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성찰)

반성을 읽고

자작나무의숲 2011. 1. 14. 22:30

김용택 외 여러 작가가 쓴 <반성>을 읽었다. 글을 쓴 작가는 총 20명이다.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는 내용이 많다. 인상 깊게 읽은 구절은 다음과 같다.

 

반성이라고 하면 지난날을 후회하면서 자신을 꾸짖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물론 그런 순간도 일부 포함됩니다. 하지만 그보다는 원래 자신이 품었던 생각, 처음 가졌던 자세, 출발점에서 가졌던 순수한 마음을 회복하는 일입니다.

 

에리히 프롬이 말한 존재론적 사랑은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는 태도다. 즉 그것은 꺾지 않는다. 소유하지 않는다(이재무).

 

언제부터인가 지키지도 못할 또는 지킬 의향도 없는 말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얼마 전입니다 / 눈은 사람의 내부로 들어가는 문입니다. 눈을 바라보지 않는 사람의 내면으로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합니다(이승우).

 

누구나 알다시피 우리 사회는 대충 알고 모르는 것은 관습과 관행으로 지탱되는 반가통의 사회, 지적으로 굉장히 나태한 사회다. 그래도 사는 데 크게 불편하지 않다(장석주).

 

보르헤스에게 현실의 정수는 책 속에 있었다. 책을 읽고, 책을 쓰고, 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그 알맹이였다. 그는 수천 년 전에 시작돼서 한번도 끝난 적이 없는 대화를 이어가고 있음을 본능적으로 인식했다(알베르토 망구엘 <보르헤스에게 가는 길> 중)

 

반성은 자기 돌아봄이다. 나는 어떤 진리나 옳은 신념이라 하더라도 반성이 뒷받침되지 않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한다(장석주).

 

바늘로 우물파기! 오르한 파묵은 노벨문학상 수상 연설문에서 터키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이 말을 굳이 인용했다......그는 특별히 이 말을 작가를 염두에 둔 멋진 표현이라고 피력했는데, 작가라는 작업의 비밀을 영감이 아닌 끈기와 인내에서 찾은 그에게 참으로 합당하지 않을까(공애린)

 

살아간다는 것은 반성하는 것이다. 이 문장이 공한 이치, 즉 세번째로 나를 지키는 문장이 되기를 바란다. 나는 매일 문장을 고치고 찾지만 그 안에 반성이 없으면 하루가 없을 것이다(고형렬).

 

이 책을 읽고 나니 다음과 같은 생각이 들었다.

성찰이 없으면 소통이 없고 소통이 없으면 성찰이 없다. 내가 남에게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내가 남을 대하고 있는지 스스로를 돌아보지 않으면 타인과 소통하기 힘들다. 남과 소통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성찰로 나아가지 않는다면 완전한 소통이 되었다고 말할 수 없다. 결국 성찰과 소통은 동전의 양면처럼 붙어 있을 때 제 값을 받는다. 나는 스스로에게 매일 묻는다. 성찰과 소통을 되풀이하고 있냐고. 이것이 생각과 처지가 다른 사람들이 만나 하나의 공동체를 만들고 유지하는 방법이다.

 

          2011. 1. 14. 부산에서 자작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