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문

일본 홋카이도 여행을 다녀와서

자작나무의숲 2010. 11. 10. 22:08

1. 여행은 잊는 것이다.

선거관리위원회 사람들 7명과 함께 3박 4일 일정으로 일본 홋카이도 여행을 다녀왔다. 일정을 맞춰 보려고 몇개월을 늦춰었으나 불가피한 사정으로 결국 3명이 빠진 상태에서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여행을 갖다 오고 보니 빠진 분들께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한마디로 재미 있었다는 얘기다.

 

홋카이도는 여름 여행을 추진했을 때 후보지였으나 '단풍도 없고 눈도 없는데 이 계절에 왜 가냐'는 일부 의견을 무릅쓰고 고수했는데, 결론적으로 말하면 단풍도 보았고, 온천도 즐겼다.

 

오후 2시에 김해공항을 출발하여 오후 4시 15분에 치토세 샷포르 공항에 도착하였다. 첫 관광지는 오도리 공원이었다. 시내 한복판 도로 중앙에 공원을 만들어 놓았는데 부러웠다. 겨울에 눈꽃축제가 열리는 곳이라고 한다. 공원을 산책하고 있는데  까마귀 떼가 원을 이루며 날아다녔다. 일본에서는 까마귀가 길조라는 설명을 듣고 안심했다. 홋카이도는 위도가 함경북도에 해당하고, 경도가 우리보다 오른쪽에 위치하여 해가 일찍 저물었다. 5시가 되니 주위가 어두웠다.

 

코라쿠엔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저녁을 먹고 술 한잔 하려고 주위를 둘렀으나 찾기가 힘들었다. 오가는 사람도 없었다. 한바퀴 돌고 난 다음 선술집에 들러 맥주와 사케를 마셨다. 안주도 이것저것 먹었다. 9천 2백 엔 정도 나왔다.

 

같은 일정으로 여행을 하게 된 김해팀의 초청을 받아 숙소에서 이루어진 술자리는 참으로 유쾌했다. 하수오로 담은 술에 결정타를 입고 술자리를 마쳤다. 책도 만들어야 하고, 재판도 해야 하지만, 모든 것을 잊고 잤다. 

 

2. 여행은 기억하는 것이다.

둘째날은 홋카이도 구 도청사부터 시작하였다. 신 청사로 옮기고 구 청사는 관광상품으로 내놓은 것이다. 구 청사 건물에 전시관을 만들고, 아름다운 연못과 나무들은 그대로 두었다. 북해도는 내각에 북해도개척장관을 만들어 이주정책을 추진하여 만든 곳이고, 도시계획에 따라 샷포르시(인구 180만 명, 5대 도시)가 건설되었으며 그 때문에 도로도 반듯하고 건물도 잘 정돈되어 있었다. 지금은 도지사가 다스리는 지자체가 되었다. 단풍이 비치는 연못을 유영하는 오리의 모습이란......

 

부산지방법원 청사를 부민동에서 거제동으로 옮기며 구 청사부지를 매각하였는데, 부산광역시가 사서 공원으로 만들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전쟁 당시 임시수도 청사로 사용했던 건물도 있고, 조경이 잘 되어 있어 보존가치는 있었다고 생각한다.

 

아사히 맥주공장으로 옮겨 회사를 홍보하는 동영상을 보았다. 주된 내용은 아사히 맥주의 우수성, 회사가 자연환경을 위해 얼마나 애쓰고 있다는 점이다. 아사히가 환경보존을 위하여 수풀을 조성하고 있고, 재생에너지를 쓰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전날 음주가 결코 모자라지 아니하였음에도 아사히가 제공하는 공짜 맥주를 거절하기는 어려웠다. 예의도 아닌 것 같고.

 

다음 행선지는 노보리베츠 시대촌이다. 시대촌은 에도시대 촌락을 재현해놓은 곳으로 보면 된다. 닌자의 집과 오히란 쇼가 눈길을 끌었다 닌자의 집은 귀신의 집 정도로 보면 된다. 기울어져 있는 부분이 걸어가면 중심을 잡을 수가 없고, 미로처럼 길이 나 있었다.  닌자의 집에서 같이 어지러증을 겪은 일본 여인은 나에게 악수를 청했다. 고난을 같이 한 인류애를 느껴 기꺼이 응했다.

 

오히란 쇼는 관객 중에서 뽑힌 쇼군에게 게이샤가 접대하는 장면을 재현하는 것인데, 일행인 김계장님이 가위 바위 보에서 대만인을 포함한 경쟁자 3명을 물리치고 쇼군으로 뽑혔다. 의자에 앉은 채 거들먹거리다가 게이샤가 '사시미 사주세요', '기모노 사주세요' 하면 호기 있게 "오케이" 하는 건데, 연기를 너무 잘해 관중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공연이 끝나고 나서는 미리 받은 네모난 종이에 동전 200엔을 싸서 무대로 던졌다. 스토리의 위력을 실감하였다. 우리 관광지도 스토리가 필요하다.

 

지옥의 계곡을 구경하였다. 기독교를 탄압하기 위하여 십자가 밟기를 통하여 신자들을 가려 내고 100도가 넘는 온천에 빠뜨려 죽였다고 해서 지옥의 계곡이란다. 현장에 가보니 100도가 넘는 온천이 있었고, 여기 저기에 수증기가 올라 오고 있었다. 묵었던 타키모트관 노천탕에서 보면 지옥의 계곡이 한 눈에 들어오고 그 시선 위로 까마귀가 날았다. 다음날 새벽에 일어나 온천욕을 한번 더 하였다.

