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추천)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고

자작나무의숲 2011. 6. 5. 16:19

니코스 카잔차키스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었다. 이윤기 선생 번역본을 읽었다. 여러 사람이 이 책을 추천하였다. 저자는 현대 그리스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이자 20세기 문학의 구도자로 불리며, 1917년 펠로폰네소스에서 <그리스인 조르바>의 주인공이자 실존 인물인 기오르고스 조르바와 함께 탄광사업을 했다고 한다. 작가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신보다는 인간, 애국보다는 자유에 더 가치를 두는 것은 명확한 것 같다. 두고 두고 음미해보고 싶은 문장은 다음과 같다.

 

그(조르바)는 살아 있는 가슴과 커다랗고 푸짐한 언어를 쏟아 내는 입과 위대한 야성의 영혼을 가진 사나이, 아직 모태인 대지에서 탯줄이 떨어지지 않은 사나이였다.

 

인간이라니, 무슨 뜻이지요? 자유라는 거지!

 

나는 그제야 그의 왼손 집게손가락이 반 이상 잘려 나간 걸 알았다........참, 그게 녹로 돌리는 데 자꾸 거치적거리더란 말입니다. 이게 끼어들어 글쎄 내가 만들려던 걸 뭉게어 놓지 뭡니까. 그래서 어느 날 손도끼를 들어......

 

이 씨앗이 친절하고 정직한 곳에서는 왜 꽃을 피우지 못하지요? 왜 피와 더러운 거름을 필요로 하느냐는 것입니다.

 

음식은 곧 피로 변했고 세상은 더 아름다워 보였다. 우리 옆에 앉은 여자는 시시각각으로 젊어졌다. 얼굴의 주름살로 사라지기 시작했다.

 

당신은 목자요, 자본준가요? 결단을 내리쇼! 그러나 어떻게 결단을 내린단 말인가? 나는 이 양자를 결합하는 희망, 양극이 화합할 길을 모색하여 지상의 생활과 하늘의 왕국을 동시에 얻는 욕망에 사로잡혀 있었다.

 

나는 아무것도 믿지 않소. 내가 사람을 믿는다면, 하느님도 믿고 악마도 믿을 거요. 그거나 그거나 마찬가지니까......내가 조르바를 믿는 건, 내가 아는 것 중에서 아직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조르바뿐이기 때문이오. 나머지는 모조리 허깨비들이오(조르바의 말).

 

아프리카인들이 왜 뱀을 섬기는가? 뱀이 온몸을 땅에 붙이고 있어서 대지의 비밀을 더 잘 알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야수처럼 으르렁거리면서 해안을 덮쳐 핥아 갈증을 달래는 바다 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나는 행복했고,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행복을 체험하면서 그것을 의식하기란 쉽지 않다. 행복한 순간이 과거로 지나가고, 그것을 되볼아보면서 우리는 갑자기(이따금 놀라면서) 그 순간이 얼마나 행복했던가를 깨닫는 것이다. 그러나 그 크레타 해안에서 나는 행복을 경험하면서, 내가 행복하다는 걸 실감하고 있었다.

 

마침내 나는 먹는다는 것은 숭고한 의식이며, 고기, 빵, 포도주는 정신을 만드는 원료임을 깨달았다.

 

오래 살면 오래 살수록 나는 반항합니다. 나는 절대로 포기하지 않습니다. 세계를 정복해야 하니까요!

 

행복이라는 것은 포도주 한 잔, 밤 한 알, 허름한 화덕, 비다 소리처럼 참으로 단순하고 소박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필요한 것은 그것뿐이었다.

 

공자 가라사대, <많은 사람은 자기보다 높은 곳에서, 혹은 낮은 곳에서 복을 구한다. 그러나 복은 사람과 같은 높이에 있다>던가.

 

그리스, 우리, 조국, 의무 같은 게 다 뭐야. 진실은 여기에 있는데! 자네 대답은 이랬지. 그리스, 우리 조국, 의무는 아무것도 아니야. 그러나 우리는 이 아무것도 아닌 것을 위해 기꺼이 파멸을 맞아들여야 하는 것이네.

 

두목, 언젠가 내가 사람에게는 저 나름의 천당이 있다고 한 적이 있지요.

 

과오란 고백으로 반쯤은 용서된다고 합니다.

 

나는 자유를 원하는 자만이 인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여자는 자유를 원하지 않아요. 그런데 여자도 인간일까요?

 

조르바는 내 내부에서 떨고 있는 추상적인 관념에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살아 있는 육체를 부여했다. 조르바가 없으면 나는 다시 떨게 되리라.

 

조국 같은 게 있는 한 인간은 짐승, 그것도 앞뒤 헤아릴 줄 모르는 짐슴 신세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두목! 이 놈의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은 하나같이 부정, 부정, 부정입니다! 나는 이 놈의 세상에 끼지 않겠어요.

 

인간이란 참 묘한 기계지요. 속에다 빵, 포도주, 물고기, 홍당무 같은 걸 채워주면 그게 한숨이니 웃음이니 꿈이 되어 나오거든요. 무슨 공장 같지 않소.

 

날 용서하시오. 부인. 날 용서해주시오. 하느님이 당신도 용서하시기를......내 비록 험한 말을 더러 하기는 했으나......우리는 인간에 지나지 않소이다......날 용서하시오

 

두목, 음식을 먹고 그 음식으로 무엇을 하는지 대답해 보시오. 두목의 안에서 그 음식이 무엇으로 변하는지 설명해 보시오. 그러면 나는 당신이 어떤 인간인지 일러 드리리다.

 

신도 없고 악마도 없고 오직 자유로운 인간만 있는 수도원

 

그리고 나는 무슨 짓을 했건 후회는 않더라고 해주시오(조르바 편지)

 

번역자 이윤기 선생의 해설은 다음과 같다

 

카잔차키스가 최초로 세우게 되는 3단계 투쟁계획이다. '압제자 터키로부터 해방을 쟁취하기 위한 1단계 투쟁, 우리 내부의 터키라고 할 수 있는 무지, 악의, 공포 같은 모든 형이상학적 추상으로부터 해방을 쟁취하기 위한 2단계 투쟁, 우상이라고 일컬어지는 것, 우리가 섬기는 중에 우상이 되어 버린 모든 것으로부터 해방을 쟁취하기 위한 3단계 투쟁.....'

 

왠지 모르게 생명의 힘이 느껴지는 소설이다. 일독을 권한다.

 

     2011. 6. 5. 진주에서 자작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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