성인참정권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제대로 보지 못해서 그런 것이다.

 

확실히 전문가들은 자신들이 어디에 있는지 안다. 그러나 어디로 가고 있는지는 잘 모르다. 반면 사상가들은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는 알아도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는 잘 모른다.

 

여가의 결핍이나 과잉은 머리를 굳게 만든다.

 

전체주의 국가를 옹호하는 자라고 해도 로마제국에서 그랬던 것처럼 사상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를 억누르자고 제안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극단적인 것은 실행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선을 행하는 정부의 힘이 그 어떤 민간기업보다 강력한 것처럼, 악을 행하는 정부의 힘도 그 어떤 민간기업보다 강력하다.

 

여기서 놀라운 점은, 문학작품에 대한 재산권의 적용기간과 상속을 제한한 것처럼 토지와 산업시설에 대한 재산권도 제한해야 한다는 생각이 여태 입법자들의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정부는 탄압하는 동시에 관용해야 한다. 정부는 언제 어떤 것을 탄압하고, 언제 어떤 것을 관용할지 끊임없이 결정을 내려야 한다. 절대로 탄압이나 관용 중 어느 하나를 원칙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영국인들이 절대적인 원칙이나 논리를 불신하는 것은 바로 이 현명한 법칙에 기인한 것이다.

 

진보란 생각의 변화를 의미한다. 새로운 생각이 처음에는 농담이나 공상처럼 보이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다가 신성모독 내지 반역적인 것으로 보이게 되고, 차츰 논쟁의 여지가 있는 문제로 여겨지다가, 결국에는 진실로 확립되는 것이다.

 

법을 고칠 유일한 방법은 아주 많은 사람들이 법을 어겨서 死法을 만드는 것뿐이다. 그럴 경우 법은 스스로 폐기될 것이고, 정부는 정식으로 폐지 절차를 밟을 것이다.

 

소설에 기반한 여론조성에 공을 들이는 것은 정치적 수완으로, 정직한 정치인에게도 반드시 필요한 수법이다. 어리석은 자들을 다스리려면 그들의 어리석음에 기대야지, 그들이 갖고 있지도 않은 지혜에 기댈 수는 없기 때문이다.

 

선한 충동이나 직업윤리가 아무리 강해도 금전적 요구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선한 충동에서 하는 행동들은 간헐적이고 단발적이다. 반면 금전적인 요구는 변하지도 않고 사라지지도 않는다.

 

아무나 피선거권을 가진다면, 멀리 내다보는 후보가 근시안적인 후보에게 패배할 것이며, 유능한 실천가가 말만 번지르르한 사람에게 밀릴 것이고,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며 망설이는 지원자가 권위를 추구하는 거만한 야심가에게 질 수 있다.

 

아무리 부패한 정부라도 완전히 비사회주의적일 수는 없다. 도시에 모든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는 무료 도로를 건설하는 것이 다름 아닌 공산주의다.

 

정직한 사회의 기본 원칙은 정의와 진실은 사고 팔 수 없으며, 거짓 거래가 나쁜 거래 중에서도 제일 나쁘다는 것이다. 그러나 상업화된 사회에서는 모든 것을 사고 판다.

 

반대가 꼭 다수일 필요는 없다. 소수라도 정예화되면 전쟁은 막을 수 있다. 미국에서 정예화된 소수가 금주법 폐지를 이루어냈듯이 말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재화의 가치는 사람들이 그것을 얼마나 원하는 가에 달려있다...노동가치론은 완전히 한물갔다.

 

누구든 사회계층에 관계없이 아무하고나 결혼할 수 있는 날이 오면 우리 모두가 정치적으로 평등해질 것이다. 물론 우리 중 일부는 일년에 5,000파운드가 아닌 50,000파운드를 벌어서 조금 불행하겠지만.

 

추상적인 언어로 개인적 행위의 옳고 그름을 논하는 것은 시간낭비일 뿐이다.

 

착하지만 무식한 사람들이 권력을 잡으면, 못되지만 교양 있는 사람들이 권력을 잡을 때보다 더 나쁠 수도 있다.

 

사실상 대체로 부자들이 선한 편이고 "대체로 가난한 이들이 악하다". 빈곤. 그러니까 부유하지 못한 상황이야말로 물리쳐 없애야 할 악이다.

 

유권자들은 충분한 선택의 기회를 갖게 되며, 그러한 선택권만으로도 정부를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통제할 수 있다.

 

인간의 심장이 견디는 모든 일들 중에서 왕이나 법이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은 얼마나 미미한가!

 

소득평등화는 모든 시민이 서로 결혼가능한 수준이 될 때까지 진행되어야 한다. 그러한 소득평등화야말로 문명사회의 안정을 위한 기본조건이다.

 

그들은 정치를 삶의 바깥에 존재하는 것으로 여긴다. 그러나 정치가 사회생활의 과학이 되지 못한다면 무용지물일 뿐이다.

 

3. 소감

버나드 쇼는 많은 이야기를 독특한 화법으로 말한다. 수용할지 말지는 독자의 못이다.

 

          2013. 1. 15. 부산에서 자작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