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단상

진주 관사에서 마지막 밤을

자작나무의숲 2012. 2. 18. 22:00

1. 기억 

진주 관사에서 마지막으로 잡니다. 1년 동안 참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1983년 진주를 떠난 이래 가장 자주 하동군에 있는 본가를 방문한 1년이었습니다. 한꺼번에 100여 명의 사람을 좋아해보기도 처음이었습다. 새벽에 남강변을 뛰는 일도, 때로는 망진산에 올라 나무 이름을 외우던 일도 당분간은 못할 것입니다. 1981년 가르침을 받은 이래 처음으로 김장하 선생께 식사를 대접했습니다. 7000원 짜리 매운탕이었지만 3번을 청하여, 진주지원을 떠나니 당분간 뵐 수 없다는 이유를 내세우고서야 이루어진 것이니 가벼운 일은 아니지요. 지리산고등학교를 비롯하여 많은 학교의 학생들을 만난 것은 의무의 이행이자 보람의 바탕이었습니다. 특히 지리산고등학교 입학 면접에서 눈여겨 본 학생의 합격은 진주 생활의 선물이었습니다. 여러분이 이별을 아쉬워하며 건넨 선물도 아련한 추억으로 남을 것입니다.

 

2. 변명

왜 이임식을 하지 않냐고? 왜 환송하러 나온 사람들에게 한 마디라도 하지 않았냐구 물을지 모르겠습니다. 작년 말 여직원회가 주최한 모임에 초대받아 가서 "빈농의 아들인 제가 판사가 되었듯이, 권oo대리의 자녀도 판사가 되고, 진oo대리의 자녀도 판사가 되는 그런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말을 하다가 갑자기 눈물을 흘린 기억이 있어, 만에 하나 그러한 사태가 재연될까봐 참았다고 하면 변명이 될런지요.......

 

3. 소망

우리는 지금 헤어지지만 여러분이 법원에 들어올 때 품었던 그 뜻을 펼치시는 길에서 우리는 만날 것입니다.
                                   2012. 2. 18. 진주에서 자작나무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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