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괄
장하준, 정승일, 이종태의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를 읽었다. 이종태 시사인 기자가 사회를 보고 장하준 교수와 정승일 박사가 대담을 나누는 방식이다. 주주 자본주의와 금융 자본주의를 규제하고, 복지국가를 건설할 것을 강조한다. 특히 복지를 공동구매로 인식해야 한다는 점이 눈에 띄었다.
2. 발췌
자유주의는 근본적으로 시장주의입니다. 그런데 이 개념을 둘러싸고 혼선이 빚어지는 이유는 미국 지식인 사회와 정계의 어법 때문이에요. 유럽에서 사회민주주의라고 부르는 정책들을 미국인들은 리버럴이라고 해요. 자유주의란 뜻이죠.
18세기에 주식회사 제도가 생기면서 이미 자기책임의 원칙은 그 현실성을 잃어버린 겁니다. 기업활동의 위험을 기업가에게만 지우지 않고 일정하게 공동책임의 형태로 분담하게 된 것이니까요. 주식회사에 나타난 위험의 사회화 원칙이 더욱 발전한 게 현대의 복지국가입니다.
말하자면 고용 없는 성장은 주주 자본주의와 금융 자본주의라는 경제 구조에서는 필연적이라는 말이네요.
금리라는 건 아주 둔한 도구예요. 말하자면 무차별적으로 쏘는 대포나 융단 폭격 같은 거죠.....부동산에 거품이 있다면 부동산 하나만 타깃으로 공격하면 되지, 왜 금리를 올려 기업 대출이나 다른 대출까지 다 죽이는 겁니까?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라면 관치를 하는 게 맞습니다. 금리 인상 같은 국가적인 중대사에 개입하지 않을 거라면 정부는 뭐하러 두나요? 그냥 시장에 맡겨 놓으면 그만이지.
저는 정책 금융 기관들이야말로 우리 금융의 미래라고 생각해요. 주주 자본주의에 포섭된 상업적 은행들이 도저히 흉내낼 수 없는 일을 하고 있거든요.
이번 미국발 금융 위기에서 드러났듯이 정말 중요한 건 재벌 금융 규제가 아니라 헤지펀드나 신용파생상품, 국제 신용 평가사, 이런 것들을 규제하는 거에요.
기본적으로 자본주의는 1원-1표의 원리가 지배하는 시스템이에요. 반면에 민주주의는 1인-1표고요. 모름지기 진보라면 1원-1표의 원리가 지나치지 않도록 막기 위해 공공 영역의 힘을 늘리려 노력해야 하는 게 아닐까요?
지금도 미국 제약 산업의 연구개발비 중 30퍼센트가 정부에서 나와요. 세계 최대 규모죠. 미국에도 이런 엄청난 산업 정책이 있는데 우리는 그것도 모르고 미국은 안 한다더라. 우리도 하지 말아야 한다고 있는 거에요
우리가 <쾌도난마 한국경제>에서 주장한 사회적 대타협이란 우리 사회가 주주 자본주의를 규제함으로써 재벌 가문의 경영권을 안정시켜 주는 대신에 재벌은 노동과 세금, 투자 등의 문제에서 기존의 보수적 태도에서 벗어나 복지국가 건설에 협조하라는 취지였는데 말입니다.
KT는 민영화 과정에서 원래 정규직의 절반 가까이가 해고되고, 그중 일부는 다시 비정규직으로, 외주 노동자나 파견 노동자로 재고용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주주 배당은 엄청나게 높였어요.
같은 일을 하는 노동자에게는 같은 임금을 준다는 것이 스웨덴 연대임금 원칙인데, 이 제도를 시행하면서 생산성이 낮은 한계기업들은 퇴출될 수밖에 없어요. 반면에 생산성이 높은 기업들은 더 성장하게 됩니다. 또 그 과정에서 노동자들 내부의 임금 격차가 좁혀져 양극화도 줄어들고요.
제조업이야말로 자본주의 발전의 동력이었어요. 금융 등 다른 부문들은 제조업을 보조하면서 함께 발전해 온 거고요.
진정으로 한국 경제의 성장과 산업 고도화를 바란다면 노동자들의 삶을 공적으로 보장하는 장치, 즉 복지국가가 필요한 겁니다.....스웨덴이나 독일 같은 복지국가에서는 실업수당을 넉넉하게 주는 건 물론 정부가 돈을 대서 이직이나 전직을 위한 재교육도 시켜줌으로써 산업 고도화와 경제 성장이 더 잘 이루어지도록 합니다. 복지국가가 실직자와 그 가족만 돕는 게 아니라 말하자면 기업과 자본도 돕는 셈이죠.
저는 진심으로 복지국가를 만들겠다는 정치인이라면 국민에게 증세가 필요하다고 적극 호소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복지 지출을 늘리는 게 국민이 각자 시장에서 따로 사던 물건을 국가가 공동 구매를 통해 저렴하게 제공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리면 되거든요.
복지국가가 성숙 단계에 들어섰기 때문에 고용 유연성 이야기가 나와도 그 사회가 큰 무리 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던 거예요. 일은 순서대로 해야 합니다. 먼저 복지국가부터 만들어 놓고 그 다음에 유연성을 말해야 하는 거죠.
케인스가 구성의 오류라는 말을 했어요. 개별적으로는 합리적인 게 경제 전체로는 비합리적일 수 있다는 말인데, 애덤 스미스가 말한 보이지 않는 손의 원리를 정면으로 부정한 개념이죠.
노무현 정부 안의 진보적 인사들이 소득 재분배는 외면한 채 자산 재분배, 즉 소유 재분배에 주로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종부세나 소액주주 운동은 모두 자산 재분배를 하자는 거에요.
보편적 복지국가론은 유럽의 사회민주주의나 기독교민주주의 같이 자유주의와 공산주의의 중간에서 서 있는 세계관에 기초한 경제 민주화론이라 할 수 있다....우리에게는 보편적 복지의 확대가 바로 경제 민주화의 핵심이다.
3. 소감
사회적 대타협이 가능하도록 하는 조건은 무엇일까? 외국 금융자본보다 차라리 국내 재벌이 낫다는 인식이 돋보였다. 여러 가지로 생각할 거리가 많아졌다.
2012. 4. 23. 부산에서 자작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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