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정치사회)

희망을 읽고

자작나무의숲 2011. 2. 5. 22:26

리영희 산문선 <희망>을 읽었다. 고 리영희 선생이 썼던 산문을 임헌영이 선정하여 5장으로 분류해 놓았고, 마지막 부분에는 반공법위반으로 재판을 하면서 썼던 상고이유가 붙어 있다. 임헌영님은 리영희 선생과 대담을 나누고 정리한 책 <대화>를 펴낸 바도 있다. 책 내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나의 글을 쓰는 유일한 목적은 진실을 추구하는 오직 그것에서 시작되고 그것에서 그친다. 진실은 한 사람의 소유물일 수 없고 이웃과 나누어야 할 생명인 까닭에 그것을 알리기 위해서는 글을 써야 했다. 그것은 우상에 도전하는 이성의 행위이다. 그것은 언제나, 어디서나 고통을 무릅써야 했다. 지금까지고 그렇고 영원히 그러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괴로움 없이 인간의 해방과 발전, 사회의 진보는 있을 수 없다(<우상과 이성> 중에서)

 

 평이하고 알기 쉽게 쓰기 위해서는 일정한 마음가짐이 앞서야 하고, 부단한 자기반성과 훈련이 따라야 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냥 쉽게 씌어지는 것은 아니다.

 

민중에 대한 무한한 사랑은 노신의 글을 평이하고 이해하기 쉬워야 한다는 각성으로 이끌었다.

 

인문 사회과학과 자연과학 사이에는 한 가지 큰 차이가 있어 보인다. 자연과학의 공부는 깊이 들어갈수록, 정도가 높아질수록 어려운 이론이 나온다. 인간의 마음과 생활에 관한 공부인 인문 사회과학도 별의별 이론이 많기로는 자연과학에 못지않으면서도 되돌아오는 곳은 단순한 인간도 대체로 수긍할 수 있는 본질적 요체, 평균적 두뇌로 이해되는 간단한 결론이다.

 

철학적 진리나 종교적 진리가 그렇다고 하거니와, 사회적 진실 또한 대립하는 두 극단에 있지 않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새는 좌와 우의 두 날개로 난다. 최근의 사태로 우리의 판단감각이 어지러워지거든 가끔 고개를 들어 날아가는 새를 바라보자.

 

에머슨이라는 이가 simple life, high thinking 이라고 말했지. 물질생활을 간소하게 할수록 인간정신은 충족되고 높이 솟을 수 있다는 의미요.

 

정면에 있는 적만이 진정한 적이 아니다.....우리의 행복을 위한다면 우리를 수단으로밖에 보지 않는 자가 바로 진짜 적이다(시몬느 베유)

 

하느님 나라의 요건은 그 사람이 하느님을 믿느냐 하는 종교적 문제이기에 앞서서 그 사람의 마음이 착하고 도덕적으로 훌륭한가 하는 인간적 문제다(톨스토이)

 

한 예로 독일에는 무기장난감이 없습니다. 법으로 만들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다시는 전쟁을 일으키지 않겠다는 과거에 대한 철저한 단절과 반성의 표시인 것입니다.

 

유럽의 백인 자본주의 기독교 사회는 그들 제도의 퇴폐성과 폭력성, 그리고 허울 좋은 위선을 은폐하기 위해서 어떤 열등한 인간적 집단이 필요했다.....자기 사회구조 내부의 반항적 세력의 적대감을 외부 존재로 분출시키기 위해서였다. 바로 그 대상이 유대인이었다.

 

무릇, 남이 나를 업신여길 때는 나 자신이 떳떳하지 못한 데가 있기 때문이다(맹자)

 

만장일치주의와 일사불란주의는 내부적 비판을 사갈시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퇴니에스는 인간사회의 성격을, 상호간의 이익계산을 관계형성의 기본동기로 여기는 게젤사프트와, 손익계산이 생활관계의 동기가 아닌 혈연가족 우애적 집단인 게마인샤프트로 개념화한다.

 

한 사회 속에서 그 두 입장이나 사상은 상호 반발 배척하는 가운데 새로운 통일과 발전적 고양을 구현하는 협력자인 것이다......이 사상과, 그것을 지속적으로 또 점차적으로 효능화시키는 제도와 생활양식이 민주주의임을 우리는 상식으로 알고 있다.

 

국가제도의 이데올로기만이 용인되는 사회라면 그것이 바로 공산주의 사회와 다를 것이 무엇인가?

 

가릴수록 폭발력이 커지는 것, 그것이 지식 사상이며 막스베버가 지적한 것이다.

 

임헌영님은  이 책에 예술적 산문 위주로 실었다고 한다. 이 책을 읽고 나니 리영희 선생이 1992년인가 어느 신문에 현실사회주의는 실패했다고 기고했고 당시 좌파 진영으로부터 많은 공격을 받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진실을 추구하는 그것에서 시작되고 그것에서 그쳤다'는 저자의 고백이 과장은 아닌듯 싶다.

 

           2011. 2. 5. 부산에서 자작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