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책에대한 책)

책은 도끼다를 읽고

자작나무의숲 2012. 5. 2. 21:59

1. 개괄

박웅현의 <책은 도끼다>를 읽었다. 저자는 광고인이다. "우리가 읽은 책이 우리 머리를 주먹으로 한 대 쳐서 우리를 잠에서 깨우지 않는다면 도대체 왜 우리가 그 책을 읽는 거지? 책이란 무릇, 우리 안에 있는 꽁꽁 얼어버린 바다를 깨뜨려버리는 도끼가 아니면 안 되는 거야"는 카프카의 글에서 제목을 따왔다고 한다.

 

2. 발췌

사과가 떨어졌댜.

만유인력 때문이란다.

때가 되었기 때문이지

(이철수 판화 '가을사과')

 

소설가 김훈에 따르면 글쓰기는 자연현상에 대한 인문적인 말 걸기라고 합니다.

 

저도 요즘 인터뷰하면서 "힘들 때 어떻게 하냐"는 질문에 그냥 "견딘다"라고 답합니다.

 

지금 나의 불행은 언젠가 내가 잘못 보낸 시간의 결과(나폴레옹)

 

휘슬러가 그린 멋진 안개 그림을 본 오스카 와일드가 이렇게 말했답니다. "휘슬러가 안개를 그리기 전에는 런던에는 안개가 없었다"라고요.

 

항해술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선박의 위치 판단이다(김훈 <자전거 여행2>)

 

보편적 죽음이 개별적 죽음을 설명하거나 위로하지는 못한다(김훈 <칼의 노래>)

 

행복은 추구의 대상이 아니라 발견의 대상이다.

 

결국 흥미를 잃은 것은 삶 자체가 아니라 우리가 삶을 영위하는 일상적인 태도라는 의미입니다. 알랭 드 보통에 의하면 마르셀 프루스트가 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의미는 바로 이것, 우리가 시간을 잃어버리며 살고 있다는 겁니다. 불평불만을 늘어놓으면서 말이죠.

 

프루스트는 이런 상투적인 표현들이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고 했다는데요. 그 이유는 정확하지 않은 표현이라서가 아니라 아무런 자극을 주지 않아서라는 겁니다. 이런 표현들은 그냥 흘러가버린다는 거죠.

 

프루스트는 이런 수식들이 우리 생각의 범위를 한정시키고 있다고 말합니다. 더 생각을 할 수 없게 만드는 문장들이라는 거죠. 그래서 "언어를 보호하는 유일한 방법은 언어를 공격하는 것뿐입니다"라고 합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도 말하죠. 익숙한 것을 두려워하라고.

 

황지우 시인은 인도를 "무능이 죄가 되지 않고, 인생을 한 번쯤 되돌릴 수 있는 그곳"이라고 했습니다.

 

"나는 한 알의 사과로 파리를 놀라게 할 것이다"라고요......결국 세잔은 프랑스 엑상프로방스에서 자신만의 독자적인 화풍을 발전시켜 20세기 회화의 참다운 발견자로 칭송받으며 '근대회화의 아버지'로 불리게 됐죠. 

 

<이방인>의 뫼르소는 거짓말을 하는 것을 거부한다. 거짓말을 한다는 것은 단순히, 있지도 않은 것을 말하는 것만이 아니다. 그것은 특히 실제로 있는 것 이상을 말하는 것, 인간의 마음에 대한 것일 때는, 자신이 느끼는 것 이상을 말하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이건 삶을 좀 간단하게 하기 위해서 우리들 누구나 매일같이 하는 일이다(알베르 카뮈).

 

소통이라는 것은 단어의 논리적인 의미를 이해하는 걸로 끝나지 않죠. 어떤 두 사람의 대화는 단어 밑에 깔리는 의미론 적인 것이 해석되지 않으면 소통이 불가능해요.

 

모든 자살은 충동적이에요. 다만 개연성은 있어요. 미시적 우연이지만 거시적 필연인 것이죠.

 

예술은 궁극의 경지에서는 단순해진다. 그리고 분명해진다(오주석)

 

산은 내 개인의 소유가 아니기 때문에 마음 놓고 바라볼 수 있고 내 뜰처럼 즐길 수 있다.

 

만물은 서로 의존하는 데에서 그 존재와 본성을 얻는 것이지. 그 자체로서는 아무 것도 아니다(프리초프 카프라).

 

3. 소감

책을 같이 읽고 서로 소감을 이야기하는 것도 사람 사귀는 데 좋은 형식인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유의미한 모임으로 발전하는 경우 초기에는 독서모임 형태가 많았던 같다.

 

                       2012. 5. 2. 부산에서 자작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