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기타)

백가기행을 읽고

자작나무의숲 2010. 11. 28. 12:50

조용헌 <백가기행>을 읽었다. 조정위원회 회장님으로부터 선물받은 책이다. 저자는 동양학자로서 <조용헌의 동양학 강의>를 쓴 바 있다. 이 책은 22군데 멋있는 집을 다녀온 이야기다. 저자는 삶의 품격을 높이기 위해서는 집 안에 세 가지를 갖추고 싶어 한다. 첫째는 茶室, 둘째는 中庭, 셋째는 구들장이다. 이 책에서 소개되고 있는 집은 저자의 이러한 취향을 충족하는 곳이 많다. 인상 깊게 읽은 구절은 다음과 같다.

 

인간은 눈보다 소리에 더 민감하다. 눈은 앞에 있는 광경만 볼 수 있지만, 귀는 뒤에서 들리는 소리도 들을 수 있다. 그래서 귀가 눈보다 더 수승한 감각기관이다.

 

좌장이 정면으로 바라다보는 벽면에는 창문을 설치하지 않고 흰벽으로 막아놓았다. 강의를 할 때 심리적인 안정감을 줄 수 있도록 일부러 대칭적 구조로 만드는 것이다. 대칭적인 구조는 사람을 안정시킨다.

 

이야기는 어떻게 생겨나는가. 내 경험에 의하면 금기에 대한 도전에서 비롯된다.......금기를 금기로 여기고 무서워하면 이야기는 없다. 금기에 달려들어야 이야기가 생긴다. 왜냐하면 스파크가 튀기 때문이다.

 

재물은 똥과 같이 집에다가 가만히 쌓아두면 주변에 냄새가 진동하고, 밭에다 거름으로 주면 곡식을 얻게 해준다(경주 최부잣집 철학).

 

인생은 낯선 여관에서의 하룻밤이다(마더 테레사 수녀). 

 

그동안 우리나라 사찰 수백 곳을 답사하면서 숙박해본 여관 가운데 인상에 남는 곳을 꼽는다면 세곳이다. 하동 쌍계사 앞 여관(나는 청운장 여관으로 기억한다), 대흥사 앞의 유선여관, 수덕사 앞의 수덕여관이다.

 

집 안에서 구원을 받아야지 집 밖에 나가야 구원을 받는다고 한다면 결국 가출을 해야 한다.

 

창의적인 생각을 하려면 공간을 전환해야 한다. 여행이 주는 매력이 여기에 있다. 공간을 바꿔볼 수 있는 것이다.

 

돈을 쓰지 않는 삶이 바람직하다. 돈을 적게 쓰면 돈을 적게 벌어도 된다. 돈을 적게 벌면 시간이 남는다. 남는 시간에 인생을 즐겨야 한다.

 

문화는 밥 먹고 난 뒤의 일, 즉 식후사다. 배고프면 문화가 나오기 힘들다.

 

현대인에게 구원이란 다름 아닌 릴랙스다. 쉬는 일이다. 쉬어야 구원받는다......다실은 이동하지 않고 집 안에서 구원을 받기 위한 장소다. 이름 하여 가내구원이다.

 

책을 읽고 나서 가보고 싶은 곳 6군데에 동그라미를 쳐 두었다. 언제 갈지 모르지만. 동양학자의 책을 읽으면 '균형'이란 개념이 자주 떠오른다. 이 책에서 쉬는 일을 강조하는 것은 우리가 그만큼 쉬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아름다운 집 사진도 펼쳐져 있고, 집 주인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마치 그 집에서 머물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2010. 11. 28. 부산에서 자작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