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인문)

다산 정약용 산문집 중에서 몇 구절

자작나무의숲 2011. 6. 25. 13:13

2005. 11. 19. 읽은 <다산 정약용 산문집> 중에서 밑줄 치며 읽었던 문장은 다음과 같다.

 

誠의 공부는 가장 먼저 황당한 말을 하지 않는 것부터 힘써야 할 것이다.

 

나의 소견으로 살핀다면, '중국'이라고 하는 말에서 왜 그 나라가 '중앙'이 되는지 그 까닭을 모르겠다. '동국'이라고 하는 말에서도 왜 이 나라가 '동쪽'이 되는지 그 까닭을 모르겠다.

 

슬기로운 자는 어쩌다 스스로 깨닫기는 하지만 자기의 혈기를 잘못 유도하는 병통이 있고, 어리석은 자는 그 포악한 생활에 안주해 그것을 고치지도 못하고 인생을 마쳤지. 그런 까닭에 인물들이 모두 작아지게 되었지만, 영남 지방은 그렇지가 않았다네.

 

열 명을 한 戶로 잡아 본다면, 한 호마다 일 결의 토지를 가지게 된다. 그렇게 되어야만 재산이 고르게 된다......그러니 조정의 윗자리에서 있으면서 부지런히 애쓰고 끊임없이 힘써서 부자의 재산을 덜어내어 가난한 사람에게 보태어 줌으로써 백성들의 재산을 고르게 하는 일을 힘쓰지 않는 자는 임금과 목민관의 도리로써 자기 임금을 섬기는 자가 아니다.

 

농사 짓는 사람에게 토지를 가지게 하고, 농사를 짓지 않는 사람에게는 토지를 가지지 못하게 하는 것이 옳다.

 

선비 가운데는......실리를 강구하여 토지에 알맞는 농작물을 분별하며, 수리를 일으키거나 기구를 제작하여 사람의 힘을 덜어 주기도 하며, 원예기술이나 목축업을 가르쳐서 농민에게 도움을 주는 자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자들의 공을 어찌 육체로 일하는 자들의 능력과 견줄 수 있으랴. 하루의 일을 열흘로 기록하고 열흘의 일을 백일로 기록하여, 이에 따라 곡식을 나누어 주어야 옳을 것이다. 선비에게 어찌 곡식을 나누어 주지 않겠는가?

 

위로는 부모를 섬기기에 넉넉하고, 아래로는 처자식을 먹여 살리기에 넉넉하며, 또한 친척을 돕고 손님들을 접대하며 종들을 사랑하고 집을 꾸미며, 옷차림이나 말까지 아름답게 할 수 있어야 조정에 벼슬하기를 바라게 될 것이다.

 

아무리 성인이라 하더라도 천 명이나 만명이 함께 의논한 것을 당해낼 수 없고, 아무리 성인이라고 하더라도 하루아침에 그 아름다운 덕을 모두 갖출 수는 없는 것이다......그런데도 우리는 막연하게 서로 모르는 것을 묻지 않고, 오직 예전의 것만 만족하게 여기고 있다. 어찌 그리도 게으르단 말인가.

 

政의 뜻은 바로잡는다(正)는 말이다.

 

충신과 효자의 입장에서는 원망이 바로 자기의 충정을 나타내는 길이다. 그러기에 원망을 설명할 수 있는 자라야 비로소 시를 말할 수 있고, 원망을 아는 자라야 비로소 충효에 대한 감격을 설명할 수 있다.

 

다산이 귀양을 가지 않았더라면 그 많은 책을 쓸 수 없을 터인데, 그렇다면 다산이 귀양간 것이 조선에 긍정적으로 작용한 것일까? 책 저술이 아니라 정사를 통하여 세상을 바로잡는 것이 더 바람직했을까? 독서일기를 쓰면서 부질없는 생각을 해본다.

 

      2011. 6. 25. 진주에서 자작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