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인문)

나는 왜 쓰는가를 읽고

자작나무의숲 2010. 10. 4. 23:04

조지 오웰이 쓴 <나는 왜 쓰는가>를 읽었다. 저자는 <동물농장>, <1984>로 잘 알려진 작가인데, 이 책을 통하여 그가 11권의 책, 수백 편의 에세이를 썼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대영제국의 경찰간부로서 식민지 버마에서 근무하다가 고약한 양심의 가책 때문에 사직한 뒤, 자발적으로 파리와 런던의 하층계급의 세계에 뛰어들었고, 공화국 민병대로 스페인 내전에 참전하기도 하였다.  이 책은 저자가 쓴 수백 편의 에세이 중 29편을 역자 이한중 선생이 고른 것이다. 특히 셰익스피어 문학을 비판하는 톨스토이를 비판하는 문장에서는 날카로운 통찰과 통쾌한 독설을 읽을 수 있다. 인상 깊게 읽은 구절은 다음과 같다.

 

모든 작가는 '정치에 거리를 두려는' 충동을 느낀다. 평화롭게 책을 쓸 수 있도록 내버려두기를 바라는 것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그런 이상은 기업형 슈퍼마켓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살아남기를 바라는 구멍가게 주인들의 꿈보다도 실현 불가능한 것이 되어가고 있다. 우선 언론 자유의 시대가 저물어가고 있다. 영국에서 언론의 자유는 언제나 일종의 사기였다  마지막 순간에는 언제나 돈이 의견을 지배한다.

 

진실은 아주 단순한 것이기 때문이다. 살아남으려면 종종 싸워야만 하고, 싸우자면 자신을 더렵혀야 한다.

 

실제 상황에서 사람은 중립일 수 없으며, 누가 이기든 상관없는 전쟁 같은 건 없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명칭은 민족주의적 심리에서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나는 지식인이라면 정치에(넓은 의미의 정치를 말한다) 개입할 수밖에 없으며 나름의 선호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즉, 똑같이 나쁜 수단과 더불어 제시된다 하더라도, 어떤 대의가 다른 대의보다는 객관적으로 낫다는 인식을 갖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아주 낮은 수준이 아닌 이상, 문학은 경험을 기록함으로써 동시대 사람들의 관점에 영향을 끼치고자 하는 시도다.

 

솔직하고 힘 있는 글을 쓰려면 두려움 없이 생각해야 하며, 두려움 없이 생각하게 되면 정치적인 통념을 따를 수가 없다.

 

'민주주의'라는 단어의 경우, 합의된 정의란 게 없을 뿐만 아니라, 그런 정의를 만들어내려는 시도를 하면 사방팔방에서 저항을 받게 된다. 어떤 나라를 민주적이라고 하면 거의 예외 없이 그 나라를 칭찬한다는 느낌이 든다. 때문에 어떤 체제의 옹호자들이든 그 체제는 민주주의라는 주장을 하며, 만일 그게 어느 하나의 뜻으로 굳어져버린다면 그 단어를 그만 써야 하는 것 아닌가 하고 걱정하게 되는 것이다. 

 

명료한 언어의 大敵은 위선이다. 진짜 목적과 겉으로 내세우는 목적이 다를 경우, 사람은 거의 본능적으로 긴 단어와 진부한 숙어에 의존하게 된다.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의미가 단어를 택하도록 해야지, 그 반대가 되도록 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글 쓰기 6원칙

1. 익히 봐왔던 비유는 절대 사용하지 않는다.

2. 짧은 단어를 쓸 수 있을 때는 절대 긴 단어를 쓰지 않는다.

3. 빼도 지장이 없는 단어가 있을 경우에는 반드시 뺀다.

4. 능동태를 쓸 수 있는데도 수동태를 쓰는 경우는 절대 없도록 한다.

5. 외래어나 과학용어나 전문용어는 그에 대응하는 일상어가 있다면 절대 쓰지 않는다.

6. 너무 황당한 표현을 하게 되느니 이상의 원칙을 깬다.

 

글을 쓰는 네 가지 동기

1. 순전한 이기심 : 똑똑해 보이고 싶은, 사람들의 이야깃거리가 되고 싶은 욕구

2 미학적 열정 : 외부 세계의 아름다움에 대한, 낱말과 그것의 적절한 배열이 갖는 묘미에 대한 인식

3. 역사적 충동 :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고, 진실을 알아내고, 그것을 후세를 위해 보존해두려는 욕구

4. 정치적 목적 : 세상을 특정 방향으로 밀고 가려는, 어떤 사회를 지향하며 분투해야 하는지에 대한 남들의 생각을 바꾸려는 욕구

 

1936년부터 내가 쓴 심각한 작품은 어느 한 줄이든 직간접적으로 전체주의에 맞서고 내가 아는 민주적 사회주의를 지지하는 것들이다.

 

지난 10년을 통틀어 내가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은 정치적인 글쓰기를 예술로 만드는 일이었다.

 

참으로 묘하게도, 쾌락과 혐오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톨스토이는 위대한 예술작품은 '인류의 삶에 중요한' 주제를 다루어야 하고, 저자 자신이 진정으로 느끼는 바를 표현해야 하며, 바라는 효과를 낼 만한 기법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 궁극적으론 문학작품의 가치를 판별하는 기준은 얼마나 오랫동안 살아남느냐 말고는 없다(조지 오웰).

 

원한다면 땅을 줘버리되 그렇게 함으로써 행복해지려고는 하지는 말라. 행복을 얻지 못할 수도 있다. 남을 위해서 살 것이면 '남을 위해서만' 살아야 한다. 우회적으로 자신을 위하는 수단이어서는 안 된다(리어왕의 교훈)

 

악은 처벌받되 선은 보상받지 않는다(셰익스피어 비극의 교훈).

 

이 책을 읽고 나니 나는 왜 글을 쓰는지 궁금해졌다. 지식을 늘리기 위하여? 생각을 줄이기 위하여?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기 위하여?

 

         2010. 10. 4. 부산에서 자작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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