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문

울진을 다녀와서

자작나무의숲 2010. 5. 23. 20:22

   2박 3일 일정으로 경북 울진을 다녀왔다. 시국이 어수선한 건 알지만, 작년 여름 이후 가족여행을 다녀온 적이 없다고 두털대는 식구들 불만도 폭발 직전이어서 예정대로 다녀왔다. 제 때 수습을 못하면 결혼여행을 포함하여 가족끼리 해외여행 한 번 다녀온 적이 없는 집은 우리 집밖에 없다는 성토가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백암온천에 있는 한화콘도에 숙소를 정하고, 경북 울진 지역을 둘러 보는 일정이다. 성류굴, 불영사, 민물고기생태관, 친환경엑스포공원을 다녀오고 마지막 날 경북 영덕군 강구면 어시장에서 영덕 대게를 사서 왔다. 울진에 갔으니 울진대게를 사오려고 시도했으나 여러 가지 사정으로 울진대게를 살 수 없었다. 영덕대게와 특산물 경쟁을 하고 있는 울진대게 관계자 여러분께 널리 양해를 구한다.

 

   네이버 길 찾기를 따라 부산-대구-포항까지 고속도로를 탈 때까지는 좋았다. 네이버 길 찾기에 따르면 대련 IC에서 31번 국도 영덕, 경주 방향으로 빠지면 징크스는 깨질 뻔했다. 여행을 가면 반드시 1회 이상 싸우고 그건 대부분 길을 헤멜 때라는 징크스 말이다. 아내는 길도 모르면서 내비게이션을 설치하지 않는 나의 무능을 탓했고, 나는 합심해서 길을 찾지 않는 가족의 무성의를 탓했다. 우여곡절 끝에 삼척에서 군대생활했던 경험을 살려 7번 국도를 탔고, 이정표에 울진이 보이자 상황은 안정되었다.

 

   첫날 늦게 찾은 성류굴은 장관이었다. 그런데 아내는 결혼 이후 성류굴을 다녀온 적이 있고, 그 때 입었던 자신의 옷도 기억한다는데, 나는 옷은커녕 성류굴에 온 사실 자체를 기억하지 못했다. 인간이란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한다는 점을 또 실감했다. 성류굴은 시원하고 멋있었다. 에덴동산, 아담과 이브, 아기공룡 둘리, 법당, 마귀할멈 같은 이름표처럼 종유석, 석순, 석주가 마음껏 재주를 부리고 있었다. 근데 이름이라는 것이 인식을 도와주는 면도 있지만, 인식을 방해하는 면도 있었다. 아무리 애를 써봐도 이름표를 왜 붙였는지 잘 모르는 경우도 있었다. 동굴에는 햇볕에 들어오지 못하므로, 생물이 살지 못할 것 같은데, 날아다니는 포유류인 박쥐를 비롯하여 곤충, 물고기가 그곳에 산다고 한다.

 

   이번 여행의 백미는 불영사였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15분을 걸어가게 되어 있었다. 불영계곡을 끼고 닦여 있는 길이 金剛松과 함께 속세를 떠나는 느낌이 들어 참 좋았다. 근데 차량통행금지에는 예외가 있었다. 걸어가는 동안 6-7대의 차량이 지나갔다. 그중에는 장애인 차량이 있었다. 그건 수긍이 되었다. 작업용 화물차량이 지나갔다. 그것도 수긍이 되었다. 근데 어떤 차는 무엇 때문에 통행이 허용되는지 잘 알 수가 없었다. 만일 불영사 신도라서 예외가 허용된다면 그건 곤란한다. 신도들에게 예외가 적용되고 비신도에게는 원칙이 적용되는 그런 원칙으로는 부처님의 도를 중생에게 가르칠 수 없기 때문이다. 

   佛影寺는 부처 같은 바위가 연못에 비친다는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절 입구에 연못이 있었고, 연못 속에는 연꽃이 자라고 있었고, 그 사이사이로 종각루가 비치고 있었다. 대웅전을 뒤로 한 채 절간이 수줍게 모여 있었다. 산 속에 이런 평지가 있다는 사실 자체도 놀라웠다. 찾아간 날이 '부처님 오신 날' 다음 날이라 많은 사람들이 연등을 철거하고 있었다. 대웅전에 가서 부처님께 삼배를 올리고 작년에 갑자기 떠나신 어머니의 명복을 빌었다. 이곳 저곳을 둘러보다가 절집 뒤에 서 있는 나무들이 빼어나서 가까이 다가갔더니 여승께서 여기는 참선하는 곳이라 출입이 금지된다고 하였다. 사과하고 출입이 허용되는 곳으로 나와서 나무들을 담으려고 사진기를 꺼냈더니 그 여승께서 내게 들어와서 편하게 사진을 찍으라고 한다. 예외를 인정받아 사진을 두장 찍고 나왔다. 그 중 한장을 여러분께 공개함을 원칙으로 한다.

 

   불영사 부근에 민물고기생태관이 있었다. 거기서 배운 상식 하나. 민물회로 즐겨먹는 향어가 토종 물고기가 아니라는 점. 향어는 원래 독일에서 잉어를 인위적으로 개량한 품종이고 이스라엘에 이식이 되었는데, 우리나라가 1973년 이스라엘 농무성에서 식용으로 수입했다고 한다. 성장이 잉어보다 2배 빠르다고 한다.

   상식 또 하나. 산천어는 우리나라의 토종 물고기로서 연어의 일종인데, 강 상류의 맑은 물에서 자라며  떼를 지어 다닌다고 하였다. 비록 수족관 내지만 산천어들이 떼지어 유영하는 것을 바라보니 내 마음이 깨끗해졌다.

 

   친환경 엑스포 공원에는 친환경농업관, 곤충여행관, 아쿠아리움이 있었고, 비용 문제도 있고 해서 친환경농업관에만 들렀는데, 초등학교 4학년인 아들이 재미있다고 하였다. 월송정을 찾아갔으나 찾지 못하고, 부근에 있는 평해중학교 인조잔디 운동장에 들어가 야구를 하였다. 아들이 좋아하는 몸쪽 높은 공 몇개를 던져주었더니 아들은 장타 몇 개를 치고 좋아하였다. 아들은 늘 말한다. 왜 아빠가 공을 던지면 타율이 좋은데, 친구들이 공을 던지면 타율이 낮은지 모르겠다고. 그거야 우리 같은 중생이 알겠나 부처님이나 아시겠지......

 

  울진도 지방선거로 이곳 저곳이 시끄러웠다. 지나가다 보니 1톤 화물차량 옆에서 어떤 사람이 지나가는 사람에게 귤을 주는 것 같았다. 아들이 그걸 보더니 대뜸 "아빠 저거 선거법위반 아니가? " 하고 말하였다. 글쎄 상인이 손님에게 과일 파는 거겠지. 

 

   울진을 다니는 내내 이곳이 도시가 아님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이 아카시아 향이 코를 자극했다. 도시의 회색은 자연의 녹색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래도 난 도시로 가련다. 도시를 회색에서 녹색으로 바꾸는 것이 내 일일지 모르므로......

 

          2010. 5. 23. 부산에서 자작나무

 

(참선하는 절집 뒤에 서 있는 나무들)

 (불영사 연못에 종각루가 비친다)

 

(성류굴 앞 호수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