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준 교수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를 읽었다. 저자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며 <나쁜 사마리아인들>이란 책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 책은 '더 나은 자본주의를 말하다'라는 부제가 말해주듯 주류 경제학자들이 말하는 자유 장 자본주의가 잘못됐다고 주장한다. 주류 경제학자들의 잘못된 주장 중 23가지를 추려 반박하고 끝에 더 나은 자본주의의 8가지 원칙을 제시한다. 인상 깊게 읽은 구절은 다음과 같다.
인류의 생산력이 크게 진보할 수 있었던 것도 유한 책임을 통해 대규모 자본 축적이 가능해진 덕분이었다. 하지만 바로 그렇게 손쉽게 빠져나갈 수 있기 때문에 주주들은 기업의 장기적인 미래를 책임질 만큼 믿음직한 후견인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부자 나라에 사는 대다수 사람들의 생활수준은 자국 노동 시장에 대한 엄격한 정부 통제, 즉 이민 제한 정책에 따라 결정적으로 좌우된다.
극소수 예외를 제외하면 자유 무역과 자유 시장이라는 논거의 본고장이라 할 수 있는 영국과 미국을 포함하여 현재 잘 살고 있는 나라들은 모두 보호 무역과 정부 보조금 등을 통해 오늘의 선진국 반열에 오를 수 있었다.
한 200년 정도 보호 무역을 해서 거기서 얻을 수 있는 장점을 다 취한 다음에 미국도 자유 무역을 할 것이다(율리시스 그랜트 미국 대통령)
서비스 산업은 생산성이 증가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에 경제 성장의 원동력이 되기 힘들다. 또 서비스 상품은 교역하기도 힘들기 때문에 서비스 산업에 기초한 경제는 수출능력이 떨어진다.
우리가 소득의 점점 더 많은 부분을 제조업 제품보다 서비스 구입에 사용하는 것처럼 느끼는 것은, 우리가 소비하는 서비스의 양이 계속 늘어나고 제조업 제품의 양은 계속 줄어들기 때문이 아니라 서비스의 가격이 제조업 제품의 가격보다 상대적으로 점점 더 비싸지기 때문이다. / 제조업 제품의 상대가격은 왜 떨어지는 것일까? 서비스업에 비해 제조업의 생산성이 더 빨리 향상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서비스의 교역이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 세계 어느 곳으로든 운송이 가능한 제조업 제품과는 달리 대부분의 서비스는 '서비스 제공자'와 '서비스 소비자'가 같은 공간에 있어야 사고 파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에 원천적으로 교역 가능성이 낮다.
문제는 부자들에 유리한 신자유주의 개혁이 시작된 1980년대 이래 경제성장률이 실질적으로 더 떨어졌다는 것이다. /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방식으로 추진되기만 한다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소득 재분배'가 경제 성장까지 촉진한다고 믿을 만한 근거가 많다는 점이다.
자본주의가 발달하면서 기업가 정신이라는 것은 점점 더 공동체적으로 함께 이루어 내지 않으면 불가능한 것이 되었다.
극도로 복잡한 현대 금융시장과 같은 분야에서 정부의 규제가 효력을 발휘하는 이유는 정부가 보유한 지식이나 정보가 더 우월해서가 아니라 정부 규제를 통해 선택의 범위를 제한하여 문제의 복잡성을 줄임으로써 결과적으로 일이 잘못될 가능성을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올바른 결정을 내리고자 할 때 흔히 맞닥뜨리게 되는 중요한 문제는 정보의 부족이 아니라 정보를 처리하는 우리 능력의 한계이다.
많은 수의 규제들이 기업 모두가 사용하는 공유 자원을 보존하고, 장기적으로 산업 부문 전체의 집단적 생산력을 향상할 수 있는 기업 활동을 장려하는 기능을 한다. 이러 사실을 인식해야만, 문제는 규제의 절대량이 아니라 규제의 목적과 내용이라는 점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기회의 균등은 공정한 사회를 이룩하기 위한 출발점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기회의 균등이 진정한 의미를 가지려면 일정 수준 이상의 결과의 균등이 보장되어야 한다. / 문제는 균등하게 주어진 기회를 통해 혜택을 보기 위해서는 그 기회를 잘 이용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계층 이동성은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이 영국에 비해 더 높고, 영국은 미국에 비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복지 정책이 잘 된 나라일수록 계층 이동이 더 활발하다는 사실은 결코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노동자들에게 제2의 기회를 준다는 의미에서 복지 정책은 노동자를 위한 파산법이라고 할 수 있다. 파산법이 기업가들로 하여금 위험을 더 적극적으로 감수하게 해주는 것처럼, 복지 정책은 노동자들이 변화에 더 개방적이고, 그에 따른 위험을 더 기꺼이 감수하는 태도를 갖도록 해준다.
차를 빨리 몰 수 있는 것은 브레이크가 있기 때문이다......실업이 자기 인생을 망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면 사람들은 일자리를 잃고 새로운 기술을 습득하는 것을 훨씬 더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탈산업화 지식 사회는 신화에 불과하고, 제조업은 지금도 경제에 필수적이다.
주류 경제학자들의 주장이 옳은 건지, 장하준 교수의 주장이 옳은 건지는 모른다. 다만, 이 책을 읽고 나면 양 주장의 차이가 무엇인지는 분명하게 파악할 수 있다. 꽤 어려운 주제를 쉽게 풀이하는 저자의 능력만큼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하리라.
2010. 11. 3. 부산에서 자작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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