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문

남이섬을 다녀와서

자작나무의숲 2007. 11. 11. 22:21

가을휴가를 이용하여 남이섬을 다녀왔다. 부산에서 6시간 정도 걸렸다. 대구에서 춘천까지 중앙고속도로를 이용하고, 춘천IC를 빠져나가 가평으로 들어가면 이정표가 나온다. 선착장 주변에 차를 주차시키고(1일 4천 원) 배를 타고 5분 정도 들어가니(요금 8천 원) 남이섬이 나온다. 남이섬에 들어선 순간 곱게 물든 단풍, 도시와 다른 공기, 잘 가꾸어진 숲길. 입구에 서 있는 남이나라 공화국이 허명은 아닌 듯 싶었다.

 

남이섬 안쪽에 있는 정관루 호텔(예약 필요, 1일 10만 원)에 여장을 풀고, 가족용 자전거를 빌려(30분에 1만 원) 섬을 일주했다. 별빛 마당이라는 집에서 두부전골을 시켜 저녁을 먹었다. 호텔에 들어가니, 호텔엔 TV가 없고 대신 책이 있었다. 채널이 2개 잡히는 라디오 하나가 있어. 어렵게 주파수를 맞추었더니 국군방송이었다.  방에 있는 추억록을 펼쳐보니, 오랫만에 추억을 되살려서 기쁘다는 이야기, 티비가 없어 심심하다는 이야기, 시설이 불편하다는 이야기.....

 

다음날 아침 일어나 걸어서 섬을 한 바퀴 돌았다. 연인의 숲, 갈대숲길, 튤립나무길, 자작나무길, 남이장군묘, 잣나무길, 메타세쿼이아길, 단풍나무길을 거쳐 호텔로 돌아왔다. 1시간 정도 걸렸다. 왜 산책만 하냐는 아들의 불평은 뒷전으로 하고, 숲 속의 영령들이 내게 건네는 듯한 말에 귀기울였다. 어느 곳 하나 모자람이 없었다. 

민병도님이 한국은행 총재를 그만 둔 후 1965년 퇴직금으로 섬을 사서 모래뻘 땅콩밭에 나무를 심고, 가꾸기를 40년 그렇게 섬은 사람들에게 다가갔고, 님은 자연의 흙으로 돌아가셨다.

 

호텔 커피숍에서 빵과 샐러드를 주로 하는 뷔페(11,000원)를 먹고, 오전엔 메타세쿼이아길, 은행나무길을 중심으로 사진을 찍었다. 사람이 너무 많아 사진 한장 찍기도 쉽지 아니하였다. 배용준, 최지우 주연의 '겨울연가' 드라마 덕분에 중국, 일본에서 온 사람들도 제법 있었다. 잔디밭에 들어가 가족과 함께 야구도 하고, 축구도 하였다. 베오그라드 무대에서 열린 서울예술종합학교 관악단 초청 연주도 듣고, 그 옆 '위험한 놀이터'에서 놀이도 하고, 하늘나라 자전거도 타고, 전동차도 타고, 행사장에서 열린 만화페스티벌도 보고......볼 것은 지천으로 널려 있었다.

고목식당에서 보리밥(6천 원)과 춘천막국수(5천 원), 해물파전(만 원)을 먹었다. 정말 맛이 있었다. 자연 속의 일부가 되어 대지와 공감하고 싶은 분들께 추천한다.

 

끝으로 호텔 추억록에 적었던 글을 옮기며 남이섬 기행을 마친다.

 

(20년 만에 다시 왔다. 처음 온 기억은 대부분 소실되었지만, 좋았던 느낌, 또 오고 싶었던 느낌은 고스란히 남아 있다. 남보다 일찍 눈 떠서, 남보다 더 움직여서 이 아름다운 섬을 만든 故 민병도님께 감사드린다.

 

우리는 그냥 좋은 추억을 가져가고, 조금 불편했다는 식의 불평을 늘어놓지만, 민병도님께는 힘들었던 기억도, 매우 불편했던 시절도 많았으리라. 서로를 알지도 못하고 서로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도 못하지만, 우리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은 매우 분명하다.

 

이 남이섬을 떠나는 순간, 우리는 도시 속의 또 다른 섬에 도착하리라. 도시 속의 섬에는 내가 메타세쿼이아도 심고, 은행나무도 심어 20년 후, 나를 모르고 나도 모르는 누군가가 좋은 기억을 동시대인에게 전해주시길......쉬이 잠들 것 같지 않은 오늘도 언젠가 누군가의 과거가 되어 있으리라. 2007. 11. 9. 남이섬에서)

 

      2007. 11. 11. 부산에서 자작나무 올림

 

 

(아들이 남이섬 메타세쿼이아 길에 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