 

이날 밤에는 우리팀이 주관하는 술자리가 벌어졌다. 31게임, 눈치게임과 같은 놀이를 하였고 벌칙은 술먹기였다.

 

셋째날은 비가 오는 속에서 진행하였다. 유람선을 타고 도야 호수를 둘러볼 때도 안개 때문에 잘 볼 수 없었다. 호수 가운데 용암이 분출되어 만든 산이 섬처럼 서 있었다. 부근에 비지터 센타가 있었는데, 그 건물에도 태양광 시설, 풍력시설이 되어 있었다.

 

케이블카를 타고 올랐으나 안개로 유수산을 볼 수 없었다. 다만 여기서 케이블카를 기다리는 동안 자작나무를 처음 본 것은 소중한 경험이었다. 자작나무란 필명을 가진 사람이 일본에 와서 자작나무를 처음보다니......쇼와신잔, 사이로 전망대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이동하는 관광버스 안에서 가이드분(모두투어 고재원 선생)은 중세 시절의 일본 지도자 3명의 리더쉽을 소개하였다. 두견새가 울지 아니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질문을 던져놓고, 오다 노부나가는 울지 아니하는 두견새를 죽이고, 토요토이 히데요시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두견새를 울리며, 도쿠카와 이에야스는 두견새가 울 때까지 기다렸다. 결국 도쿠카와 이에야스가 권력을 쟁취하여 에도시대를 열였다고 하였다. 지금은 어떤 지도자가 필요할까? 두견새를 사랑하는 지도자가 필요하지 아니할까?

 

여행은 기억하는 것이다. 이모 선배는 의자를 오브제로 하여 사진을 찍었다. 자기 전에는 낮에 찍은 사진을 감상하였다. 그 모습이 아름다워 보였다. 마지막 날이라 우리 팀끼리 호텔객실에 모여 여행을 평가하는 시간을 가졌다. 여행에 모두 만족하였고, 선거관리위원회를 그만두더라도 모임을 계속 이어가자는 논의를 하였다.

 

니세코 빌리지 힐튼호텔은 24시간 노천탕이 운영되고 있다. 하늘을 위로 하고, 편백나무를 옆으로 하여 사색에 젖는 호사를 누릴 수 있었다. 다음날 새벽에도 온천욕을 즐겼다.

 

일행에게 들은 이야기.

요즘 아내들은 여행을 떠날  때 냉장고 앞에 "까불지마' 라는 메모를 붙이고 나온다.

까=까스불 조심

불=불 조심

지=지퍼 조심

마=마누라 올때까지 전화하지마

 

그러면 남편이 아내에게 "웃기지마" 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낸다.

웃=웃을 일도 많더라

기=기분 좋은 일도 많더라

지=지퍼 내릴 일도 더 많더라

마=마누라 돌아오지마

 

3. 여행은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넷째날도 비가 오는 속에서 시작하였다. 니세코 밀크공방을 지나 오타루 운하를 둘러봤다. 육지에 있는 창고와 연결하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 사이에 운하를 팠지만, 지금은 운하로 사용하지 않고 있고, 관광상품으로 기능하고 있다. 창고도 음식점으로 개조하여 쓰고 있다. 길가에 쓰레기 버리는 곳이 있었는데, 쓰레기통이 따로 설치되어 유난히 눈에 띄는 우리나라와 달리, 쓰레기 버리는 곳이 조형물의 일부로 들어가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동 중에 가이드 선생께 일본이 한국보다 나은 것이 뭐냐구 물었더니, 시간과 질서의식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즉, 일본은 오래 전부터 기후변화에 대비한 에너지 정책을 쓰고 있다. 주택용 목재는 대부분 수입하고 국내 삼림을 키우고 있으며 곳곳에 태양광시설, 풍력시설을 건설하였다. 명치유신 이래 꾸준한 교육을 통하여 질서의식을  형성하였다.

 

키타이치 가라스 마을에서 유리공예를 구경하였고, 오르골 가게에 가서 오르골 2개를 샀다. 보석함인데 열면 음악이 나온다. 틀림없이 귀국하면 '부부가 외국여행 한 번 안 한 집은 우리 집밖에 없다'고 넋두리할 아내를 위하여, 또 하나는 여행경비를 보태주신, 아내의 어머니를 위하여.

 

아들에게 선물하도록 초콜릿이라도 하나 사라고 주위에서 권유하였으나 아들 선물로 마땅한 게 없어 사지 않았다. 다음날 공항까지 마중나온 아들이 서운해 하는 것 같아서 한국돈 1만 원과 일본 돈 100엔을 주었다.

 

귀국할 때는 같은 거리인데도 비행시간이 더 걸렸다. 역풍을 안고 비행을 해야 하므로 통상 35분을 더 잡는다고 하였다. 역풍은 순풍보다 어렵다.

 

집에 돌아오니 아내는 숙제도 안하고 놀자고 하는 아들을 타박한다. 아! 며칠 쉬었으니 다시 시작해야지......여행이란 돌아갈 집이 있을 때 진정 여행이 되는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방랑이겠지.

 

            2010. 11. 10. 여행을 마친 다음 날 부산에서 자작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