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인문)

조선의 통치철학을 읽고

자작나무의숲 2011. 2. 7. 21:33

백승종, 박현모, 한명기, 심병주, 허동현님이 쓴 <조선의 통치철학>을 읽었다. 저자 중의 1인인 백승종 전 독일 보훔대학교 한국학과장 대리로부터 선물받은 책이다. 이 책에는 5편의 글이 실려 있다. (1) 정도전과 세종대왕의 민본사상 백성을 두려워하고 공경하라, (2) 조광조외 김인후 이상세계를 현실로 가져오다, (3) 류성룡과 최명길의 통치론 외교적 행적을 통해 살피다, (4) 영조와 정조의 통치철학 조선 후기 르네상스를 이끌다, (5) 대한제국 고종황제의 통치철학 그는 국민국가를 세우려 했을까가 그것이다. 주요 내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정도전과 세종은 민본사상을 통치이념으로 삼은 점, 의정부서사제로 불리는 재상중심체제를 이상적인 제도로 간주하고 이를 통해 정치적 안정성과 효율성을 동시에 달성하려 한 점, 인생 초반부에 소외된 경험을 겪으며 스스로 낮아질 수 있었으며 백성들을 직접 대면하면서 정치가 무엇을 위해 존재해야 하는지를 깨달은 점에 공통점이 있다.

 

세종과 정도전을 구별해주는 가장 큰 차이점은 중국에 대한 입장이다. 정도전이 추진하다가 좌절한 요동공벌은 당시의 국제정세나 조선의 현실에 맞지 않다는 게 세종의 생각이었다.

 

세종대왕에 따르면 '서민의 마음은 일정치가 않아서 흡사 바람을 타고 흘러가는' 것처럼 왔다 갔다 하며, '실로 신명한 존재'이나 동시에 '지극히 어리석기도 하다'. 따라서 지도자는 '대중들의 불일치한 말들 중에서 지당한 하나의 결론 즉 신령스럽게 밝은 마음을 찾아내 실천에 옮겨야 한다는 것이다.

 

조광조는 현실 속에서 요순시대를 구현할 수 있다고 확신했는데, 그의 이러한 신념은 박경에게서 비롯되었다.......근본을 바로 하면 요순시대가 재현된다는 것이 조광조의 신념이었다. 그가 강조하는 근본이란 곧 인륜이었다. 한마디로 인륜을 지키기만 해도 세상은 다스려진다는 것이다.....조광조가 전개한 지치운동의 핵심은 왕도정치에 있다......왕은 하늘에 해당하는 존재로서 정치일선에 직접 나서면 안 된다는 것이다. 왕은 대신에게 정치를 위임해야 한다고 했다.

 

조광조가 이끌던 개혁세력의 약점은 그들이 지나치게 정치적 이념에만 몰두해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들의 개혁안에는 실무적인 성격이 없었다. 그들은 조세제도의 운용. 군비의 확충, 성곽의 보수 또는 궁실의 수축 등 통치행위와 관련된 행정실무를 심각하게 거론한 적이 없었다.

 

중종의 입장에서는 조광조를 기피할 만한 이유가 있었다. 우선 조광조는 말이 너무 많았다.....조광조의 집요한 주장과 장황한 언변 때문에 심신이 치진 것은 중종이었다.  

 

정치적 암투가 이렇게까지 악화된 이유는 궁정의 도덕적 타락에서 찾아야 한다. 이것이 김인후의 생각이었다. 그는 도덕정치를 지향하는 성리학적 이상주의의 퇴조에서 이 문제가 비롯되었다고 판단했다. 기묘사화로 인해 조광조를 비롯한 일군의 성리학적 이상주의자들이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처단된 사실이 모든 문제의 출발점이라는 주장이었다.

 

선생께서 한 번 외쳐, 성왕의 시대로 돌아가자 하셨다. 그러나 얼마 버티지 못하고 실패하게 되자, 사림은 붕괴되었고 왕도를 말하는 것마저 시대의 금기가 되고 말았다. 사람들은 모두 다 시기가 성숙하지 못한 탓으로 돌렸다(조광조 묘지명 일부/이이)

 

최명길은 후금이 정묘년에 약속했던 형제관계를 어기고 非禮로써 조선을 강박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지만, 여전히 교린의 예로써 대한다면 그들의 稱帝 여부는 우리가 따질 일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 그의 주장에서 주목되는 점은 정묘년의 화약을 지키도록 끝까지 노력하자는 것과 싸워야 할 경우 의주의 압록강변에서 끝장을 보자고 주장한 내용이다.

 

종사와 생민의 안위를 책임진 관인은 자신의 행위에 대해 무한책임을 져야 한다(류성룡 <징비록> 중)

 

聖王論은 국왕을 정치의 핵심주체이자 적극적인 정치가로 보는 정조의 입장으로서, 붕당이 공론형성과 관련된 본래의 기능을 상실하고 각 당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전위조직으로 전락했다는 부정적인 붕당관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러시아의 차르체제가 고종 광무개혁의 모델로 작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책은 조선을 동아시아의 역대 왕조 가운데서 성리학적 가치에 가장 충실한 사회라고 본다. 성리학이 조선 통치철학 토대를 이루었고 그 결과 사회적 비용이 절감되었다고 분석한다. 흥미로운 주제에 깊은 연구가 뒷받침되어 있다.

 

         2011. 2. 7. 부산에서 자작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