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정치사회)

런던통신 1931-1935을 읽고

자작나무의숲 2011. 5. 1. 11:37

버트런드 러셀 <런던통신 1931-1935>을 읽었다. 버트런드 러셀의 책이라는 이유만으로 골랐다. <게으름에 대한 찬양>을 읽고 생긴 호감은 <서양철학사>, <행복의 정복>을 거쳐 이 책에게까지 적용되었다. 이 책은 러셀이 1931년 ~ 1935년 주로 미국 신문에 기고했던 칼럼을 모은 것이다. 의미 있게 읽은 구절은 다음과 같다.

 

현대 세계에는 여가라고는 거의 없다.....그 결과 영리한 사람은 많아졌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줄어들고 있다. 지혜란 천천히 생각하는 가운데 한 방울 한 방울 농축되는 것인데 누구도 그럴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사람들이 유쾌하고 명랑하고 다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아니오'보다는 '예'란 대답을 더 많이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경험에서 진정으로 무언가를 배우려면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한다. 과학을 하는 많은 이들에게 이런 태도가 다소 부족하긴 하지만, 열린 마음은 과학적 기질의 정수다.

 

민주주의가 새로운 것일 때는 위대한 사람들이 부상하지만, 확고하게 자리를 잡으면 이 장점을 잃어버린다. 정당조직 때문이라고 한다.....내가 볼 때 그 궁극적 이유 가운데 거의 알려지지 않은 게 습관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특정 후보의 장단점을 따지지도 않은 채 자신들이 늘 투표해왔던 대로 그리고 그들의 아버지가 늘 투표해왔던 대로 표를 던진다.

 

민주주의에서 우리의 정치가를 비판하는 것은 우리 자신을 비판하는 것과 같다는 점을 기억하자. 우리의 수준이 곧 정치가의 수준이다. 

 

진정한 미덕은 강건하다. 그리고 예쁘게 꾸민 공상이 아니라 사실과 맞닿아 있다.

 

어떤 종류의 곤경에 처했든 필요한 것은 쾌활한 감정이 아니라 건설적인 사고다. 전 세계적인 불황 덕분에 이 사실이 점차 세상에 먹혀들어가고 있다.

 

만약 그 사람이 느끼는 감정을 이해하고 싶다면 그 사람의 껍질 속으로 들어가 그의 관점에서 세상을 보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러나 그가 하려던 행동을 알고 싶다면 천문학자가 달이나 목성을 바라보듯 철저히 외부에서 바라보는 것이 현명한 일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탁월하기 위해서는 다양성이 필수적이며 획일적인 교육은 평범한 성인의 삶을 양산하기 마련이다.

 

민주주의가 바람직한 까닭은 평범한 유권자가 무슨 정치적 지혜를 지녔기 때문이 아니다. 인류의 어떤 집단이든 일단 권력을 독점하면, 나머지 집단은 삶의 좋은 것들을 누리지 않고 사는 편이 낫다는 것을 입증할 목적으로 각종 이론을 창안할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의회정치가 성공하려면 양당 제도가 필요하다.

 

자기 시대와 민족의 한계를 공유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정직한 사람이라도 남을 설득할 수 없다.

 

사람들은 경제 민주주의와 교육 민주주의가 수반되지 않는 정치 민주주의는 엉터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저급한 정신을 드러내는 가장 확실한 징표의 하나는 지루해지는 것에 대한 용기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보통 사람들의 물질적 안녕을 기술적으로 가능하게 할 만큼 충분한 양의 상품을 생산하는 문제는 경쟁 시대의 사람들이 해결했다. 남은 문제는 생산이 아니라 분배의 문제다. 분배 문제는 경제 전쟁으로 해결할 수 없고 오직 경제 정의로만 해결할 수 있다. 경쟁 시대의 사고방식은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적합하지 않다. 분배 문제는 협력을 통해서만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정성은 권력의 분배를 필요로 한다. 그렇지 못하다면 힘 있는 자들은 공정성을 요구하는 주장을 대할 때마다 간단한 반박 논리를 내세울 것이다. "그건 달라"

 

일정한 시기에 자신의 생업으로 일자리를 얻지 못한 이들은 국가에서 지원을 해서 지적으로든 미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 넓은 의미에서 교육적인 방법을 통해 일을 시작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사실 은폐라는 방법을 쓰는 모든 신조는 자기 신념이 타당한지 확신하지 못하고 심지가 굳건하지도 못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사건들을 충분히 숙고하는 과정에서 진실한 것들이 진실로 떠오를 것이다.

 

지혜는 현실 세계를 우리가 바라는 대로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데서 시작된다.

 

일독을 권한다. (1) 버트런드 러셀의 글이므로, (2) 1930년대 문제 의식이 80년이 지난 지금에도 유효하므로, (3) 따뜻한 봄이므로

 

                             2011. 5. 1. 진주에서 자작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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