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성찰)

친구가 되어 주실래요를 읽고

자작나무의숲 2011. 2. 12. 20:06

고 이태석 신부의 아프리카 이야기 <친구가 되어 주실래요?>를 읽었다. 저자는 감동 휴먼 다큐멘터리 "울지마 톤즈'의 주인공으로 1962. 9. 19. 부산에서 출생하였고 인제대 의과대학교 졸업과 군의관 복무 후 인생 진로를 바꾸어 2001년 사제를 서품받고 수단으로 출국하여 톤즈 지방에서 선교, 병원 운영, 학교 운영을 하다가 2008년 휴가차 입국 후 대장암 3기로 판명되어 결국 2010. 1. 14. 49세의 연세로 선종하셨다. 이 책은 저자가 2009년 냈던 1판에 일부 내용을 보완하여 사망 이후 증보판을 낸 것이다.

 

수단을 소개하면 북쪽은 이슬람교의 아랍인이 지배하고 남쪽은 본토 흑인들이 지배하는 상태에서 25년간 내전을 하다가 2005년 1월 평화협정이 체결되었으며 최근 국민투표를 거쳐 남부수단이 분리된 것으로 알고 있다.

 

이 책에서 인상 깊게 읽은 부분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내 가족이나 부족 중에 한 사람이 상처를 입거나 살해를 당하게 되면 피해를 당한 부족의 누군가가 상대 부족 두 명을 해치워야 하고, 그러면 또다시 상대 부족이 공격해 와 세 명을 해치운다.

 

많은 사람들이 청소년 문제를 가정, 사회 또는 매스컴 등 애매모호한 대상에게로 탓을 돌리려 하지만 D동 수도원의 시설에서 수사님들과 함께 사는 60여 명 아이들 가운데 99퍼센트가 결손 가정의 자녀들인 것을 보면 실제 범인은 나를 포함한 이 땅의 어른들이 아닌가 싶다.

 

나의 인내심을 단련시켜 주고 나의 성소를 굳건히 지켜주는 아이들이 바로 골통들이기 때문이다. 골통들은 운동선수들이 다리에 차고 뛰는 모래주머니 같은 아이들이다. / 골통들의 심리는 엄청나게 복잡한 삼차방정식 같지만 알고 보면 답만은 간단하다. X=사랑, 즉 사랑받고 싶어 하는 마음이 바로 정답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러한 환자들을 보며 정말 무서워해야 될 것은 우리가 앓고 있는 질병 자체가 아니라 우리가 그 병을 앓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무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 현대 사회는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가 물질주의라는 병을 앓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문제는 그 병 자체가 아니라 개인이나 사회가 그 병을 앓고 있다는 것을 모른다는 데에 있다.

 

2년에 한 번씩 한국에서 지내는 두 달 정도의 휴가 기간은 매일이 감사절이다. / 그런 걸 보면 많이 가지지 않음으로 인해 오는 불편함은 참고 견딜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는 모양이다. 그것을 통해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에 대한 참된 가치를 알게 되고 감사하는 마음까지 생기게 되며, 그것을 통해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지극한 사랑을 저절로 느끼게 되니 말이다.

 

복음을 전파함에 있어 교리서나 성경에 있는 내용을 주입하는 것을 넘어서,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스스로의 삶을 통해 주위 사람들의 영혼을 건드려 움직이게 하고 감동하게만 할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완벽하고 발 빠른 복음화가 또 있을까 싶다.

 

여기 수단은 한국에선 볼 수 없는 정말 아름다운 것 두가지가 있는데, 그중의 하나는 너무도 많아 금방 쏟아져 내릴 것 같은 밤 하늘의 무수한 별들이고 다른 하나는 손만 내면 금방 톡하고 터질 것 같은 투명하고 순수한 이곳 아이들의 눈망울이다.

 

어떠한 이유에서건 전쟁은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된다. 건물이나 중요한 유산들이 파괴되는 것도 문제이지만 그것보다도 전쟁이 마뉴알과 같은 죄 없는 아이들에게 입힌 도덕적, 심리적 상처야말로 돌이킬 수 없는 심각한 파괴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두 세 배의 가격이다. / 물론 도로 사정이 나쁜 것과 기후나 토질이 나빠 농작물의 자급자족이 되지 않는 것이 주원인이라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진짜 주원인은 이 두 가지 원인의 배후에 숨어 있는 사람들의 무관심이라는 것이 아닌가 생각뇐다. 최소의 투자로 최대의 이익을 올리는 것만이 모든 사람들의 목표인 자본주의 사회가 만든 '정당화되어 버린 무관심' 말이다.

 

세상에 많은 문제를 일으키는 가장 흔한 원인은 바로 나 자신이라는 것이 그 좋은 예가 아닌 듯싶다. 내 탓이오! 하면서 나 자신의 마음가짐만 조금 바꾸면 모든 것이 쉽게 풀려 해결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체면이나 위신 또는 자존심 때문에 문제의 원인을 엉뚱한 곳에, 즉 타인에게로 돌리려 한다.

 

그들이 우리의 도움을 받는다고 해서 꼭 우리가 믿는 종교로 개종해야 한다는, 내 안에 잠재된 강박적인 사고에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반 세기 동안이나 계속된 전쟁통에서 이곳의 청년들이 유일하게 배울 수 있었던 것은 학교에서의 수학이나 영어가 아닌, 전쟁터에서 내가 죽지 않기 위해 적을 먼저 죽여야 한다는 법이었으니 말이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성당에서 다미안 신부 일대기를 다룬 영화를 보고 나왔는데 이태석 신부가 그런 삶을 살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다미안 신부는 한센병 환자들이 모여 살던 화와이 근처 몰로카 섬에서 한센인의 상처받은 마음을 위로해주다 자신도 한센병에 걸려 4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KBS 다큐멘터리 제작팀이 톤즈 사람들에게  신부님 선종 사실을 알려주자 고인이 창단한 브라스밴드의 맏형이 신부사진의 영정사진을 들고 톤즈 중심 거리 행진을 하자 많은 주민들이 그 뒤를 따랐다는 부분에서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다......2009년 대장암과 싸우며 이 책을 썼을 신부님의 얼굴을 떠올려 보았다. 그의 마음 속에 자리잡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죽음에 대한 공포였을까? 평화에 대한 기도였을까? 아니면......

 

           2011. 2. 13. 부산에서 자작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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